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박범신 장편소설

by 안서조

이 책은 박범신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노인들을 위한 큰 글자 책이다.


소설에는 근대사와 지금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염전과 사우디 건설 현장 노동자, 월남전 파병, 하역노동자 그리고 그의 아들, 딸들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엮어간다.


소설은 서해안 강경 염전 소금밭에 코 박고 죽은 염부가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내일 아들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부터 무리하게 일하다가 땀을 많이 흘려서 아이러니하게 소금밭에서 염분 부족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인물 선명우의 아버지가 죽은 것이다.


선명우는 염전을 하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다. 위로 형이 두 명이고 누이동생 둘이 있다. 어렸을 때 엄마는 병으로 죽는다. 아버지는 선명우에게 모든 희망을 건다. 나머지 가족은 선명우를 위해 염전에 매달린다. 대학에 진학한 선명우는 두 여인에게 얽힌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중학교 1학년 때 집으로 갔다가 아버지에게 혼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세희, 대학교 졸업반일 때 만난 부잣집 고명딸 혜란이다. 혜란과 결혼해서 딸 세 명을 둔다.


이야기를 엮어가는 화자 ‘나’는 시인이다. 어머니의 성화로 대학을 가기 위해 고향에서 떠난다. 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꼭 대학을 가야겠냐?”라고 말한다. 그리고 노동일을 하다가 사고로 죽는다.‘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시인이 됐지만 변변한 직장은 없다. 늦게 한 결혼도 이혼했다. 이혼하고 선배의 주선으로 고향 근처 대학에 강사 자리를 추천받고 고향에 내려와 있다. 10년 전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강경에 온 선명우의 막내딸 시우를 우연히 만난다.


시우는 연극 배우 겸 직장인이다. ‘나’는 시우를 도와 아버지를 찾는다. 시우의 아버지는 선명우이고 강경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염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시우와 교제하고 시우는 임신한다.


책 중에서

강경에는 젓갈이 유명하다. 내가 가장 잊을 수 없는 젓갈은 조기젓과 황석어젓이었다. 봄에 담그는 젓갈로는 조기젓 꼴뚜기젓이 으뜸이고, 초여름엔 조개젓 황석어젓, 한여름엔 오징어젓이 제철이며, 맛깔나는 가을 젓갈로는 대구모젓과 어리굴젓이 제일이다. 새우젓도 오동통한 유월 새우로 담그는 육젓, 오월 새우로 담그는 오젓, 가을 새우로 담그는 추젓, 동백하젓, 새하젓, 돗대기새우로 담그는 데떼기젓도 있다. 새우의 내장에는 강력한 소화효소가 많아 육질을 빠르게 분해하기 때문에 돼지고기 등을 먹을 땐 새우젓을 얹어 먹는다.

나도 고등학교 때 하란 공부는 안 하고 아버지 등짐 져 번 돈으로 시집이나 사서 모은 놈이야. 울 아버지는 시가 뭔지도 몰라. 이 꼬락서니로 살 거면서, 그때 이미 아버지를 내다 버린 거지 뭐. 모든 아버지가 다 그래. 늙으면 무조건 버림받게 돼 있어. 과실을 따올 때 아버지, 아버지 하는 거라고. 둘러봐. 아버지가 번 돈으로 술 마시는 쟤네들, 쟤네들 머릿속에 지금 늙어가는 아버지들이 들어 있겠어?


자존심이 맑은 미덕의 원천이라면 자기 모멸은 악마의 시궁창에 피는 더러운 꽃이었다. 그녀들은 더 내려갈 수 없는 시궁창의 가장 어둡고 더러운 밑바닥에 떨어져 기꺼이 짐승이 되었다. 모든 게 일찍 고아를 경험한 적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그녀들은 갑자기 사리 분별할 수 없는 어린 고아들이 되었고, 그래서 단지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할퀴고 물어뜯을 뿐이었다. 더럽고 끔찍했다. 어떤 부류의 젊은 저들은 고아가 되는 게 단지 부모가 획득해 오는 과실이나 사냥감을 잃는 일이라고 착각할는지 모르지만, 만약 고아가 되는 게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녀는 단호히 인간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잃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염전은 보통 네 단계 구조로 되어 있다. 첫 단계는 바닷물을 끌어들여 불순물을 가라앉히는 저수조이고, 둘째는 제1증발지인 ‘난치’, 셋째는 제2증발지인 ‘느티’ 그리고 소금을 거두게 되는 마지막 결정지가 바로 최종 단계였다. 저수조의 소금물이 제1증발지로 들어와 하루 땡볕에 말리면 바닷물 염도가 3도에서 8도로 높아진다. 제2증발에서 소금물은 염도를 19도까지 올린다. 마지막으로 결정지에 들어온 19도 이상의 소금물은 결정지에 와서 25도 이상으로 염도를 높여야 비로소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는다. 바닷물이 6각 결정의 보석과 같은 소금으로 몸을 바꾸는 놀라운 과정이다.


