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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May 25. 2022

최재천 저. ‘다윈 지능’을 읽고.

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

이 책의 원제목은 “다윈 지능, 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다.

다윈을 진화론으로 유명하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좀 더 심층적으로 알고 싶어 이 책을 읽었다.


진화란 결국 생물의 형질이 유전자라는 정보 물질을 통하여 전파되는 과정을 말한다.

어느 특정한 형질을 지님으로써 개체가 많은 자손을 퍼뜨릴 수 있다면 그 형질의 발현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보다 많은 복사체들을 후세에 남기게 된다.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DNA가 각각 절반씩 난자와 정자 속으로 들어갔다가 한데 만나 펼쳐지면서 만들어 낸 생명체이다.      


다윈은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으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한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각자 다른 형태, 생리, 행동 등을 보인다. 즉 자연계의 생물 개체들 간에 변이가 존재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자손은 부모를 닮는다. 즉 어떤 변이는 유전한다.

셋째, 환경이 뒷받침할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은 개체가 태어나기 때문에 먹이 등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

넷째,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형질을 지닌 개체가 보다 많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자연선택)     


  오징어의 눈이 인간의 눈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셈이다.

오징어의 눈과 인간의 눈을 위아래로 잘라 단면을 비교해보면 놀라운 정도로 흡사하다.

그런데 오징어의 눈은 시신경과 실핏줄이 망막의 뒷면에 붙어 있는데 인간의 눈은 망막에 구멍을 뚫고 시신경과 실핏줄을 동공 안으로 끌어들여 망막의 내벽에 붙여 놓았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시각적 맹점을 갖고 있다.

시신경 다발을 눈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뚫어 놓은 구멍에 간상세포와 원추세포들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징어의 눈이 인간의 눈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우리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은 생활사로 볼 때 모두 기생 생물들이다.

기생은 관계하는 두 생물 중 한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끼치며 이득을 취한다.

기생 생물은 자기가 몸 담고 있는 기주를 죽이는 것은 스스로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에 기생 생물이 좀 더 신중하다.

감기 바이러스가 감염된 사람을 너무 아프게 하여 외부 출입을 못하면 다른 기주로 옮아 갈 경로를 스스로 막는 셈이 된다.

반면 모기에 의해 감염되는 말라리아 병원균은 감염된 사람이 중간 숙주인 모기를 쫓을 기력조차 없을 정도로 아프게 만드는 게 더 유리하다.

이처럼 진화의 관점에서 질병의 원인을 분석하고 적응과 조화의 치유법을 모색하자는 ‘다윈 의학’ 또는 ‘진화 의학’이 생겼다.     


  생물의 형질에는 생존을 돕는 게 있는가 하면, 생존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지만,

 번식에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것들이 있다. 생물의 형질은 대부분 생존과 번식 중 어느 하나에만 관련하여 진화하는게 보통이지만 어떤 형질은 그를 소유하고 있는 개체로 하여금 생존과 번식 모두에서 탁월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자연선택은 주로 먹이, 은신처, 영역 등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고, 성 선택은 배우자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다.


성 선택의 경우 그 대상이자 목표는 거의 언제나 암컷이며 경쟁의 주체는 주로 수컷이라는 점이다.

 그 경쟁의 결과가 궁극적으로는 암컷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유성 생식을 하는 모든 생물에서 정자, 즉 수컷의 배우자가 암컷의 배우자, 즉 난자보다 큰 경우는 절대로 없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정자라는 운반체에 실어 암컷에게 전달하고 암컷은 그 유전자를 받아 자신의 유전자와 섞어 새로운 생명체로 키워 내는 초기 발생의 임무를 띠고 있는 존재이다.


생물의 삶이란 어차피 후세에 유전자를 남기는 과정이므로 자식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그 목표를 달성하게 해 주는 장본인인 암컷이 자식 못지않게 중요하다.

수컷의 최대 약점은 바로 스스로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동물의 번식 구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일부다처제는 한 수컷이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체제이고 일처다부제는 그 반대이다.

그리고 암수가 짝을 이루는 일부일처제가 있다. 인간 여성을 언제 배란을 하는 존인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이른바 ‘은폐된 배란’이라고 불리는 진화 현상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일부일처제를 채택하도록 하였다.

인간 남성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전략은 한 여인을 선정하여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 자주 잠자리를 하는 방법이다. 그래야 그 여인의 배란기에 맞춰 짝짓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자신이 그 여인이 낳는 아이의 아버지일 확률이 높아진다.

    

해밀턴의 이론에 의하면 번식이란 결국 유전자들이 자신들의 복사체들을 퍼뜨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얻기 위해 잠시 만들어 낸 매개체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닭은 기껏해야 몇 년 동아나 알을 낳고 살다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덧없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 닭을 만들어 낸 유전자는 그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왔고, 어쩌면 영원히 그의 후손으로 이어져 갈 존재이다.


지금 이 순간 엄연히 숨 쉬고 있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내가 내 삶의 주체가 아니고 내 삶의 이전에도 존재했고 내가 죽은 후에도 존재할지 모르는 내 유전자가 진정한 내 생명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혼란스럽다.


끊임없이 복제되어 후세에 전달되는 유전자를 ‘불멸의 나선’이라고 일컫는다.

개체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수명을 다하면 사라지지만 그 개체의 특성에 관한 정보는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구에서 생명의 역사는 유전자의 역사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체가 태어났다. 사라져 갔어도 DNA와 그의 후손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 엄청난 생물 다양성을 창조해냈다.

각각의 생명체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은 분명히 한계성을 지니지만 수십억 년 전에 태어나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DNA의 눈으로 보면 생명은 홀연 영속성을 띤다.      


만일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행위를 하는 자, 즉 업을 짓는 자와 그 행위에 의한 결과,

즉 업보를 받는 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만일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생에서의 업에 따라 다음 생으로 윤회하는 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자연의 기氣로 생겨난 우리의 영혼이 죽음과 더불어 다시 자연의 氣로 회귀한다는 노장 사상의 설명과도 표면적으로는 유사할지 모르나, 비록 육체를 이루던 요소들은 다시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만 내 DNA는 자식의 몸을 통해 내 사후에도 계속 존속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엄연한 과학적 실재이기 때문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생기고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알아보려는 인간이 노력이 다윈과 같은 학자를 만들었다. 그것도 진화라고 생각한다. 과학도 결국 종교의 길에 함께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윈 지능. 최재천 저. 2011. 12.17. ㈜ 사이언스북스. 310쪽. 15,000원.

    

최재천 : 서울대 졸업.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과에서 박사학위, 하버드 대학교 전임강사. 미시간 대학교 조교수, 서울 대학교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2007년부터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자바 긴팔원숭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 곤충학회 젊은 과학자상, 대한민국 과학 문화상, 국제 환경상, 올해의 여성 운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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