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된 친구를 바라보며

친구는 서로의 생각의 방을 존중해주는 것

by 우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고, 대학 시절 작가 연습을 하자고 한 친구가 있었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나는 청바지와 청자켓을 입고 자주색 모자를 눌러썼다.

대학로에서 친구를 만나 종로까지 걸었다.

그날은 서로 안 해본 일을 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과제가 담뱃불을 빌려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근처 어디 공원에서 준비해온 메모지에 시를 쓰고 서로 바꾸어 읽었다.

아, 그때 난 또 두 번째로 그 친구 린의 천재성에 기가 죽었다.

중1 때 린이 쓴 시를 보고 시는 이 정도는 돼야지 하고, 나는 작가가 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린의 문학적 천재성을 내심 존경해 왔다.

그의 사고는 분명 남다르게 깊은 면이 있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면을 보고 생각한다.

그날도 린이 쓴 시의 깊이에 놀라움과 존경심이 일었다.

내가 뭐라고 썼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의 메모도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린은 '기형도'의 시가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십 대의 객기와 똘기 일었던 시절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린은 화장품 냄새를 몹시 싫어했고, 장난을 치며 가끔 소리도 치는 좀 직선적인 면이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여 다른 친구와 전교 1,2등을 다투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뽀얀 피부로 콧대가 예뻤던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말하는 단호한 면이 있어 오늘날로 말하자면 당당한 커리어우먼 스타일이었다. 나에게 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당당함과 예리함, 정확함이었다.

그리고 한치의 더러움이나 비겁함은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그녀는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운동권으로 활동하였다.

학창 시절, 린이 낙서처럼 가볍게 그린 인물화에는 능숙한 솜씨로 눈매가 날카로우면서도 자신감 있는 짧은 펌 스타일의 여인이 있었다. 그 그림 속의 여인은 당당한 모습으로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린은 여성학을 전공하고 신학 대학원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목사님이 되었다. 신앙생활과 번역일을 하는 그녀는 매우 바빴다.

보통 사람들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친구들 만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일과 교역자로서의 신앙생활, 계속적인 공부를 하는 그녀를 자주 만나지 못했다.

나도 결혼 후, 지방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자주 이사하고, 지금 사는 곳에서도 늦게 시작한 직장생활을 하며 가사를 병행하다 보니 하루하루의 일상이 버거웠다.

서로 너무 다른 길을 가며 이십여 년의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

몇 년 전 한번 만나고, 전화 연락을 몇 번 하다가 올해 초쯤 서대문에 있는 친구 '호'의 카페에서 을 만났다.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의 취업 활동을 위해 카페를 운영한다는 친구와 여성신학을 하는 린이 서로 공감대가 있을 것도 같아 서로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날 호는 여성 신학자인 린을 정중히 대접해 주었다.

대학 다니던 시절, 언제 부터인가 다소 직선적이기도 했던 린의 말씨가 조심스럽고 부드러워졌고 성격도 조용해졌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날의 더욱 조심스럽고 조용하여 가녀린 은난초 같았다.

번역도 하고 아이들 영어도 가르치는 린은 성공이라는 통념으로 볼 때는 그때까지 사회적으로 자리잡지는 못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자신의 소신대로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좀 더 확실한 지위를 갖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분명 여자이기에 더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 여자라는 것이 문제가 된 부분이 있었다.

중세 유럽이나 조선 시대처럼 여자가 글을 알고 쓰는 것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많다고는 하지만 우리들의 시대에도 여자가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간다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

린이나 나의 경우, 가정에서 아들만 대학 보내고 딸은 그렇지 않은 환경은 아니었다.

내가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는 힘없이 알았어라고 대답하신 반면 남동생에게는 대학원을 가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남과 여의 차이를 느꼈다. 사실 아버지 마음속에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을 섬기라 하고 빚진 사람처럼 시 어머니를 받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며 공부를 더 하려던 나의 꿈을 포기하기까지 여성의 역할이나 남녀 차이를 나 스스로도 극복하지 못했다.

