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명작 소설 한 편을 쓰고 죽을 거라는 엉뚱한 꿈을 꾸던 나는 언제부터 글쓰기를 포기했던가. 누가 꿈을 소설가라고 말하며 작가의 꿈을 꾸던 내가 중학교 때 글쓰기를 포기했었다.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목소리도 크던 아이. 그 아이가 쓴 시를 읽으며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생각의 크기에 나는 안 되겠구나 하고 좌절했다. 그 아이의 꿈은 작가도 아니었는데 그저 스치는 표현으로 쓱쓱 써 내려간 '시인'이라는 작품을 보며 그저 놀랍고 기가 죽을 따름이었다. 붉은 바탕에 쓰인 그 작품은 오랫동안 우리 반 교실에 액자로 걸려 있었다.
산문 부문에서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휩쓸던 아이가 있었다. 굉장히 큰 키에 짧은 커트 머리를 한 아이. 그 아이의 글을 읽으면 그 표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작가가 될 사람은 이래야지 하며 나는 또 작가의 꿈을 포기했다.
그래도 한여름밤 세수 대야에 발을 담그며 펄벅의 대지를 읽던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밤을 캐는 광부입니다' 하고 시를 끄적이며 별을 본다고 창문을 열고 밤을 새우다가 한 달을 심한 감기에 시달리며 보낸 날들이 작가의 꿈은 접고 있었지만 중학교 시절의 나의 모습이었다.
비좁은 전철 안에서도 시를 읽으며 무한 세계로 빠지고 일주일 용돈의 삼분의 일은 책을 사 읽던 시절이 있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접히지 않는 작가의 꿈이 있었던 걸까.
이십 대 중반의 어느 날, 취업 공부를 하다가 신문에 난 리라이팅 작가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다. 작가가 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끄적거린 시 원고를 정리도 안 한 채 출판사에 들고 갔다.
그때 편집장이자 시인이었던 분의 말씀, 이건 시가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는 전문적인 작가가 필요해요.
이따금씩 내게는 그런 무모한 용기를 낼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골목길을 걷다가 서행하는 모 전자회사 서비스 센터 차를 태워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어린 나의 말,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를 위해 어린이날도 만들었는데, 아저씨는 이 차도 못 태워줘요?
지금 같으면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 착한 기사는 300 m 쯤 떨어진 버스 정거장까지 나를 태워주었다.
리라이팅이 뭔지도 모르며 막연히 작가 모집이란 문구를 보고 글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두드린 출판사의 문이었다. 하지만 넌 안돼, 라는 말을 듣고 돌아선 내게 다시 문이 열렸다.
작가인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문을 전공한 내가 필요하다고. 사장님이 한문 책을 내고 싶어 한다고.
그렇게 나는 그곳에 다시 갔다.
작은 규모의 신생 출판사라 월급 체계도 정해진 게 없고 나보고 얼마를 받고 싶냐고 물었다.
얼마를 받고 싶으냐고 하길래 나는 받고 싶은 액수를 말하라는 거니, 내가 최고로 열심히 능력 발휘해서 일하려면 130만 원 정도요라고 했다. 나의 의견을 물었으니 나는 솔직하게 말한 것이다.
그랬더니 사장이 별꼴을 다 보겠다며 '허허, 기가 차네'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가 보라고 한다.
그게 화낼 일이었나? 당시 교사 초봉이 상여금 빼면 70만 원, 나중에 알고 보니 대기업 S에서 과장 본봉이 130이었다고 한다. 나는 몰랐다. 얼마 받고 싶느냐고 물었지, 한도는 정하지 않고서.
그래서 집에 왔는데 또 전화가 왔다. 일단 60만 원 줄 테니 오라고 한다. 대신 나를 한문교재 만드는데 팀장으로 일하게 해 주고 교재에 편집자로 이름을 넣어주겠다고 했다.
막상 가 보니 이것저것 타이핑을 시키고, 일단 소설책 만드는 게 급하다고 원고 교정을 같이 보라고 한다.
당시 신춘문예 본선까지 두 번이나 올라갔던, 지금은 이미 문단에서 인정받는 작가와 함께 일할 기회가 되었다. 또 한 분의 동료는 유명 가수의 새 음반에 노랫말을 쓴 분이었다.
그때 출근해서 그들과 함께 마셨던 커피가 내 기억 속에 있는 가장 맛있는 커피였던 것 같다. 일이 끝나고 수다를 떨며 깔깔대며 웃다가도 작사를 하던 선배는 아, 그 말 너무 괜찮네 하며 메모를 하기도 했던 열정이 있던 시절이었다.
