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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시 Jun 26. 2024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가장 먼저 '아빠'를 썼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대안학교를 다니며 작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늘 말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게 편했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 몇 장이고 글을 쓰라는 과제가 더 쉬웠습니다. 지금도 제가 중학교에 입학해 처음 썼던 시를 칭찬받고 전체 학생 앞에서 낭독했던 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그렇게 잘 쓴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시라고 해줬던 여러 사람들의 응원의 말들이 제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제가 문예창작과에 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시절은 제 인생에서 보물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제 인생의 베프를 만났기 때문이죠. 집에 초대하지 못하는 사연을 듣고도 오히려 미안해하고 제 사정을 이해해 줬던 친구는 늘 저에게 새로운 에너지와 위로, 응원을 아끼지 않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관계입니다. 

또 하나는 당연히 맘껏 글을 쓸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오직 문예창작만을 보고 전공을 선택한 경우라 대학교에서의 모든 공부와 수업들이 즐겁고 유익했습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소설을 쓰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의 글도 접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습니다. 

과에는 여러 소모임이 있었는데, 저는 고민 없이 1학년 때부터 소설 창작 소모임에 들어가 활동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 멤버 중 2명의 단편소설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소모임이었습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낼 소설을 써야 됐던 저는 자연스럽게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제 첫 소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건 소설이 아니라 제 현실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놓은 수필이었으니까요. 제가 직접 겪은 이야기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소설로 쓰는 일은 없었습니다.

시 수업 시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에 애정을 갖게 된 계기는 중1 때 쓴 시였지만, 크면 클수록 소설이 더 재밌어졌고 시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시 수업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 날 제가 낸 과제가 그날의 수업 자료로 등장했습니다. 기존에 있는 시를 각자의 방식으로 패러디하는 과제였는데, 시의 주제가 ‘모순’이었습니다. 저는 과제를 받고 망설임 없이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오지 않은 날의 저희 집 풍경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시를 바꿨습니다. 아빠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아침을 차려 먹고 일상을 살아가는 그 시간의 저희 집 풍경을 그대로 담았을 뿐이지만 교수님은 그 과제를 보고 이 자체가 시라고 표현했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삶의 모습과 모순, 그리고 부조리를 보여주는 하나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동안 아빠의 존재를 제 삶 그 자체이자, 동시에 모순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사실 지금까지도 글을 쓸 때 문득문득 아빠를 보며 했던 생각이나 아빠가 부재중인 시간에 들었던 감정들이 튀어나옵니다. 그저 제 삶의 일부분을 담았을 뿐인 과제를 시라고 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 안에서 아빠가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상처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눈에 띄게 밖으로 드러나는 상처와 아무도 볼 수 없는 내면에 남는 상처. 쉽게 남의 눈에 띄는 상처는 자주 부끄럽고 눈치를 보게 되지만 그만큼 위로받고 응원받을 기회도 많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평생 숨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로받고 상처를 극복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제 본능은 어디에라도 묵혔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학 4년간의 생활을 통해 글로 많은 것을 표현했습니다. 아빠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더는 하지 않았지만, 제가 쓴 소설의 곳곳에는 아빠와 저의 모습이 스며들어 있는 듯합니다. 그렇게 제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 오늘 이곳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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