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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시 Jun 19. 2024

나에게 가능과 불가능은 딱 한 글자 차이였다.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도 절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을 해낸 사람들을 보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라고 표현하는 걸 자주 듣기도 하죠. 하지만 제가 느끼는 두 단어의 차이는 아주 작았습니다. 그건 그저 '아빠가 할 수 있냐, 할 수 없냐’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죠.

알코올중독인 아빠가 있는 저희 집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저희 집에는 ‘초대’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리고 없는 게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여행’입니다. 당일이라도 여행을 가려면 예약을 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언제 아빠가 술을 먹을지 모르니 가족끼리 여행을 간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명절에도 술을 먹고 들어와 함께 가지 못한 적이 많 가족여행은 그저 사치였습니다. 또 가족이 한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주방에 식탁이 있지만 아빠는 늘 거실 TV 앞에 있는 작은 탁상에서 식사를 합니다. 충분히 함께 모일 수 있는데도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식사하는 걸 보면 우리가 가족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간혹 가족들끼리 여행을 갔다 왔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추억할 수 있는 가족 여행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항상 씁쓸하게 느껴졌죠.

가능과 불가능은 제 삶에서 그저 한 글자 차이였습니다. 저에게는 모든 게 그저 아빠가 알코올중독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습니다. 객관적으로 그 말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아빠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삶의 방식은 그 누구보다 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습니다. 아빠와의 관계가 더 안 좋아졌고, 아빠는 그런 저 때문에 술을 먹는 날이 더 많아졌죠. 이런 저와 아빠 때문에 엄마도 더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능과 불가능도 그저 한 글자 차이이듯이, 아빠 때문에 불가능해진 일들도 그저 그런 일로 받아들이고자 마음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아빠를 바꿀 수 없다면 제가 먼저 바뀌면 되니까요. 포기하는 대신, 먼저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바뀌기 시작하면 그 변화가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올 거라는 소망을 품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은 가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특별한 날에는 엄마와 외출을 해 가까운 곳에서 카페나 산책으로라도 기분 전환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한 끼라도 제가 특별한 요리를 해서 가능하면 아빠와 함께 식사를 하려고 했죠. 그렇게 안 되면 TV 앞에서 식사하는 아빠에게 따로 음식을 덜어주거나 그날 부재하고 있더라도 음식을 따로 덜어놓고 나중에라도 꼭 드리려고 했습니다. 잘 안 될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아빠를 비난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보다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빠로 인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일도 잊지 않고 찾아와 저희 가족의 삶에 불쑥 고개를 내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중독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아빠가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어 자꾸만 밖으로 돌고, 가족을 피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제대로 치료를 받겠다고 용기를 낼 아빠가 망설이지 않고 돌아올 수 있을 만한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지금 제가 아빠와 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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