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건넨 질문, 내가 다시 쓴 삶의 해석
암은 어느 날,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찾아왔다.
오래된 침묵 끝에, 단 하나의 문장이 들려왔다.
“유방암 3기입니다.”
그 순간, 모든 언어는 입 안에서 산산이 흩어졌고
시간은 실금처럼 갈라진 내 마음 위로 내려앉았다.
몸이 아닌, 존재의 중심이 흔들렸다.
고통은 단지 육체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정신의 지층이 흔들렸고,
‘존재’라는 말은, 그 순간부터 해답이 아닌 질문이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부터 나는 처음으로 삶에게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삶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해석하는 일이다.”
— 파울 틸리히
투병은 단지 질병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라는 무형의 적과의 내면 전쟁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
이전의 나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상실감.
나는 처음으로,
그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침묵 속에서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나는 묻고, 오랜 침묵 속에 머물렀다.
그때, 감정의 가장 낮은음이 내 안에서 울려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두려움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이해될 때 사라지는 감정이라는 것을.
“두려움은 인간 존재가 가장 먼저 만나는 철학이다.”
— 키에르케고르
병은 나를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시켰다.
그러나 그 틈 사이로,
나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창가에 머무는 빛의 결,
차 한 잔의 온도,
내 아이의 웃음이 내 마음을 건드리는 방식.
그것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었다.
마치, 삶이라는 세계에 처음 발 딛는 이방인의 감각이었다.
나는 이제,
미래를 설계하는 대신 오늘을 통과하는 법을 배웠다.
“삶이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깨어 있게 하는 감각이다.”
— 에크하르트 톨레
“우리는 고통을 통해 삶의 기원을 다시 발견한다.”
— 한나 아렌트
이전의 나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가’로 나를 평가했다.
그러나 병 이후의 나는
‘얼마나 나를 존중하며 살고 있는가’로 나를 다시 정의한다.
회복은 단지 건강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존재의 깊은 층위에서 나 자신을 껴안는 일이었다.
나는 내 마음에 매일 이렇게 말한다.
“고맙다, 이렇게 견뎌줘서.”
“미안하다, 너무 오래 네 목소리를 무시했구나.”
“회복이란 단지 병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가 더 깊은 차원에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 칼 구스타프 융
혹시 지금,
당신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면.
혹시 지금,
삶이 무너진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면.
부디 기억해 주세요.
고통은 당신을 꺾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건 당신이 더 깊어지기 위한 문입니다.
그 문을 지나면,
삶은 새로운 이름으로 당신을 부릅니다.
“이 또한 내 삶의 일부였구나.”
그 말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시작할 자격이 있습니다.
삶은 우리를 꺾기 위해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삶은, 우리가 꺾인 자리에서 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