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장편소설
이 소설은 안중근에 관한 소설이다. 내 일생을 통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안중근이다. 처, 자식을 남겨두고 조국의 독립과 세계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실은 현실적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을 초월한 자기희생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소설의 제목을 왜? ‘하얼빈’이라고 했을까? 작가의 말을 빌려보면,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을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라고 한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03.26.) 천주교 신자다. 안중근은 1920년의 뮈텔 주교의 판단에 따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죄인’으로 남아있었다. 1993년 8월 21일 서울 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안중근 추모 미사를 집전했다. 강론에서 안중근의 행위는 ‘정당방위’이고 ‘국권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회가 안중근을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최초의 미사였다.
아버지가 죽자, 아들이 태어나는 질서는 삶과 죽음이 잇닿음으로써 기쁘거나 슬프지 않았고, 감당할 만했다. 모든 죽음과 모든 태어남이 현재의 시간 안에 맞물려 있었다.
주둔군은 호남 일대를 체로 치듯이 걸러냈다. 의병은 힘센 군장을 만나면 이백이나 삼백으로 큰 세력을 이루기도 했으나, 대개는 열 명, 스무 명이 작당해서 동네에서 싸우고 산골에서 싸웠다. 일본군은 의병이 발생한 마을에 보초를 세워놓고 통행하는 주민들을 잡아가고 쏘아 죽였다. 의병들은 청주, 포천, 봉화, 양주, 곡산, 평산, 파주에서 싸웠다. 돌진하다가 죽고 달아나다가 죽고 끌려가서 매 맞아 죽고,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서 굶어 죽고 자살했다.
안중근을 재판한 재판장 마나베는 사실관계를 파고들수록 정치성이 드러나고 있었고, 외국 언론들의 관심은 높아졌다. 마나베는 서둘러서 모든 일을 끝냈다. 공판은 1910년 2월 7일, 8일, 9일, 10일, 12일, 14일에 열렸다. 재판 절차는 일 주인 만에 모두 끝났다. 넷째 날에 검찰관 미조부치가 의견 진술 후 구형했고, 다섯째 날에 일본인 국선변호인들이 변론했다. 여섯째 날인 14일에 재판장 마나베가 선고했다.
안중근은 최후 진술에서
“내가 이토를 죽인 까닭은 이토를 죽인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오늘 기회를 얻었으므로 말하겠다.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 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토가 한국 통감이 된 이래 무력으로 한국 황제를 협박하여 을사년 5개 조약, 정미년 7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싸우고 있고 일본 군대가 진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전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고 후 3월 26일 안중근은 사형 집행되었다. 3월 29일 일본 관동도독부는 안중근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 사형 집행에 이르는 과정에서 관여한 관리들에게 직급에 따라 상여금을 내렸다.
미조부치 검찰관 250엔, 마나베 재판장 150엔, 소노키 통역, 기시다 서기 80엔, 구리하가 전옥, 나카무리 간수부장 80엔, 요시다 경시, 사이토 경부 30엔, 순사부장급 3명 20엔, 순사 5명 10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요즘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떠오른다. 현직 대통령을 구속하고 재판을 서두르고 있는 모습이 안중근을 판결한 일본 재판부와 다르지 않음은 나만의 생각일까? 현직 대통령을 내란죄로 탄핵한다고 해놓고 슬그머니 내란죄를 빼고 탄핵한다는 재판부의 설명은 일본 재판부가 안중근의 세계평화론 진술을 입틀막 하는 것과, 전쟁으로서 이토를 저격한 사실을 오도하는 판결을 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한 일본 재판부보다 더한 것 같다.
혹시 안중근 사건에 관여한 관리들에게 지급한 상여금이 오늘의 대한민국 공수처, 헌법재판소, 검찰, 경찰 등 대통령 탄핵과 사건 수사, 재판에 관여한 관리들에도 약속이 되어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현직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권한이다. 그 수단과 방법에 잘못이 있다면, 개별적으로 따져서 판단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모든 수사기관이 달려들어 현직 대통령을 구속하고 수사하고 기소한다. 일본은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수사기관이 현직 대통령을 구속하고 재판한다고 설치는 꼴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이 벌인 행위보다 더 한 것같다.
반만년 역사 속에 수백 차례 외침을 당하면서 반성의 기색 없이 당파싸움을 일삼고 백성들이 안위는 안중에 없는 한반도의 정치 세력들이 정신 차릴 날은 언제일까? 요원한 것 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속국으로, 몽골의 침략, 일본의 침략에도 정신 없이 당하고 나서 또 당하는 한심한 민족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려는 것일까?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장래가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나게 느껴진다.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빌렘은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신자들이 차례로 한 명씩 고해소 안으로 들어와서 죄를 고했다. 처자식을 때린 죄, 이웃과 싸운 죄, 남의 돈을 떼어먹은 죄, 이웃 여자에게 음심ㅇ르 품은 죄, 술집 작부와 간통한 죄, 밤중에 남의 논 물꼬를 허물어서 빼낸 죄, 남의 낟가리를 훔친 죄, 무당한테 가서 점친 죄, 굿판에 가서 술 얻어먹은 죄, 소 판 돈으로 노름한 죄를 신도들은 고했다. 고해성사 때마다 마을의 죄는 풍토병처럼 거듭되었다. 똑같은 죄는 자고 새면 날마다 생겨나서 일상화되었다.
-뉘우침의 힘으로 새로워져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사형선고를 받고 사흘 후에 안중근의 항소를 포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면서 안중근은 항소는 쓸데없는 짓이 될 것임을 알았다. 이 세상의 배운 자들이 구사하는 지배적 언어는 헛되고 또 헛되었지만, 말쑥한 논리를 갖추어서 세상의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안중근은 1894년 김아려(1878~1946)와 결혼해서 2남 1녀를 두었다. 안중근 거사 후 가족들은 러시아 극동지역과 만주, 상해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1910년 안중근이 처형당하고, 그 이듬해인 1911년 큰아들 분도가 일곱 살로 만주에서 죽었다. 김아려는 광복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1946년 상해에서 죽었다. 장녀 안현생(1902~1959)은 상해에서 가족들과 살다가 1946년 서울로 귀국했다. 1959년 사망했다. 둘째 아들 안준생(197~~1952)은 광복 후 한국에 돌아와서 6·25전쟁 중 부산에 피란 가서 폐결핵으로 죽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토를 처형한 안중근의 가족은 패가망신하였다.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구한말보다 국제정세는 더 혼돈과 급박하게 돌아간다. 새로운 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에 따라 국운이 걸려있다.
이른바 ‘하이테거전쟁’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민생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정치 세력 간의 다툼으로 망해가고 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일신을 던진 안중근이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을 망치는 세력들은 어느 사람들인가. 대한 국민이 아닌가? 묻고 싶다.
책 소개
『하얼빈』 김훈 지음. 2022.07.15. (주)문학동네. 307쪽.
김훈. 1948년 서울 출생. 장편소설 『칼의 노래』,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산문집 『연필로 쓰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