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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Nov 09. 2023

어떤 날 이런 수업 어때요?

잘 놀고 건강하면 공부 잘한 거야.

겨울로 가는 다리 같은 달 11월.

11월인데 아직도 낮에는 덥다고 느끼며  아침마다  운동장 맞은편에서  가지 끝에 달린 모과를 본다.

높은 가지 끝에 매달린  커다란 열매가 신기하다.  언제 떨어지려나 궁금해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곤 했는데 마침내  11월이야 며 따뜻한 하늘을 흔들던 바람이 그  열매를 떨어뜨렸다.

고동색의 목련 잎과 아직 붉어지지 못한 잎들도 떨어뜨리며 위세를 떨치던 찬바람이  하늘 가까이서 익어가던 모과를 땅으로 보낸 것이다.

거의 신생아 머리만 하던 모과가 일부는 땅에 떨어지며 깨진 것도 있다.

출근하며 하늘만 바라보던 나는 이제 땅을 살핀다.

깨지지 않은 모과를 골라 안으로 들였다.

이 시대에 학교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학교의 역사와 지역에 따라 학생 수도, 건물의 형태와 시설도.

공간은 대체로 부족하다.

내가 다녔던 학교 중 새 건물에 쾌적한 시설이었던 곳은 동탄 신도시의 학교였다.

경기 북부의 어느 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 공간이 넉넉하기도 했다.

그 외 학교들은 특히 교무실의 배치나 시설이 만족스러운 곳은 거의 없었다.

교사와 떨어질 수 없는 책과 자료 복사용지가 쌓여 퀴퀴한 냄새가 없는 곳도 거의 없었다.

교실에는 공기 청정기가 있지만 교무실에는 거의 없다.

어느 교무실의 안쪽에는 여러 대의 태블릿 충전기가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특유의 전자제품 냄새, 진한 잉크냄새가 나기도 했다.

어느 특별실에서는 배수로 설치가 잘못되었는지 냄새가 역류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곳에 주워온 모과를 나누어 주었더니 이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모과 향이 달콤한 것은 알았는데 탈취효과가 있는 줄은 몰랐다.

역시 자연은 우리 생활에 여러 가지  효능이 있다.

3층에서 내려다보니 주먹만 한 모과가 여러 개 나무에 남아있다.

내가 모과 줍는 걸 본 학생이 사과나 배랑 비슷한 줄 알고 '먹어 볼래요' 한다.

'떫어, 설탕에 재워 끓여서 차로 마셔야 해'

'아!'

모과를 몰랐던 학생은 운동하는 저들을 지켜보던 나무의 존재를 이제 알았다지만 나도  이렇게 관심을 갖고 열매가 익어서 떨어지기까지 관심 있게 바라보기는 처음이다.

올해는 모과향과 함께 겨울로 가고 있다.

오늘은 유난히 하늘이 파란 날이었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회색 하늘이 많아질 테니 파란 가을 하늘이 더욱 반갑다.

학교는  별 구기대회가 틈틈이 진행되었다. 들뜬 학생들이 구경 가자고 하여 운동장으로 나갔다.

학생들 의 경기는 풋풋함과 열정, 순수함과 뜻밖의 실수가 어우러진 맛난 회덮밥 맛이다.

경기를 보고 나니 수업 시간이 10분쯤 남았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11월의 파란 하늘이 더 보고 싶고 아이들도 들뜬 마음인데 교실로 갈 수가 없었다.

즉흥적으로 달리기 경주선 위에서 신발 던지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먼저 실내화를 냅다 던졌다.

아이들도 재밌어 하며 차례로 던졌다.

그냥 두라고 해도 예의 바르게 선생님 신발을 갖다 주는 아이가 있다.

신발인데, 손으로 집어서.

선생님 맨발로 걸으면 안 된다 하며 갖다 준다.

기특하다.

점심을 먹고 5교시 수업, 진로와 한자.

아이들은 구기대회로 여전히 들떠 있다.

나도 공부 가르치기 싫다.

노래 하나 부르고 시작할까 하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OST ' 언제나  몇 번이라도' 가사가 나온 영상을 찾아 아이들과 불렀다.

중간중간 한자의 우리말 발음과 일본어 발음의 관계를 설명하며 한 소절씩  설명하고 부르기를 반복하다가 후렴 '라라랄라'를 3박자 기본 지휘에 맞춰 부르니 어색해하다가  웃음이 터진다. 5교시 나른한 시간 노래하며 한자도 배우고 일본어도 배우며 노래를 곧부르게 되었다.

소감도 쓰게 했다.

1. 외국어 공부를 노래로 공부하는 소감

2. 한국어, 일본어, 한자와의 관계에 대한 의견을 쓰게 했다.

학생들이 제대로 부를 때쯤 종이 울렸다.

마음이 즐거워졌니? 물으니 ' 네'하고 대답한다.

됐다, 행복하고 즐거우면 됐지.

나는 오늘 흥에 겨워 가을 하늘에 신발을 던지고 애니메이션 주제곡울 부르며 아이들과 잘 놀았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잘 놀고 집에 가면 공부한 거라 생각한다.

모과를 바라보며 시작한 하루가 아이들의 웃음과 노랫소리로 익어갔다.

하루가 잘 마무리 나 싶더니 학급 학생들이 엉뚱한 사고를 쳤다고 다른 교사에게 전화가 왔다. 크고 탐스런 모과가 떨어지며 깨진 모양이 떠오른다.

아, 역시 학교이고 아이들이다.

깨진 모과도 잘 다듬으면 향그로운 모과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학교는 다듬으며 향기를 만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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