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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시 Jun 12. 2024

손님방이 없는 집

대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원활한 교우 관계가 없던 저로서는 처음으로 친구 집에서 자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아빠는 교장직에서의 퇴직을 앞에 두고 그 이후의 삶을 위해 다른 직업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분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에 친구의 아버지는 그날 이후 저의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저에게 서운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너는 왜 나 집에 초대 안 해줘?”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습니다. 친구 입장에서도 저는 집에 데려온 첫 친구였고 특별한 대우를 해준 거였는데 정작 저는 집에 친구를 초대할 기미가 전혀 없었던 겁니다. 저희 집 사정을 몰랐던 친구는 무척 섭섭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언제 어떻게 술을 먹고 들어올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아빠가 있는 집에 친구를 초대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한 번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꺼낸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친구의 기분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아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에 미안하다고 덧붙이는데 왠지 목에 뭔가가 걸린 것 마냥 답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저에게 있어서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아빠가 친구 사이의 기본적인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됐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도 집에 이모들이나 친구를 단 한 번도 데려온 적이 없었습니다. 왜 그걸 이제야 알았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아빠의 문제를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빠는 원래 저런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빠는 실제로 일주일 중 집에서 자는 날보다 밖에서 술 먹는 날이 많을 때도 있는 사람이라 그런 사고방식이 문제가 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저에게 많은 관계가 생길수록 아빠라는 존재를 외면할 수 없게 된 겁니다. 우리 가족은 ‘알코올중독자 가족’이라는 외딴섬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친구와의 일을 계기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당황스러운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일을 통해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질 수도 있었던 괜한 오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겪지 않은 일을 미루어 상상해 배려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이후 집에는 초대하지 못했지만 그 대신 제가 다니는 교회 전체를 빌려 3박 4일 동안 친구를 초대해 제대로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언급하지 않았던 아빠에 대한 고민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는 조금씩 말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계단을 하나 하나 오르듯 아빠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계기가 될지는 정말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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