Color, 색깔
Color는 라틴어 color(콜로르)에서 온 단어래. 원래는 '표면'을 뜻했다가, 물건을 덮고 있는 겉 부분, 즉 색깔을 의미하게 되었지.
엄마는 색깔은 겉에만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안에서부터 올라와서 결국 겉에까지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
엄마는 몸이 많이 편해졌어. 두통도 입덧도 없으니 살 만해. 등줄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통증이 있긴 하지만 반나절을 모두 앗아가는 두통에 비할 게 아니야. 몸무게는 여전히 의사 선생님께 경고받는 수치야. 너만 잘 자라야 하는데 나도 너무 잘 자라고 있대. 다행인 건 얼굴 살이 좀 빠졌어. 아빠는 엄마가 이제야 어른이 되려고 젖살이 빠지는 거래. 아빠는 아가가 아가를 낳는다고 엄마를 안쓰러워해.
잠이 많아졌어. 마치 봄을 준비하는 곰처럼 고요히 에너지를 모으고 있어. 내년에 5분이 아쉬울 때 꺼내 쓰면 얼마나 달콤할까.
어제부터 너의 몸짓과 양수의 출렁거림이 느껴져. 태동. 둥둥 북 치는 것 같을 줄 알았는데 부드럽게 뽈록 미는 정도라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음악 들을 때 더 움직이는 걸 보니 벌써부터 영특해. 엄마, 이미 딸바보지?
문화센터에 발을 들였어. 지난달부터 요가를 시작했고, 이번 달에는 바느질도 해. 네가 안고 잘 수 있는 인형을 만드는 중이야. 중학교 때 가사 시간에 유난히 떠들어서 자주 교탁 앞에 손 들고 꿇어앉아있었던 게 생각났어. 지금도 엄마는 바느질을 하면서 그렇게 떠들어. 손도 그만큼 바쁘단다. 인형을 만드니 용기가 불쑥 솟아서, 네게 입힐 배냇저고리 DIY패키지를 주문했어.
엄마는 원래 단조로운 색깔을 좋아했어. 하양, 검정, 아이보리, 베이지. 지금도 옷장을 열면 그게 다야. 집 안 물건도 마찬가지지. 뭐 하나 튀는 색깔 없이 네 가지 색깔 안에서 조금 진하다가 옅을 뿐. 엄마는 잔잔한 색깔들 사이에 있어야 편하거든. 그런데 문화센터에서 네 인형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선명한 빨간 천을 집어 들었어. 그리고 요즘 이상한 일이 자꾸 생겨. 색깔이 가득한 캐릭터 앞에 멈춰 서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어. 아가 장난감은 이것도 알록달록하고 저것도 요란한데 둘 다 좋아서 못 골라. 진한 핑크 물건에 손을 뻗다가 흠칫 멈춘 적도 있어. 내가 딸 엄마가 되긴 하나 봐.
그저 겉으로 보이는 색의 변화만이 아니야. 나는 이제 준비된 것 같아. 너로 인해 바뀔 준비. 색이 가득한 세계로 나아갈 준비. 네가 있는 곳이니까. 아쉬워하지도, 아까워하지도 않으며 나는 그 길을 저벅저벅 걸어갈 거야. 펄쩍펄쩍 뛰어갈 거야.
너를 만나는 장면을 자주 상상해. 마치 흑백영화가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순간 같아. 너를 기다리는 시기가 겨울인 게 참 좋아. 겨울에는 모든 색깔이 사라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지. 대지가 나처럼 고요히 생명을 품고 있다가 봄에 한순간 터뜨리면, 온 세상은 아름다운 색상으로 충만해지지. 눈을 감으면 웃는 아가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라. 장밋빛 볼, 새까만 눈동자, 작고 붉은 입술.
아, 벌써부터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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