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가 가장 많이 하는 건 글을 쓰는 일입니다. 친구와도 카톡으로 글을 써서 대화하고, 알바로도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이렇게 제 이야기를 쓰고 있고, 거기에 더해 틈틈이 공모전에 낼 소설을 준비하고 있죠. 하루 종일 노트북에 한글 파일을 띄워놓고 생활하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다양하게 비유됩니다. 제가 소설을 즐겨 읽던 학창시절에는 글을 쓰는 건 쌓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작가는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경험과 재밌는 상상을 흰 페이지에 꺼내 쌓아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정했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서 제가 쓴 글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던 수업은 시를 배우는 전공 수업이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어떤 시를 패러디하라는 과제를 받았고, 배정된 시를 읽자마자 어렵지 않게 과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어 다시 찾아온 수업 시간, 교수님이 나눠준 유인물에는 제 과제물이 실려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좋은 예가 있어서 가져왔다고 하며 그날 수업 내내 제 패러디 시를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패러디의 바탕이 된 시는 누가 봐도 이상하고 비극적인 일들을 담담하고 절제된 언어로 반어법을 사용해 표현한 시였습니다. 저는 그 시를 보자마자 어디서 본듯한 익숙한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패러디할 내용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아빠가 술을 먹고 며칠 동안 들어오지 않아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을 이어나가는 저와 엄마의 모습, 멀쩡히 아침밥을 차려 먹고 일상을 보내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시 속에 바꿔 넣었을 뿐인데 교수님에게 “이런 게 바로 시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교수님의 말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내 삶이 역시 어딘가 어그러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패러디 시를 쓴 후 저는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예전보다도 더 자주 그 빈자리를 신경 쓰게 됐습니다. 글은 그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딘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도 꺼냈던 이야기지만 제가 문예창작학과에서 썼던 모든 소설에는 크고 작든 늘 아빠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술을 먹는 아빠, 할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아빠, 예술가인 아빠, 상처를 잊어버리기 위해 도망가는 아빠……. 그리고 거기에는 빠짐없이 저의 모습도 섞여 있었죠. 아빠에게 상처받은 나, 아빠가 싫은 나, 아빠가 갑자기 사라질까 봐 무서운 나, 아빠와 화해하지 못하는 나, 제대로 된 아빠의 존재를 갈망하는 나……. 깨닫고 보니 아빠보다도 더 많은 저 스스로의 모습이 소설 속에 있었습니다.
그 소설들을 최근 꺼내 읽어 보고 제가 하고 있는 일이 그저 글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태어나서부터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알코올 중독인 아빠, 늘 견디는 엄마, 상처받았지만 스스로를 보듬을 줄 몰랐던 언니와 살며 제 안에는 수많은 응어리가 생겼습니다. 그 응어리들을 하나 하나 풀어서 꺼내놓은 결과물이 바로 제가 썼던 소설들이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이나 감정, 하는 말과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상처받은 스스로의 모습을 제대로 인지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깨닫고 나니 다음으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될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설로 꺼내놓은 제 모습을 발판 삼아, 거울 삼아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자 발길을 정방향으로 돌릴 수 있었던 겁니다.
비우는 일은 더러워지고 어질러진 걸 깨끗이 정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시 채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채워놓아야 할 것을 제대로 채워놓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거죠. 어쩌면 전 그걸 위해서 이제까지 계속 글을 쓰고 싶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요즘 제가 쓰는 소설 속에는 항상 상처받은 아이들이 존재합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위로받고 어떻게 성장하도록 할 건지를 고민하며 저도 위로를 받고 성장하는 기분이 듭니다. 오랜 기간 스스로를 비웠던 제가 이제는 스스로를 채울 소설을 쓰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