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어린이
3월은 새로운 어린이를 만나는 시간이다. 3월 한 달 동안은 교실 안에서 온갖 혼란이 존재한다. 나는 그 혼란을 매년 맞닥뜨렸다. 어느 해도 차분하거나 침착한 첫 만남은 없었다. 3월 첫 날, 어린이를 만나기 전 나는 마음의 준비와 함께 그 날 어떻게 하면 비교적 정신을 덜 털리고 지낼 수 있을지 여러 장치를 생각해 놓는다. 울거나 계속 엄마를 찾는 아이가 있을 때 나한테 집중을 시키기 위한 ‘풍선’이라든지 매력적인 ‘사운드북’이라든지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소용 없는 순간이 있다. 그 해는 여섯 살 반을 맡았을 때였다. 다섯 살 반에서 올라오는 어린이도 있었지만, 새 학기 첫 날 우리 유치원과 교실에 처음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얼굴에 최대한 밝은 표정을 장착하고 재빠르게 손과 발을 움직이며 새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가방, 옷 정리를 도와준다. 이 때 아이들이 엄마를 찾거나 되도록 울지 않게 아이의 정신을 쏙 빼게 말을 해야 한다. “안녕? 정말 귀여운 친구구나. 우리 교실에 소리 나고 재미있는 놀잇감이 있대. 얼른 정리하고 들어가 볼까?”, “나는 소리반 선생님이야.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 우리 들어가서 재미있게 놀자!” 미션을 완수하는 느낌으로 한 명 한 명 아이들을 교실에 들어가게 하는데, 저 멀리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아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선생님의 손에 이끌린 채 얼굴은 계속 엄마가 떠난 신발장 쪽을 보고 있었다. 그 선생님께서 손을 놓으면 아이는 당장이라도 자석처럼 뒤로 끌려갈 터였다. 이런 아이는 가방, 옷 정리는 포기하고 우선은 교실 안에 들어오도록 정성을 쏟는 게 중요하다. 잠시 후 나에게 인계 된 그 아이는 생각보다 쉽게 교실에 쓱 들어왔다. 교실이 아무리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여도, 혼자 새로운 공간에 발을 들인 어린이는 얼마나 낯설고 당혹스러운가? 아이는 “엄마는?”하고 말하며 바로 복도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복도 끝으로 달려갔다. 교실 안에서도 울먹거리며 엄마를 찾는 아이와 잘 노는 아이, 여러 어린이가 있지만 우선 나는 뛰쳐나가는 아이를 데리고 와야 했다. 어떻게든 이 교실 안에서 모든 걸 다뤄야 한다. 나는 몸이 하나이기에 교실 반과 복도 반을 둘 다 살필 순 없었다. 세네 번의 잡기 놀이 끝에 이 아이를 교실에 들어오게 했다.
지금부터는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최대한 여러 아이를 주변에 앉혀 놓고 놀잇감을 가지고 놀아주고, 하이톤 목소리로 분위기를 신나고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 한 편으로는 교실을 나갈 것 같은 아이, 크게 대성통곡 할 것 같은 아이들의 이름을 짚어주며 계속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 자꾸 복도로 나가는 그 친구의 이름은 ‘유라’였다. 난 유라가 못나가도록 교실의 앞문과 뒷문을 다 닫아 놓았지만 잠금까지 할 수는 없었다. 유라는 앞문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한순간 훅 나가버렸다. 난 다시 데리고 왔다. “엄마한테 전화해보자, 엄마한테 빨리 오라고 같이 이야기해보자” 등의 말을 하면서. 한바탕 정신없는 아침의 만남이 끝나고, 이제 교실에 큰 울음소리가 잦아들며 내 시야에 모든 어린이가 보이는 순간이 올 때면 이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게 심호흡 한 뒤, 어떻게든 아이들을 줄을 세워 화장실에 데리고 간다. 몇몇 아이들에게 이곳은 새로운 기관이기에 화장실 사용법을 알려줘야 한다. 두 세 명 씩 데리고 화장실 칸에 들어가 사용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나머지 아이들이 앉아서 잘 기다려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허나 화장실 복도 앞에서 우리의 유라는 벌떡 일어나 신발장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나는 결국 뛰쳐나가는 유라를 챙김과 동시에 다른 아이들에게 화장실 사용법을 알려준다는 사실이 불가능함을 인지한다. 그럴 땐 다른 반에 들어가 있는 도움 주시는 선생님을 부르거나 다른 방안을 생각해본다. 새 학기, 특히 첫날의 유치원은 새로 온 아이들을 적응시키느라 모든 어른들이 바쁘고 정신없기에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도움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의 시야 안에 유라를 두어야 하기에 나는 다른 어른의 도움을 요청했다.
어른이 되어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새로운 공간에 긴장되는 느낌 없이 들어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어른이기에 엄마를 찾거나 울지는 않지만, 어색한 공기에 몸은 뻣뻣해지고 감정이 편하지 않다. 침을 삼킬 때도 소리가 날까 조심스럽다. 화장실을 가려해도 두리번거리며 위치를 찾아야 하고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이 공간의 느낌과 구조를 슬쩍 보며 이곳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어른도 그렇다. 새롭고 낯선 공간에 들어서면 그곳이 익숙하게 느껴지도록 필요한 시간이 있다. 간혹 처음부터 그 공간이 자기 집인 것 마냥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와 분위기를 봐가며 이 공간을 더듬어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무언가 배우는 것을 좋아해 새로운 워크샵이나 장소에 갈 때가 종종 있다. 그곳에서 음료나 차를 내주면서 천천히 긴장을 풀도록 시간을 주는 곳이 좋다. 처음부터 왁자지껄, 거침없는 행동과 말이 있는 곳보다는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적응해나갈 수 있는 배려가 있는 곳에서 점차 편안함과 자신감을 찾는다. 적응을 빨리 하도록 애쓸 수도 있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긴장된 상태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어느새 처음보다는 편해진 마음으로 그 장소로 가는 나를 본다. 공간이 익숙해지면 그곳에 있는 타인들이 보인다. 조금 특이해 보이는 사람, 매력적인 사람, 뭔가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은 사람……그런 사람들과도 하루, 이틀, 몇 번 씩 얼굴을 익히고 말을 건네다 보면 마음 속으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유라는 다른 아이들보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아이였다. 유치원, 교실, 엄마와 떨어져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느낌, 옆에서 누군가가 계속 주의를 환기시키지만 유라의 마음은 너무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유라는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적응할 것이다. 유라가 안정적으로 교실 속 일원이 되어 복도로 나가지 않게 된 시기는 봄이 끝날 때 쯤 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유라와 서로 주파수를 맞추고, 길드느라 분투했다. 물론 유라 뿐 아니라 우리 교실의 모든 아이들과 서로 길들 때까지 인내심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동안 나는 지치기도 하고 희망을 보기도 한다. ‘길들다’는 것은 봄의 시간 동안 어린이와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