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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이 뭐였지...?

사계절의 어린이 中 봄과 여름사이

by 미미 greenmeme



그 시대마다 유행하는 이름이 있는 것 같다. 우선 내가 학교 다닐 적엔 끝이 ‘은’이나 ‘영’, ‘윤’, ‘준’으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지은, 지영, 서윤, 서준 같은…….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최근 몇 년간 내가 만난 어린이의 이름에는 한글 이름이 많아졌다. 나 때는 반에 한 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심심치 않게 본다. 그해 우리 반 아이들 이름은 유난히 ‘율’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다. 이름 끝이 ‘율’인 아이가 세 명이 있었다. 둘도 헷갈리는데 셋 이라니. 셋 중에 둘은 여자아이였다. 이름만 나란히 놓고 봤을 땐 쌍둥이 같은 이름이었다. 우리 반에는 진짜 이란성 쌍둥이 ‘미솔’이와 ‘한솔’이가 있었지만. 나는 봄과 여름의 시간 동안 종종 ‘서율’이와 ‘소율’이를 바꿔 부르곤 했다.

아이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기 시간을 가지고 바깥 놀이를 갈 참이었다. 나는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한다.

“미솔이 옷 입으러 출발하세요ㅡ.”

“한솔이도ㅡ 옷 입으러 출발ㅡ.”

“서율이 출발ㅡ 아니 왜 소율이가 출발하니?”

벌떡 일어나 복도로 가려던 서율이의 두 눈이 꿈벅거린다.

“저 서율인데요?”

아…참, 그렇지. 서율이를 소율이와 헷갈렸다.

“맞아, 서율이 출발ㅡ.”

걸어가는 서율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외모와 이름을 연관 짓기 위해 특징을 찾아본다. 서율이는 서울 깍쟁이 같은 느낌이니까 서율이다. 소율이는 조금 말랐으니 ‘小’율로 외우자고 다짐한다.


정신없는 놀이 시간이었다. 나는 다섯 명의 아이를 데리고 물감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학기 초에는 되도록 물감 사용을 지양하지만, 봄이 지나갈 때쯤, 이것저것 만들기를 잘하는 여자아이들을 위해 물감을 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감의 양을 적절히 짜 주고, 붓에 묻힐 적정한 물의 양을 알려주는 것, 몇 번의 붓칠을 해야 도화지 때가 안 생기는지에 대한 반복적인 지도가 필요했다. 다섯 명의 친구 중엔 서율이도 있었다. 서율이가 종이의 한 지점에 계속 붓칠을 해 생기는 도화지 때가 거슬렸다. 서율이에게 말하려는 찰나 소율이와 미솔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얘(미솔)가 인형 팔 좀 껴 달래요.”

“어, 잠깐만 서율아. 소율아! 붓칠 이제 그만해야 해. 소율아?”

소율이라 불린 서율이는 끄덕 않고 계속 붓칠을 한다.

“소율아, 붓칠 그만해야 한다니깐.”

“선생님, 제가 소율인데요ㅡ.”

내 옆에 서 있는 소율이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 그렇지, 소율이ㅡ , 아 서율이었구나! 서율아, 붓칠 그만하자. 그러면 종이 찢어져.”

그제서야 진짜 서율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선생님, 또 헷갈렸죠? 아이참, 왜 자꾸 소율이라 부르는 거지, 나는 서율인데….”

서율이의 혼잣말에 민망해진 나는 재빨리 말한다.

“미안해, 서율아. 선생님은 서율이랑 소율이가 왜 이렇게 헷갈릴까?”

“우리들은 안 헷갈리는데, 선생님은 왜 이렇게 헷갈려요.”



그러게 말이다. 한순간에 여러 개를 생각해야 해서. 서율이를 보면서 소율이도 봐야 해서 그런 것 같다. 머릿속에서 서율이와 소율이가 섞여버린다. 정신없는 교실 안에서 얼마든지 이름을 헷갈려 부를 수 있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타인의 이름으로 불릴 때 기분 나빠 한다. 어린이는 ‘이름’에 큰 정체성이 있다. 이름 한 번 불리면 바로 뿌듯해하거나, 뜨끔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어린이가 사랑 받고 관심 받고 있다는 자신감을 들게 한다. 생각해 보면 어른도 그런 것 같다. 남자 친구가 나를 전 여자 친구 이름으로 불렀다고 생각해보면…머리로는 실수란 걸 알지만 기분은 매우 언짢을 것이다. 이름이란 그런 것이다. 불리는 것 이상으로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여름이 오기 전에는, 이름을 잘못 부르는 실수를 끝내자고 마음먹는다. 이름을 부르기 전 마음속으로 확인하고 부르는 습관을 들여보았다.

잠깐, 서율이…이름 맞지?

“서율아!”

소율이, 소율이인 거 확인했어.

“소율아!”

그래도 여전히 시간에 쫓기는 순간엔, 서율이와 소율이를 바꿔 불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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