소설책이 나오고 한자 급수 시험 문제집을 만들 때는 그들이 함께 했다. 참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었던 것 같은데 한자 어휘가 생소했던 그들에게나 우리말 문장력이 부족했던 나에게 서로가 윈윈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한자 급수 문제집이 없던 시절에 지금은 고인이 된 어문 교육회 회장님의 감수를 받으며 한자급수시험 대비 문제집을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그 문제집은 출고되기 전 출판사가 망하는 바람에 서점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8000권이나 되는 책이 거의 수험생들에게 현장에서 팔렸다고 한다. 알고 보면 그때 내가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이때 같이 일했던 분이 모 잡지의 편집장으로 가게 되어 내게 연예인과 만화가의 인터뷰 기사를 쓰는 기회가 생겼다. 뜻밖에 기사의 반응이 좋으니 계속 인터뷰 기사를 쓰라고 했다. 아마 계속했으면 내가 좋아하는 유명 배우를 만날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한우물을 팠으면 하는 아쉬움이 이제야 든다. 하지만 고정 수입이 있는 다른 일이 생겨 그만두게 되었다.
둘째를 낳고 방송작가에 관심이 생겨 영상작가 교육원이라는 곳의 온라인 연수를 들었다. 온라인 연수가 지금 같이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메일로 보내면 첨삭지도를 메일로 해주는 것이었다.
6개월 과정이 끝나고 졸업작품이 '나, 아줌마예요.'였는데 연수생 가운데 우수상으로 뽑혀 상금도 받았다.
아, 또 한 번의 기회가 생활에 묻히며 지나갔다. 전문가 과정을 들어가지 않고 포기했다. 친척도 없는 지방에서 한 살, 세 살의 두 딸아이를 키우는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시간은 너무나 귀한 시간이었다.
결혼하고 10년이 지나 다른 출판사에서 나에게 한문교재 원고를 쓰라는 요청이 왔고 그 일을 마치고, 나는 또 일 년 정도 출판사에 나가 어린이용 한문 교재를 편집하게 되었다. 어린이용 한문 교재에는 사자성어 만화와 한자를 사용한 동화를 쓰는 코너가 있는데 작가의 원고를 수정하는 일을 하며 글을 쓰는 맛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렇게 또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내가 수필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으니 지나온 모든 시간이 의미 없이 다른 방향으로 쏘아진 화살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주 긴 인생길에 순간순간의 만남과 우연이 지금의 글을 쓰는 나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주 깊이 묻어두고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꿈을 누군가에게 말했던 것이 어느 가을 내게로 떨어지는 단풍잎처럼 기회로 찾아왔고 그 감동의 순간이 지속되고 있다.
글을 쓰게 되며 만난 문우님이자 작가들과의 만남이 너무나 행복하다.
그 만남은 바로 그분들의 삶과 글을 동시에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도 알고 지낸 시간도 중요하지 않다. 함께 하는 시간이 새로운 글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그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작품에 배어있는 선량한 그분들의 삶을 느낄 수 있고 작가로서 아직 배움의 길에 있는 나를 깨워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라는 정현종 님의 시구가 실감 나게 다가온다.
내가 좋아하는 다무락의 작가이자 문우였던 작가 선생님을 오랜만에 관악산 수목원 입구에서 만났다. 20년 정도의 연배 차이가 있지만 늘 겸손하고 나를 격려해 주는 선생님이다.
선생님께서 준비해 오신 각종 차와 뜨거운 물, 맛있는 빵을 준비해 오셔서 야회 학습장에 앉아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여전히 글쓰기를 배우는 길에 있다고 겸허하게 말씀하시는 선생님.
책을 몇 권이나 내고 더 배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새로 들어선 문학비평의 길에서 자신의 글이 사정없이 난도질당하고 평가받는 시간이 좋다고 하신다.
떡 장인이기도 한 선생님은 수업에 오실 때 문우들을 위한 꽃 같은 약식이나 떡을 해오기도 하셨다. 솜씨가 있다 한들 마음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작가님을 만나는 행복이다.
나는 보라색 노벨리아라는 꽃화분을 사들고 갔다. 수목원 근처로 이사한 작가님이 꽃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아직 한참 부족한 후배를 기억하기를 바라며 보랏빛 꽃잎이 햇빛을 따라 오래도록 핀다고 해서 이 꽃을 샀다. 두 개를 사서 좀 더 크고 멋진 것은 작가님께 드리고 나는 작은 것을 갖고 왔다. 작가님이나 나나 이 꽃처럼 작품을 계속해서 꽃 피웠으면 한다.
그분의 작품인 담쟁이는 교과서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좋은 작품이 가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 작가님이 새로 수록된 작품집을 세 권이나 주셨다.
글을 쓰며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내가 세상에 나와 뛰어다니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글을 쓰며 얼굴이 환해졌다고 큰딸아이가 말한다.
삶은 어쩌면 아주 큰 나무에서 반짝이는 잎처럼 순간순간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서로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모르고 지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마음의 뿌리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에 따라 뻗어나간 삶의 가지가 결국 하나의 나무로 연결되어 열매 맺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