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합니다.

2021년 2월 이효석문학관 앞. 글정원1.

by 우산

몇 년 전까지 밥으로 세 끼를 먹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휴일 아침 늦게 일어나면 아침을 간단히 먹고 점심은 꼭 오후 12시에서 1시 사이에 먹고 저녁은 6시에서 7시에 먹었다.

그러니 1일 2 끼니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혼 전 친정어머니께서는 일 년에 두 번 쉬는 철물점을 하느라 힘드셔도 끼닛거리 집밥 준비를 잊지 않으셨고, 고등학교 시절 남동생과 나, 여동생까지 삼 남매의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 주셨다.

여름에는 저녁 반찬이 쉴까 봐 잡채 볶음밥을 싸 주셨습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갈아서 볶고, 부추 당근, 당면까지 고루 넣어 만든 잡채 볶음밥을 점심 도시락을 싸고 별도로 준비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때는 맛있게 먹기만 했지 엄마가 힘들게 해 주셨다는 생각은 못했다.

특별한 날 먹는 잡채가 있는 맛있는 저녁 도시락은 여는 순간 기쁨과 기대가 늘 한가득이었다. 그 덕분에 야간 자습을 즐겁게 했는지도 모른다.

대학 때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할 때도 국밥은 꼭 챙기고 때로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후배까지 불러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알레르기도 심하여 라면이나 밖에서 먹는 술안주로 나온 찌개 같은 것도 먹으면 두드러기가 일어나니, 친구들이 찌개와 소주 막걸리 잔을 기울일 때도, 학교 앞에 원조 곱창집이 줄을 지어 섰어도 나는 약간의 순대와 오이, 당근만 먹었다. 돈가스에 맥주라도 한잔 마시면 토하고 두드러기가 났다. 빵도 소화가 잘 안되니 나는 오직 밥만 좋아하는 밥순이였다.

이런 나의 딸들은 당연히 알레르기도 심하고 위장도 약했다. 병원에서 하는 말이 알레르기가 있는 엄마의 자녀는 엄마보다 알레르기 지수가 훨씬 높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도 소화를 못 시켰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자장면을 먹으면 탈이 났으니 집밥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치킨도 만두도 집에서 해서 먹었다. 지금까지 나의 제1 본업은 주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올해 초, 나를 수필 문학회로 이끌었던 지인의 소개로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등단은 했지만 직장 생활하며 이렇게 집밥을 하며 지내다 보니 작품을 쓸 여력이 되지 않았다. 사실 작가로서 사명감이나 열정도 약했다.

처음 문학회에 나가며 금요일 밤은 거의 새우다시피 하며 글을 쓰고 토요일에 수업을 들었다. 시작을 했더니 50여 년 의 삶의 이야기를 쏟아 놓는 일이 저절로 되었다. 한 일 년 반을 이렇게 하다 보니 글을 쓸 소재도, 건강도 고갈되었다.

작품을 쓰기 위한 소재도 찾아야 하고 글을 쓰고 충분히 다듬을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둘 다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혈당 수치가 올라가 꾸준히 걷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직은 글을 쓸 때가 아닌가 보다 하고 한 일 년을 직장에 충실하며 주말이면 산에 다니고 글에 대한 생각을 접고 지냈다.

그런 내게 지인이 브런치를 소개했다. 처음 나를 수필 문학회로 이끌었던 분이다. 독서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분의 글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니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작품을 한두 개 올려놓고 브런치 작가에 응모하니 불합격 통보가 왔다. 어? 나 나름 등단작가인데 하고 작품을 하나 더 올리고 응모했는데 이번에도 불합격이다. 정말 나는 안 되는 것인가 하고 다시 한번 응모하니 세 번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다음으로 간절함을 갖고 페이스 북 주소도 올리고 문학회 출간 작품집 인터넷 주소도 올리니 합격 소식이 왔다. 네 번째 응모에서야 합격한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만 바로 작품을 올리지 못했다. 나의 첫 째 직업인 주부와 둘째 직업인 기간제 교사 생활이 만만치가 않다. 3월과 12월은 학교 생활에서 가장 바쁜 시간이다.

물리적 시간도 심리적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학교의 중요한 행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안산에 다녀와서 글을 올렸다. 처음 알게 된 만첩 빈도리라는 꽃에 대한 글이었다. 작품은 한 편뿐인데 구독자가 십여 명 생기니 독자들이 읽을 글을 더 올려야겠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이렇게 시작한 브런치에서 지난 일 년 한 작품도 쓰지 못한 내가 어느새 시와 수필을 이십여 편을 쓰게 되었다. 브런치 북을 본 지인이 내 글을 인터넷 신문에 올리고 싶다고 해서 이 주일에 한번 새 글을 써서 주기로 했다.

이제 브런치에 작품을 처음 올린 5월 28일은 내 생일날 만큼 의미 있는 날이 되었다.

글도 식사도 맛있게 브런치를 해야겠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에 밥을 먹는 것 이상이다.

맛난 도시락을 싸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것은 요리를 하는 것에 큰 의미와 기쁨이 된다. 도시락을 나누어 먹듯 브런치 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활력이 된다.

나의 생각을 담은 글을 쓰고 독자들과 함께 나누니 글을 쓰는 시간이 바쁜 일상에서 잠시 행복 상자를 열어보고 충전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깊고 아름다운 마음을 담은 다른 작가의 글을 읽는 시간 또한 행복 나무 열매를 먹듯 소중하다.

이렇게 글을 쓰며 지내다 보니 중학교 때 작가가 되고 싶다던 나를 작가 꿈나무로 인정해 주시던 국어 선생님 생각이 난다.

선생님은 학교 시화전에 낸다고 내게 시를 써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마감까지 써지지 않아 나는 남의 작품을 가져갔다.

다음 날 가서 진실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을 실망시킨 것에 대한 죄송함과 부끄러운 마음의 짐이 컸다.

모교로 교생실습을 갔을 때도 선생님은 연세 높으신 가정 선생님께 나를 데려가 인사시키며, '얘가 글쟁이 끼가 있요.'라고 하시며 나를 여전히 작가 지망생으로 인정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봐도 선생님께 나를 그렇게 인정할 만한 작품을 보여드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뵙고 싶어서 교육청 스승 찾기에서 찾아보았지만 성함이 없었다.

선생님께 글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부끄럽지만 글을 쓰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브런치를 할 것이다. 마감은 없지만 독자들을 기억하며 열심히 쓸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식사는 간단히 브런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브런치 메뉴도 많고 좋은 글도 많으니 독자 여러분 같이 브런치 해요!

#브런치, 브런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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