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수수한 매력의 지칭개

분홍색 더벅머리꽃에 반하다

by 우산

너의 분홍빛 머리끝이 조금 보였을 때 나는 엉겅퀴인 줄 알았어. 어? 여기 엉겅퀴가 있네. 요즈음에는 별로 볼 수 없는 꽃이 우리 동네 공원에도 나타났네 하고 무척 반가웠지.

그런데 뭔가 아쉬웠어. 엉겅퀴라 하기에는 뾰족한 잎이 보이지 않잖아. 뭐지? 이 어설프게 꽃도 풀도 아닌 것이.

가는 줄기 끝에 가는 머리카락을 묶어 놓은 듯 분홍 꽃송이들은 좀 거칠게 말하면 분홍색 실밥을 연두색 고무 끈으로 묶어 놓은 듯했지.

좀 바라보다가 오랜 시간을 바라보기에는 특별한 것 없는 그저 이름 없는 꽃이구나 하고 지나쳤어.

길을 걸으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무심히 스치고 지나는 많은 사람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겠지.

그래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좀 귀여운 애, 야무진 애, 이따금 눈물도 잘 흘리는 애로 기억되던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잊힌 사람도 되고 누군가를 무심히 지나친 사람도 되었지.

나도 살아가느라고, 바쁘게 살아간다고 외로운 친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무심히 지나치며 너와 같은 그런 이름 없는 꽃이 되어 었지.

공원 운동장 바깥쪽으로 걷고 있는데 개천가 버드나무 옆으로 연분홍 꽃이 또 보였어.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작은 키에 머리숱도 적고 가지런하지 않았어.

그제야 너의 이름을 분명히 알고 싶어 휴대폰을 열어 찾아보았지.

산비장이, 지칭개, 조뱅이, 뻐꾹채……. 모두 엉겅퀴와 비슷한 국화과의 꽃들이었어.

꽃들의 모양이 비슷할 때는 개화시기, 잎 모양 등으로 구별하는데 너는 조뱅이와 비슷한데 조뱅이는 꽃이 필 무렵이면 잎이 시들어 버린다네.

산비장이는 너보다 꽃의 색이 좀 더 진한 것 같아. 너와 다른 것은 한 줄기에 꽃 한 송이만 피고 줄기가 옆으로 가지를 뻗어가지 않는다네. 비장은 무관이란 뜻이 있어서 산비장이는 고독한 산지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꽃말은 추억이래.

뻐꾹채는 엉겅퀴처럼 잎 모양도 뾰족뾰족하고 진한 자주색에 꽃송이도 너보다는 커 보인다. 뻐꾸기가 울 때 피어서 뻐꾹채일까 하니 꽃을 감싸고 있는 총포의 모습이 뻐꾸기의 가슴 털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네. 꽃말이 나그네라니 뻐꾹새 소리 들으며 산길을 걷는 나그네가 떠오르기도 하네. 올해는 꽃들이 한 달 정도 서둘러 피는 것은 너도 알겠지. 그래서 너를 이렇게 빨리 만났지.

지칭개, 산비장이, 뻐꾹채, 조뱅이에 대해 더 찾아보고 확실한 구분을 하고 싶은데 아직은 잘 되지 않아. 너의 친구들과 너를 생각하는 동안 자꾸자꾸 너의 모습이 눈에 띈다.

아, 광교산 옆 도로 가로수 옆에서 너를 만난 기억이 난다. 진회색 울퉁불퉁한 가로수 옆을 둘러싸고 흔들리고 있던 가는 줄기와 분홍 잎들. 처음에는 좀 우스웠던 분홍색 꽃이 바로 지칭개 너였어.

너를 알고 나니 여기저기 보이는 너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 여름 꽃인 너를 보고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반해 버린 거야.

그리고 지칭개, 지칭개 부르며 지칭개 병에 걸리고 말았어. 너의 짧은 분홍색 머리가 귀엽고 예뻐 보이기 시작했어.

하얀 클로버와 어울리는 너의 모습, 노란 씀바귀 꽃과 함께 있는 모습, 동그란 민들레 홀씨 옆의 너의 모습이 은은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거야.

직장에서도 점심 먹고 산책하다 너를 만났을 때 네가 얼마나 반갑던지.

이제 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너를 찾고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나는 아무 관심 없던 들꽃, 너 지칭개를 사랑하게 되었나 봐.

옛날 말괄량이 삐삐라는 영화 속의 장면이 떠오른다.

어느 날 삐삐의 머릿속에 '슈펑크'라는 말이 생각나며 모든 것을 슈펑크와 연결시키고 하루 종일 슈펑크를 중얼거리던 삐삐. 의사를 찾아가서 슈펑크 병을 고쳐달라고도 했지.

그런데 왜 너의 꽃말은 고독한 사랑이니?

은은하고 포근한 너의 매력을 모르는 너를 사랑하던 누군가가 화려한 꽃에게로 가버린 거니?

나는 너의 꽃말을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구나. 처음에는 몰랐던 너의 매력에 만날수록 은근히 푹 빠져버리니 말이야.

지칭개라는 이름이 우리가 흔히 먹는 부침개처럼 얼마나 친숙하니. 그래서 들녘 여기저기서 친근하게 보이는 너를 사람들이 지칭개라고 이름 붙였을지도 몰라.

토종 한국인인 내가 지칭개 너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앞에서 말한 너와 비슷한 꽃 중에 지칭개 너는 우리 토종 식물이 틀림없대. 일본에서는 귀화 식물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변방 사람들이 먹는 나물이란 뜻의 이호채(泥胡菜)라고 부른다는 게 그 증거야.

직장 동료 언니에게 네 이야기를 했더니 그 언니는 너를 잘 알고 있더라. 시골에서 할머니와 다니며 꽃 이름, 나물 이름을 많이 들었던 모양이야.

할머니와 손녀가 손을 잡고 들판을 거닐며 풀이름, 꽃 이름을 말하는 모습 얼마나 정겹니. 참 부럽더라, 그런 추억.

그 언니는 어려서 너를 나물로도 먹었다는구나.

내가 찾아보니 너는 약으로도 참 효능이 있더라고. 주로 염증을 치료하는 역할을 하더라.

먹을 것도 치료약도 부족하던 시절에 사람들 곁에서 정겨운 모습으로 배고픔과 상처를 치료하였다니 지칭개, 너는 정말 대단해.

먹을 것도 치료약도 많은 요즘이지만, 사람들은 더 아프고 배고픈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 풍요 속에 마음의 병도 많아지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도 더 많지.

지칭개, 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너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파란 하늘 아래 아른아른 주위의 풀꽃과 어울리며 너처럼 살고 싶어. 보이지 않는 큰 사랑 지칭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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