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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남주 Oct 27. 2024

3화. 1983

박기진은 자신이 완전히 낯선 환경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페 안에는 구식 가구들이 놓여 있었고, 벽에 걸린 시계는 오래된 디자인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먼지가 많이 쌓인 유리창을 통해 희미하게 비쳐 들어왔다.

 방 안을 둘러보며, 그는 자신의 옷마저도 시대에 맞지 않는 스타일임을 알아챘다. 거친 질감의 천과 오래된 패션의 옷들이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박기진은 조심스럽게 카페를 나서 밖으로 나갔다. 거리의 자동차들, 사람들이 입은 옷차림, 그리고 상점의 간판들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거리는 촌스러운 색감의 광고판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예전 드라마에서나 보던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하고 있었다.

 특히 자동차들의 모델과 디자인에서 그 시대의 특징이 두드러졌다. 박기진은 상황을 다시 되짚어보았다. 사장이 마지막으로 한 말 1983년...


박기진은 주변을 더욱 세심하게 관찰하며, 공중전화박스와 신문 가판대에 진열된 신문의 날짜를 확인했다. 신문의 대문짝 같은 제목 에 적힌 날짜는 분명히 1983년이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대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심지어 공기 중의 느낌까지 모든 것이 과거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었다. 박기진은 자신이 어떻게 이 시간으로 온 것인지, 그리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현재 1983년의 세상에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박기진은 이 낯선 환경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려 애쓰며,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 했다. 그가 할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본래 시대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사장은 나보고 일을 시작하라고 했고... 계약을 파기하라고...'


 박기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되짚어 보았다. 그 노인은 약속을 돌려달라고 했고... 그걸 파기시켜야 한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어떤 약속인지도 몰라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럼 먼저 그 노인을 찾아야 하는데...


박기진이 노인을 찾는 데 있어 유일한 단서는 그녀의 이름과 얼굴뿐이었다.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욕이 나왔다.


' 여기 전당포도 요새 기업들 구인방식하고 똑같구먼. 경력이 있는 신입을 찾는 건가! 나보고 어쩌라고'


박기진은 우선 목이나 축이자는 생각에 카운터로 향했다.

메뉴를 살펴보던 박기진의 눈이 종업원의 이름표에 멈추었다.


-정미숙


정...미숙??

박기진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기진은 기억력이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저 이름은 분명...

 어깨까지 흘러내리는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 갸름하고 선한 인상의 얼굴.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그를 한 번 스쳐보더니 미소를 살짝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짧은 순간, 묘한 익숙함이 폭발처럼 떠올랐다.  눈앞의 젊은 여자의 미소와 주름진 입가로 애원하던 여노인의 얼굴이 겹쳐졌다.

 이마의 곡선, 눈썹 아래로 깊게 파이는 시선의 각도, 가볍게 다물어진 입술의 모양까지... 머리색은 달랐지만

'그 여노인이다'

 분명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그녀는 젊고 생기 넘치는 여자였다. 시간의 장난처럼, 두 얼굴이 그의 머릿속에서 번갈아 가며 겹쳤다.


이름표를 단 종업원은 분명히 그 노인의 40년 전 모습이었다. 그녀는 젊고, 활기차 보였으며, 카페 손님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아... 사장님 욕해서 죄송해요... 아무 데로나 보낸 게 아니었어...'

 박기진은 바로 옆 의자에 같이 누워있던 그 노인을 생각하며 본인이 어떻게 그녀 주변에 있을 수 있는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박기진은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가, 곧 마음을 가다듬고 종업원에게 다가갔다.


 - 커피 한 잔 주세요 

그가 말을 건네며, 종업원의 눈을 바라보았다.

 주문을 받던 종업원은 박기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순간, 박기진은 자신이 이 시간대에 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이 상황에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커피를 받아 든 박기진은 종업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기 시작했다.

- 혹시 오늘 언제까지 일하세요?


종업원, 즉 젊은 시절의 그녀는 박기진을 살짝 올려봤다가  이내 머뭇하더니 대답했다.


- 저... 결혼했어요...


박기진은 순간 머리가 띵했다. 순간 박기진은 카페종업원을 헌팅하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 아... 아니 그게... 아니고


해명을 하려는 순간 카운터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다. 종업원인 그녀는 전화를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박기진은 미묘한 표정 변화를 감지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귀를 전화기 쪽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긴장된 듯했다.

 - 네, 여기는 ㅇㅇ 카페... 아, 네, 맞습니다.

전화를 받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박기진은 커피잔을 입가에 대고 마시는 척하며, 전화 내용을 듣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아, 그렇습니까?... 오늘...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녀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며, 박기진은 전화 내용이 그녀에게 중요한 일임을 직감했다.


그녀와의 약속과 관계된 내용일까?


여러 생각들이 박기진의 머릿속을 맴돌면서, 박기진은 이제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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