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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에서 익숙함으로

봄의 어린이

by 미미 greenmeme




한 달의 시간 동안 우리 반 교실과 새로운 아이들에게 정을 붙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나는 타고난 기질이 새로운 무언가에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사람이다.

인생 이력을 볼 때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추진력 있고 빠르기보다 천천히 시작하는 것을 편안하게 느낀다. 그 말인 즉, 이 교실에 처음 오는 어린이 못지 않게 나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낯선 교실, 아이들, 집단의 분위기 속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지내느라 금요일 저녁에 집에 오면 꼼짝 못하고 바닥과 한 몸이 되어 누워있었다. ‘불타는 금요일’이 아니라 ‘단 내 나는 금요일’을 맞이했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 시간이 지나면 별 다른 노력 없이도 ‘익숙해진다’는 것을 안다.

아등바등할 필요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하루 빨리 더 익숙해지기위해 어린이와 눈 맞춤을 하고 그들의 행동을 탐색한다. 우리는 서로를 탐색한다.



어린이도 나를 탐색한다. 간을 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선생님이 내 말을 어디까지 들어주나…’, ‘내가 이래도 화를 안 낼까?’하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간파해 관계의 긴장을 조여야 한다. 일 이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은 놀이 시간에 어떤 행동을 해도 살며시 웃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스스로 행동의 선을 조절하는 인간이란 없다. 아니, 있지만 매우 드물다. 보통의 어린이는 집단 활동 속에 제한을 경험하지 않으면 규율을 지키기 어려워하는 어른이 된다.

그 날 아침엔 우리 반 아이들이 한 명당 1-2장씩 색칠을 할 수 있도록 귀여운 캐릭터와 봄 꽃 종이들을 준비해 주었다.



“나 색칠할래요!”


“나도! 난 이거랑 이거!”


“그럼 난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나는 아이들의 흥분이 가라앉히길 잠시 기다리다 말한다.


“자, 색칠하고 싶은 건 한 장 씩 가져가는 거야.”


2-3장을 가져간 아이들의 눈이 꿈뻑거린다.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한 번 더 말한다.


“색칠하고 싶은 것 한 장만 골라서 가져가세요.”


두 번의 알림이 나가자 준수는 가지고 있던 두 장의 종이 중 한 장을 제자리에 돌려 놓는다. 그러나 세 장을 가져간 진이의 손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는다. 시선을 피하며 나머지 두 장을 첫 종이 밑에 슬그머니 숨긴다.


“진이야, 밑에 있는 두 장은 다시 꺼내서 접시에 놓아주세요. 또 그리고 싶으면 우선 한 장 다 색칠한 다음 한 장만 더 가져가자. 알겠지?”


“아이코, 깜빡했다 참! 한 장이었지!”


진이는 귀여운 변명을 하며 나머지 두 장을 재빨리 접시에 놓는다. 사소한 순간이지만 교실에서 크고 작은 규칙들을 적용해 나가야 하는 시기가 왔다. 욕구를 조절하는 경험이 점점 쌓이면 아이들은 스스로 안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린이는 한계 없는 자유보다 제한 있는 자유 안에서 안전하다는 편안함을 가지게 되니까.


아이들과 자잘한 규칙을 이야기하고, 이런저런 상황을 겪는 동안 나는 아이들을 끊임없이 관찰한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서도 그러지 않는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새로운 어린이와 함께 지내는 봄의 시간은, 복도에서 지나가다 마주치는 작년 반 아이들에게 더 정이 가는 시기이다.


나와 1년을 함께 지냈던 저 아이들은 월반해서 잘 지내고 있는지…내가 보고 싶지는 않은지…속으로 청승을 부린다. 자그마치 1년을 지지고 볶고 부대 낀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 하며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 반 아이들을 눈에 많이 익혀야 한다. 앞으로 울고 웃으며 함께 지낼 터인데, 내 눈과 마음에 부지런히 담아야 한다.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해 가야 내 성향과 어떤 점이 잘 맞춰지고 부딪힐 지 준비할 수 있다.



