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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시 Oct 02. 2024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

우울증은 제가 조금 철이 들고나서부터 늘 곁에 있었고, 지금도 곁에 있는 아주 가까운 존재입니다. 엄마가 우울증을 심각하게 겪었을 때는 너무 어려서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우울증의 심각성을 깨달은 건 언니를 통해서였습니다.

언니는 대학교에서 자취를 할 때 처음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커서 들은 이야기지만 밤중에 죽고 싶다는 언니의 연락을 받은 엄마는 2시간 거리를 차로 운전해 달려가 언니를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괜찮아진 줄 알았던 언니는 직장에 다니며 조증과 울증의 증상을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보이다가 임신을 계기로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형부는 여러 부분에서 미성숙하고 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형부에 비하면 언니가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 있던 어떤 사건이 원인이기도 했죠. 엄마와 아빠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조증 상태이던 언니가 임신까지 하게 되자 결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언니가 조증이던 상태에서 일어난 그 선택은 이성적인 상태의 언니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다 형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몇 주간 입원을 하게 되면서 언니의 상태가 갑자기 이상해졌습니다. 아마 그 일을 계기로 조증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증의 부작용으로 한없는 우울증의 심연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언니는 그 뒤로 방에만 누워 하루 한 끼만 겨우 먹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방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죠. 사람이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게 우울증의 증상이라고 하던데, 그 말 그대로 언니는 끊임없이 어딘가의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첫째를 임신 중이었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언니의 뱃속에서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엄마는 첫째가 태어나면 뱃속에서 들은 말이 전혀 없어서 말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지금은 첫째도, 둘째도 아주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언니의 우울증이 완치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종종 언니가 기운이 없어 보이면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길 바랐습니다. 적어도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길 원했죠. 그러나 형부는 아빠를 너무나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실이 엄마를 다시 한 번 우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 당시 엄마 곁에 있던 저는 엄마가 비정상적으로 짜증을 자주 내고 예민해졌다고만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고 TV만 보며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았죠. 게다가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계기가 있음에도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말만 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때 엄마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엄마도 과거 무섭게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제 말을 듣고는 곧바로 집 근처의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엄마의 상태는 점차 안정되어 갔습니다. 저도 일하던 곳에 양해를 구하고 엄마 곁에 있기 시작했고, 엄마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현재는 약도 최소 용량으로 줄여 계속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빠에게도 알코올성 우울증이 있습니다.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온 아빠는 술에서 깨고 나서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이틀 정도를 방에만 틀어박힙니다. 평상시에도 일주일에 3일 정도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멍하니 TV만 보고 집에 안 나갈 때가 수두룩하죠. 술을 먹고 난 뒤 이런 우울 증상을 겪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언니 때처럼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이라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아빠 방문을 살며시 열고 상태를 보기도 합니다. 

저도 우울감을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지금도 언니의 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제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저를 가라앉게 만들죠. 엄마가 지금까지 어떤 시간을 지나와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술을 먹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방에 들어가 자는 아빠를 보면 한없이 무기력해집니다. 어쩌면 저도 우울증 위험 인자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게 이상할 정도죠. 그럼에도 제가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가족들 곁에 있을 수 있는 건 대안학교에서 넓은 세상과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며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일 거고, 무엇보다 우울증을 견디면서도 늘 저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며 기도를 해준 엄마 덕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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