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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지내는 기쁨과 슬픔

들어가는 글

by 미미 greenmeme


어린이와 함께 지내는 직업 군으로서, 어린이와 함께 한지 도합 10년이 좀 안되는 것 같다.

어린이가 ‘너무’ 좋아서 이 직업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마음이 없다면 하기 힘든 일인 건 분명하다.

수많은 어린이와 일상에서 매일 보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 어린이는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보살피고 가르쳐주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잠깐 지나가다 마주치는 어린이나 조카들은 귀엽고 예뻐할 수만 있는 대상이지만, 나의 책임 하에 놓인 어린이에게는 조금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나와 1년동안 같은 배를 탄 어린이는 분명한 목적 하에 성숙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내 나름의 약간의 강박이 있다.

어린이와 지내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현재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늘 현재와 순간을 살아간다. 가끔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할 때가 있지만 사용하는 시제도 불분명하거니와 어른처럼 대단히 깊게생각하지 않는다. 잠깐 스쳐가는 바람이랄까? 미래의 걱정과 불안이 많은 나와 같은 선생님은 어린이의 ‘현재성’이 많은 도움이 된다. ‘아, 이거 해야 되는데, 저거 해야 되는데…’ 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오다가도 옆에 있는 어린이가 “선생님! 이것 좀 봐요, 제가 만든 것 좀 봐봐요!”라고 말하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어린이의 작품에 칭찬거리를 열심히 찾아야한다.

어린이는 감정에도 솔직하다. 감정 표현도 과감하다. 슬플 땐 눈물을 펑펑 흘리고, 속상할 땐 칭얼대며 악을 쓴다. 기쁠 땐 깔깔깔 웃으며 몸을 구르기도 한다. 나만 그런 것일까? 대게 감정을 억압하는 어른들은 어린이의 감정 표현에 놀라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어린이한테는 나의 감정을 그대로 잘 전달하게 된다. “선생님도 좋아.”,”선생님도 속상해”, “선생님도 기대된다.” 같은 감정의 언어를 많이 쓰게 된다. 아무도 나의 감정을 미성숙하다고 평가하지 않으니, 어린이와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다. 여담이지만 몸이 너무 아프거나 힘들 때는 어린이에게 “오늘 몸이 안 좋아서 힘이 나지 않아. 너희들이 좀 이해해 줄 수 있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 어린이는 “괜찮아요, 저도 그럴 때 있어요.”라고 말해준다. 어른보다 더 공감을 잘해주는 어린이랄까?

어린이와의 하루는 아주 다채롭다. 온갖 일화로 가득 채워지고, 같이 있는 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나를 찾는 어린이가 있기 때문에 따분할 틈이 없다. 정신을 쏙 빼놓을 때도 있지만 엉뚱한 어린이의 행동과 말에 실없는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하루 종일 모니터만 쳐다보는 사무직을 했다면 회사에서 피식 웃거나 얼굴 근육을 이리저리 쓰며 표정을 지을 일이 잘 없을 것 같다. 허나 어린이와 함께하는 하루라면 표정을 적극적으로 써야 하기에 얼굴 근육도 바빠지면서 웃게 되는 순간이 많다.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이 많기 때문에 동료들과 이야기 할 에피소드도 많고, 하나의 시트콤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 나온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린이와 지내는 슬픔도 같은 맥락에 있다. 굳이 ‘슬픔’이라 칭하기엔 좀 그렇지만, 어린이의 감정을 들어주고 받아야하는 입장이기에, 나의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한다. 내가 그날(혹은 그 전날) 행복한 일로 너무 들떠있어도, 너무 우울해 있어도, 너무 화나 있어도 안 된다. 내가 너무 행복한 날엔 어린이의 슬프고 낙담한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가 너무 우울해 있거나 화나 있을 때는 어린이의 순수한 기쁨에 함께 반응하기가 난감하다. 그렇기에 어린이와 함께 하기 전에는 약간의 마음 정리가 필요하다. 호흡을 고르고 어린이의 세상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 정리가 정말 안될 때가 있다. 그 때는 나의 감정을 미뤄두고 어린이의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잠시 미뤄진 나의 감정은 때로 슬픔이 되어 돌아올 때가 있다.

어린이와 지내는 슬픔 중 또 하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어른의 세계와 어린이의 세계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이다. 어린이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본성, 자연성을 본다. 나쁜 것에 대한 우려와 아픈 것에 대한 염려를 본다. 어린이는 서로 싸우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서로 웃겨주고 이해해 줄 때가 더 많다. 이기적이기보단 자기중심적일 뿐, 기본적인 성정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 편안한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세계에는 비난과 폭력, 전쟁과 배척이 분명히 있다. 그 간극 때문에 희망을 보기도 하지만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계절의 어린이>에는 내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 만나는 어린이의 순간이 있다. 그 과정에는 항상 기쁨과 슬픔이 따른다. 어린이도 어른처럼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고 성장한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작가 김소영의 말처럼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지내는 어른이 있다. 어린이처럼 어른도 사계절의 스텝을 밟으며 어린이의 일상에 함께하고자 한다. 어른의 일상에서 잠시 빗겨 나와 어린이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본성을 기억하고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보내는 시간들은 선명하고, 분명 어른에게 주는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다가 그 ‘가치’를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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