그 해의 우리 반 아이들 성향은 민감하고, 때론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아이들이 있었다. 나도 예민한 성격이지만 어떤 일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허나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를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는 것을 진이의 부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집에 와서 속상한 일이 있다고 했는데요, 친구가 자기를 때렸는데도 사과도 안 하고 같이 놀이하지도 않았다고 해서요.’. 진이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는 당황했다. 그 날 교실에서는 아무도 진이를 때리지 않았음은 물론 ‘너랑 안 놀아’, ‘너는 안 돼’ 같은 말도 나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아이들이 모인 후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난 뒤라, ‘우리 반은 같은 팀! 친구에게 상냥하게 말하기! 사이좋게 지내기!’ 등의 이야기를 부단히 했던 때였다. 그 전화를 받은 후 놀이 시간에 진이 옆에 찰싹 붙어 자세히 보았다. 진이는 여자 친구들이 하는 ‘엄마 아빠 놀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진이는 원목 놀잇감으로 가상의 요리를 하고 있는 미솔이 옆에 가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도 하고 싶다…”, “아빠 할래…” 라고 말했다. 당연히 미솔이는 듣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책상 위에 음식을 차리느라 분주했다. 진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뒷문 앞으로 뛰어 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았다. “나만 안 시켜줘…나만 빼고 놀아” .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오해인가…! 우선 나는 조금 더 지켜보았다. 진이는 상대방에게 뭔가 말할 때 자신감 없이 말했다. 진이는 충분히 의사 표현을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같은 또래인 친구들은 알아들을 수 없다. 친구에게 거부 당했다고 생각한 진이는 잠시 땅굴을 파며 좌절의 시간을 가진 뒤 입을 삐죽 내민 채 분노의 색칠 놀이(분노의 색칠 놀이란 색연필을 꽉 잡고 종이에 마구잡이로 칠하는 형태이다)를 하거나 색종이를 꺼내 아무렇게 구겨 접었다. 나는 진이에게 다가갔다. 이 아이의 세계에 들어가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 또한 나의 중요한 몫이다.


“진이야, 친구랑 같이 ‘엄마 아빠’ 놀이하고 싶었니?”


진이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친구한테 ‘나도 같이 놀자’ 라고 이야기해 봤어?”


역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근데 친구는 못 들었을 것 같아. 같이 가서 다시 이야기해 볼까?”


진이가 잠시 머뭇거린다.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는다. 음…이건 어떤 반응으로 해석해야 할까?


“친구가 못 들었는데 진이가 오해하고 있는 거라면 속상하잖아. 같이 가서 이야기해 보자.”


진이는 엉겁결에 내 손에 이끌려 책상 위에 음식을 최대한 어지러놓는 미솔이에게 다가간다.


“미솔아! 진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대. 들어 줄래?”


미솔이는 토끼 눈이 되어 놀이하던 손을 멈추고 나와 진이를 바라본다.


“자, 진이야 ‘나도 같이 놀자’ 라고 이야기해보자. 씩씩하게.”


“나드 가치 노쟈하아…”


“미솔아, 들리니?”


나는 미솔이에게 물어본다. 미솔이는 고개를 젓는다.


“진이야, 안 들린대. 그렇게 얼굴을 내리고 작게 이야기하면 친구는 무슨 말인지 몰라.


친구를 쳐다보고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해보는 거야.”


“나드…같이…놀쟈”


아직 내 성에 차지는 않지만, 첫 시도이니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솔아, 진이가 같이 놀고 싶다는데 친구랑 같이 놀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 미솔이는 어때?”


미솔이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놀이에 함께 참여하기는 성공했지만 진이와 미솔이는 아직 서먹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진이는 의견을 말할 때마다 너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나는 진이를 보며 생각한다. 앞으로 진이에게는 조금의 자신감과 관계에 녹아들기 위한 배움이 있을 거라고. 그런데 진이가 ‘친구가 나를 때렸다’ 라고 생각한 부분은 어느 부분에서일까? 이 점은 아직 찾지 못했기에 당분간은 진이를 좀 더 지켜보기로 한다.




처음엔 누구나 삐그덕 거린다. 아이들의 성향을 몰라 내 식대로 대하다가 관계가 더 나빠져 버릴 때도 있다. 아이끼리 서로 놀이하다가 혹은 함께 놀고 싶어 다가가다가 어긋날 때도 있다. 조심스러운 아이는 저돌적인 아이의 행동과 말이 자신을 공격하는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일과 속에 선생님의 말씀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아이도 있다. 처음의 이 ‘낯섦’이 서로에 대한 ‘적대감’으로 변하지 않기 위해 긴 인내와 관찰, 어느 정도의 부대낌이 필요하다. 친구가 내 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못 듣는 거였음을, 나랑 놀이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놀이를 더 하고 싶어 하는 것임을, 내 충동대로 행동하고 싶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기분 좋은 칭찬과 표정이 따라옴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실 안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소통하며 마음껏 오해 한다. 그리고 부딪힌다. 서로를 잘 알게 되어 ‘익숙해질 때’까지 말이다. 적대감이 아닌 이해가 그 자리를 채울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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