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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ug 23. 2022

김별아 지음. ‘불의 꽃’을 읽고

조선시대 불륜을 그린 소설

사랑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남녀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인간의 행위는 많다.

그러나 태초에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었을 때,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의 영속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언제부터인가 인류의 영속을 위한 행위가 결혼이라는 의례를 거치고 혼외정사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애틋함을 가지고 혹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세속을 ‘선량한 풍속’이라는 잣대로 풀어낸다.     


소설가는 역사 속에 한 여인을 불러낸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1423년) 9월 25일의 첫 번째 기사정사를 보았다.

대사헌 하연이 말하기를, “비밀히 계할 일이 있사오니 좌우의 신하들을 물리치고 의정 이원만을 남게 하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나가니 하연이 계하기를,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라 유씨를 옥에 가두었다.

재위 5년째에 젊은 왕 세종은 분노하였고, 계사 후 13일이 지나 어명으로 ‘이귀산의 아내 유씨를 참형에 처하고, 지신사 조서로를 영일로 귀양’ 보낸다.    

 

  왕조 실록의 짧은 글은 소설가를 고려 말, 조선조 초에 이르는 격랑의 시기에 부모를 잃고 천애 고아가 된 어린 여자아이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는 고단한 삶을 거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처형당한다.

“삶과 죽음은 쌍생아이기에, 죽음이 두렵다면 삶도 두렵겠지요. 소문에 귀를 세우고 곁눈질하는 삶이라면 저승사자의 말발굽 소리와 서늘한 옷깃 또한 맞바라보기 어렵겠지요.

죽음으로부터 도망 다니다 삶도 영영 놓치겠지요. 나는 다만 그리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찰나에 지나지 않을지나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삶을 살고 싶기에,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는 죽음을 기꺼이 껴안습니다.

낱낱이 노출된 나의 죽음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든 삶이든 남의 것에는 번거로운 의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처형을 앞둔 여인의 독백이다.   

  

천애 고아가 된 여자아이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먼 일가에 맡겨지고 그곳에서 또래의 남자아이 ‘조서로’를 운명처럼 만난다.

이름도 없는 여자아이는 남자아이가 지어준 ‘유녹주’로 불린다.

 운명은 그들을 갈라놓고 이 십여 년이 지난 후 노인의 후처가 된 여자를 만난다.

한 번 불이 붙은 남녀의 정념은 이 세상 법칙으로는 끌 수 없다. 불은 어둠에서 빛나게 마련이다.

이때 사랑은 ‘부정한 정사’가 된다. 세상은 용납하지 않는다.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가혹한 형벌이 가해진다.     

오늘도 이 세상이 정한 ‘불륜’의 사랑이 ‘정념의 불’, 불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불빛은 세상에 나오고 나온 불빛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책 소개

불의 꽃. 김별아 저. 2013.04.15. ㈜해냄출판사. 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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