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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시 Sep 25. 2024

술 먹는 아빠의 내성적인 딸

성격은 자라온 주변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무척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그 정도가 더 심해져서 사람과 대화하는 게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좋은 동생들과 언니들을 만나면서 성격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내향적인 면모가 강한 사람이지만, 제가 해야 할 말은 제대로 할 수 있으며,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게 됐죠. 극단적으로 소극적 성격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현재 이런 성격이 되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빠는 제가 사는 지역 안에서 발이 참 넓습니다. 태어나서 60이 넘은 지금까지 한 지역에서 쭉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술친구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하지만 저와 엄마는 아빠의 친구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고 기억하고 있지도 않죠. 아빠의 지인 대부분이 술을 통해 연결된 인맥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아빠가 어떻게 얼마나 술을 먹는지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알코올 중독으로 집 근처를 배회하는 아빠가 동네에 민폐를 끼친 적도 있었기 때문에 근처 이웃들과 제대로 교류한 적도 없습니다. 아빠의 존재는 저에게 있어서 마치 부끄러운 치부와도 같았습니다. 들키면 숨고 싶고, 그저 감추고만 싶은 그늘진 부분이었죠. 그게 제 성격이 내성적이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족에 대해서 묻게 됩니다. 말문을 트는 데 그만한 주제가 없으니까요.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형제 자매는 있는지 등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질문입니다. 그 평범하고 누구나 수없이 들어봤을 간단한 질문이 저에게는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질문을 들으면 가슴을 뭔가로 누르는 듯한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면역이 생기지 않았던 어릴 때는 부모님 얘기를 묻는 것 자체가 싫었습니다. 특히 아빠의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난감했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그 사람의 직업이라면, 아빠의 직업은 단연 알코올 중독자라고 하는 게 맞았으니까요. 그렇게 대답할 수 없었게 때문에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냥 이것저것 하신다고 대충 둘러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걸 꺼려하게 됐고, 관계는 좁아지고 대신 깊어졌습니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지 않으면 저에 대한 얘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대화를 시작하지 않거나 이어가려고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몰랐던 시절부터 저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가급적 혼자 있으려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죠. 친구를 원했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저에 대한 얘기를 꺼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친한 친구는 대학 신입생 때 제 이름을 누구보다 밝고 활기하게 불러주며 저에게 먼저 성큼 다가와 줬던 친구입니다. 친구가 선입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와 준 덕에 지금은 아빠에 대한 얘기도 꺼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관계가 됐습니다.

가정환경이 성격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건 친한 동생을 보면서도 느꼈습니다. 친한 동생의 가족은 대가족으로,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오빠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친할머니는 남아선호사상을 강하게 갖고 계셔서 친한 동생은 여자라는 이유로 오랜 시간 집 안에서 차별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늘 집에 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감시받는 것과 마찬가지인 환경에서 지냈죠. 그에 따라 친한 동생은 저와 흡사한 성격에 더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았고, 반드시 필요한 말 외에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 동생과 친해진 건 단순히 취향이 비슷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생의 부모님은 서로를 사랑하고 애틋한 관계여서 그 밑에서 자란 친한 동생이 저보다 더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했는데,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그 사정을 알게 된 겁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모님을 선택할 수 없다고 하지만, 또 하나, 스스로의 성격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제 성격을 후회한다거나 싫어하지는 않지만 다른 외향적인 성격이 부럽다는 생각은 많이 듭니다. 저와 가장 친한 친구가 저와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망하는 마음으로 더 쉽게 친해졌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활발하고 밝은 성격이었으면 부모님이 더 기뻐하지 않았을까, 조카들과도 더 재밌게 놀아주는 이모가 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집안의 분위기가 좀 더 밝아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지만, 결국에는 고개를 젓습니다. 그래도 역시 이 성격이기 때문에 엄마나 언니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던 거라는 걸 아니까요. 

친한 동생은 세심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자신의 일에 늘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어딜 가도 말수는 없어도 예쁨 받습니다. 저는 어딜 가더라도 밝고 매력적인 사람보다는 이상하게 한 발 뒤에 서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 정도의 용기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라도 응원의 말을 건넵니다. 뭐든지 눈치를 보고 주위를 살피는 성격 덕분에 눈치를 채고 깨달은 것도 손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아빠의 약한 마음을 알아챈 것도 그런 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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