소금은 모든 맛을 다 갖고 있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단것, 신것에 소금을 치면 더 달고 더 시어진다. 염도가 적당할 때 거둔 소금은 부드러운 짠맛이 나지만, 32도가 넘으면 쓴맛이 강해진다. 세상의 모든 소금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맛이 다르다. 사람들은 단맛에서 일반적으로 위로와 사랑을 느낀다. 그에 비해 신맛은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다. 짠맛은 옹골찬 균형이 떠오른다. 쓴맛은 어둠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들 얘기야. 처자식이 딸리면 치사한 것도 견디고 필요에 따라 이념도 바꿔야지. 오늘의 아버지들, 예전에 비해 그 권세는 다 날아갔는데 그 의무는 하나도 덜어지지 않았거든. 어느 날 애비가 부당한 걸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박차고 나와 낚시질이나 하고 있어봐. 이해하고 사랑할 자식들이 얼마나 있겠어? 강남권 초등학교에선 애들이 모여 앉아 제 애비가 죽으면 무엇 무엇을 물려받을지 셈하고 있다는 말도 있어.


누가 인생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인생엔 두 개의 단맛이 있어. 하나의 단맛은 자본주의적 세계가 퍼뜨린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빨대로 빠는 소비의 단맛이고, 다른 하나는 참된 자유를 얻어 몸과 영혼으로 느끼는 해방감의 단맛이야.”


0.2퍼센트 염도가 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굶은 채 종일 뙤약볕 아래서 중노동을 감당한 아버지에게서 시시각각 염도가 빠져나가는 것이 사실적인 그림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소금에 달고, 시고, 쓰고, 짠 모든 맛의 근원이 들어 있지만, 매운맛은 없었다. 아픔으로 혀를 마비시키는 게 통각이다. 이버지의 기억은 삭제되고 없었다. 완벽한 망각이었다. 일종의 통각이었다.


아버지에게 빨대를 박고 살았으니, 아버지는 당연히 그에게 그 정도를 요구하고 누릴 권리가 있으며, 그는 그걸 수행할 의무가 있었다. 그것은 공평한 거래였다. 근원적인 공평함은 관계에 따른 관습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믿었다. 부모 형제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부모가 늙고 병들어 더 이상 일할 수 없으면, 부모를 빨아먹고 제 몸집을 불린 자식들이 헌신적으로 돌보는 게 윤리적인 거래였다.


똑같은 염전에서 얻은 소금이라고 해도, 소금은 그 맛과 형태가 달랐다. 가령 남서풍을 받은 소금은 거칠거칠하고 건조해서 짠맛의 으뜸이 되고, 북서풍을 받은 소금은 입자가 단단하고 굵어 맵시의 으뜸이 되었다. 동풍을 받으면 그 입자가 곱고 가볍지만, 남동풍 소금은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지는 것도 바람의 이치였다.


애들에게 섭섭하진 않았다. 애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겨우 은행의 지불 창구 직원이거나 가사 도우미 정도라 해도 그건 애들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가슴이 무너진 것은 섭섭함 때문이 아니라 외로웠기 때문이다. 세상 끝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았다.


아버지! 오랜만에 불러본다. 감명 깊게 읽었다.


책 소개.

『소금』 박범신 지음. 2022.09.15. (주)한계레엔. 367쪽. 35,000원.

박범신. 상명대학교 석좌교수.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작품활동. 장편소설 『은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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