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어린이 中 여름의 어린이
생명이 약동하는 봄의 시간이 지났다. 초여름의 계절, 우리 교실에도 서서히 안정감이 자리 잡힌다. 봄의 시간 동안 ‘루틴 굳히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 교실 속에 들어오기 전, 아이들은 해야 할 것이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가방 정리다. 어른들도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면 자리를 만들고 가져온 물건을 정돈하며 편안하게 정돈하지 않는가? 어린이도 그런 의식이 필요하다. 가방에서 물통과 수저통을 꺼내 바구니에 넣는다. 겉옷은 구겨지지 않게 잘 접어 가방과 함께 사물함에 넣는다. 교실 세면대에서 손을 닦는다. 정돈하는 아이들의 눈동자는 바쁘다. 시선을 끄는 무언가가 있는지, 새로운 놀잇감이 있는지, 어떤 친구가 재미있게 놀고 있는지, 내가 놀고 싶은 친구가 왔는지 살펴본다. 나는 우리 반의 절반 이상이 등원할 때까지 교실 분위기가 차분해지도록 아이들이 앉아서 하는 활동을 준비해 놓는다. 아침부터 교실이 왁자지껄 소란스러우면 내 마음은 요동친다. 아침맞이는 차분하게 시작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교실 안은 엄청난 에너지로 채워질 것이므로. 해가 중천으로 갈수록 아이들의 에너지도 올라간다. 나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따라가고 조율해야하므로 아침에는 열을 올리지 않는다.
그날은 유난히 날이 습했다. 기분 나쁜 습기가 흐릿한 날씨의 불쾌지수를 높이는 날이었다.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이 예민한 어린이는 날씨의 습도와 온도에 몸이 반응하는 것 같다. 아이들의 움직임은 산뜻하지 않고 물먹은 솜처럼 느려진다. 그날 아이들은 등원 후 루틴을 성실히 하지 않았다. 바닥에 몸을 한번 구르고 가방을 정리하거나 옷 정리도 한참을 미적거렸다. 미소는 원래 한번씩 교실 바닥을 구르고 교실을 한 바퀴 돌아본 뒤에야 가방과 물건, 옷 정리를 하는 친구였다. 가끔 옆 반도 들려 슬쩍 구경하고 온다. 아침마다 정리하는 미소를 지켜보며 인내심을 다스렸다. 보통은 내 목소리가 커지기 전에 가방 정리를 시작했지만, 습한 날씨의 그날은 도무지 정리를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복도 바닥에서 미소는 분홍색 겉옷으로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미소가 언제까지 겉옷으로 접기를 하는지 기다렸다. 잠시 교실에서 다른 아이와 놀이하다 보니 복도에 있는 미소를 깜빡 잊었다. 설마, 20분이나 지났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복도로 나갔다. 미소는 아직도 겉옷의 팔을 오므렸다 접었다 하고 있었다.
“세상에, 미소야!”
미소는 대꾸하지 않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쟤가 왜 저러나…
“미소야, 아까 왔는데 아직 옷 정리도 안 했니? 친구들은 벌써 들어가서 놀이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열 세는 동안 옷 다 정리하고 들어오는 거야.”
열…아홉…여덟…일곱…여섯…다섯…넷…까지 미소는 꿈쩍하지 않는다. ‘셋’을 말하자 그제야 재빠르게 옷을 접고 사물함에 넣는다. ‘하나’를 말하자 아슬아슬하게 교실로 들어온다. 그러나 미소의 가방은 교실에 아직 그대로 있다.
“미소야, 가방에서 물통이랑 수저통 꺼내서 바구니에 정리하세요.”
아까의 행동을 보아하니 이번 단계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나를 찾는 다른 아이들의 부름이 있었기에 곁눈질로 틈틈이 미소를 보았다.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다가, 그림 그리고 있는 친구에게 다가간다. 이야기꽃을 피운다. 내 속에선 감정이 부글부글 올라온다.
“미소야, 정리 먼저 하고 손 씻고 이야기 나누자.”
미소는 살짝 웃으며 물통을 정리한다.
“수저통도 꺼내야지”
수저통을 꺼내러 가방으로 가던 미소는 바닥에 떨어진 반짝이는 스티커를 발견한다. “우와, 예쁘다.”하며 스티커를 한참 만지작거린다. 언성을 높이려다 얼굴을 바닥에 대고 스티커를 보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어투를 상냥하게 바꿔본다.
“스티커가 너무 예쁘지? 정리 다 하고 오면 선생님이 더 예쁜 스티커 꺼내줄게.”
“네!”라고 대답한 미소는 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곧 있으면 놀이 시간을 마무리하고 모여 앉아야 한다. 아이들과 모여 앉으면 나의 반경을 벗어난 미소는 더더욱 미적거리며 정리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홀로 뒹굴고 있는 미소를 계속 언급할 것이다. 그럼, 이야기 시간이 산만해지겠지…얼른 미소를 정리 시켜야 한다. 미소는 몸에 추라도 단 것 같았다. 천천히 일어나 수저통 정리까지 성공했다. 두 가지가 남았다. 가방을 넣고, 교실로 들어와 손을 씻는 것. 미소의 가방을 낚아채서 정리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어른의 마음이 조급하여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오고 싶지는 않았다. 교실에서 놀이하고 있는 아이들은 슬슬 조용한 놀이 활동에 지루함을 느낄 참이었다. 흐름이 깨지는 시점에 활동을 전환해야 한다. 걱정과 달리 미소는 바로 가방을 정리하고 들어왔다. 이로써 등원한 지 40분 만에 미소의 루틴이 끝났다. 미소를 끝으로 아이들의 아침 루틴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바로 놀이 정리를 시작했다.
아침의 루틴은 한 명만 어긋나도 일과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저마다 다른 감정을 가지고 아이들은 교실 속에 들어온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 루틴으로 굳혀진 행동을 하며 긴장감을 풀고 소속된 반의 일원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만의 작은 의식이다. 나도 루틴이 있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10분 전 먼저 교실에 들어간다. 불을 켠다. 교실의 온도를 확인한 후 조절한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은 제자리에 놓는다. 노트북을 켠다. 창문을 열어 환기한다. 활동 자료를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교실에서 나가기 전 그 날의 주제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틀어 놓는다. 이렇게 준비를 마친 뒤 아이들을 맞이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울 수가 없다. 준비된 잔치에 손님을 부르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 루틴을 실행하지 못하는 날도 많다. 늦게 출근했거나, 아침부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거나, 급하게 해야 할 일들이 있거나. 물리적인 상황 때문인 경우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전날 있었던 개인적인 일로 인해 그날 아침에 내 마음이 유독 참담하거나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루틴을 지키러 가기 힘들다. 하지만 여름의 계절에 들어와서는, 그런 아침일수록 교실에 들어가 순서대로 행동했다. 잡념이 불쑥 튀어나와도 차분히 행동했다. 루틴은 삐뚤빼뚤 만들어진 오늘 아침의 마음을 둥글게 마모한다. 아이들에게도 루틴이 마모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들어왔건, 너무 들뜬 마음은 조금만 낮게, 너무 우울한 마음은 조금 들뜨게 해주는 시간이 루틴의 시간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