성차별 때문에 꿈을 포기하였다고만 말하기에는 나는 가사나 육아를 좋아하기도 하여 다른 생각을 안 한 부분도 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나의 의식 안에 있던 여자의 역할에 스스로 묶인 면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 나는 나의 딸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살기를 원치 않으니 말이다. 나의 어머니도 그러셨을 것이다.

린의 경우도 성장과정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한 성차별 적인 상황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가정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성차별적인 의식이 린과 나의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고 현재의 삶을 규범 지었다.

전자책을 냈다고 하는데 반가운 마음에 바로 OO문고에 접속하려니 잘 되니 않아 한동안 못 보았다.

나름 바쁜 직장생활과 가사, 그리고 요즘 집중하기 시작한 글쓰기를 하며 지내다 보니 또 몇 달이 지났다.

친구가 책을 냈는데 얼른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OO문고에 접속해 보니 그녀의 책이 4권이나 되었다. 첫 번째 책을 냈다는 말을 들은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반가웠다. 작가의 길에 접어들더니 무려 4권이나 몰입해서 저작 활동을 했구나, 자기 길을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머니도 없는 내가 전자책을 사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 남편에게 우선 두 권을 사서 선물로 보내달라고 했다.

여성학과 신학을 전공한 친구가 처음 여성학을 전공한 것이 적성에 맞지 않는 선택인 줄 알았는데, 두 길은 정확히 친구의 삶을 하나로 연결하는 선상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픈 시간에 대한 고백과 신앙이 만나 하나의 저서로 귀결되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알고 있던 친구의 모습이 정확히 반쪽밖에 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참 오랜 시간 친구를 봐 왔는데도 친구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고 그 아픔과 외로움에 관조자밖에 될 수없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사람 관계가 자주 만나는 사람하고는 한 번 더 보기가 쉬운데 한동안 소원했던 사람과는 만날 시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삶의 수레바퀴가 흘러가던 방향이 익숙해서 그대로 가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의 아픈 상황을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지만, 나의 무심함이 친구의 아픔을 말할 기회도 주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그 거리가 이렇게 긴 시간을 흘러오게 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캐묻는 것을 싫어하지만 때로는 묻고 보듬고 해야 할 상황도 있는데 말이다.

당당함의 이미지로 알고 있던 친구의 마음속에 억압과 두려움, 연약함이 자리 잡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40여 년을 보내왔던 것이다.

글이란 참 묘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친근감 있게 고백할 수도 있고 또 공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 저자가 자신의 아픔을 말함으로써 그 글을 읽는 모르는 사람의 아픔이 치료될 수도 있는 것이다.

린이 자신의 아픔을 말하고 글로 표현한 것은 그저 말이 아닌 그녀의 공부와 꿈이고, 고뇌와 신앙이었으며, 아픔과 극복이고, 치유였다.

결국 승화된 그녀의 삶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더욱 공감을 하고 누군가의 상처가 치유될 것이다.

린의 책을 읽으며 나와 린이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이 시대에 같은 여자로서 일부는 같은 아픔을 겪으며 지나온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가이자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그녀가 멀게도 느껴지고 가깝게도 느껴졌다.

린의 글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았던 이런 모습이 바로 이런 마음 자락의 흔들림이 었구나 하고 생각되는 대목도 있었다.

린과 나는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글을 쓰는 선상에서 만났고, 내 글을 읽은 린은 따뜻하다고 했고, 린의 글을 읽은 나는 린의 아픔이자 이 시대를 사는 여성의 아픔, 나의 아픔을 돌아보고 치유받게 되었다.

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작품이 된 의 글로 치유받는 여성들, 어쩌면 남성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삶의 모퉁이를 돌고 돌아 글쓰기라는 제자리를 찾았는지 모른다. 아니면 지나온 시간의 주름이 우리에게 글을 쓰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글쓰기는 삶의 모서리, 절벽, 가시밭길을 걸어보지 않고 무지개만 보면서 되는 일이 아니기에, 서로가 걸어온 지난 시간에 있었던 어려움과 방황은 의미 없는 과정일 수 없다.

금 혼자인 린이 앞으로의 시간을 같이 할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 한 시간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온 나의 시간이 성장한 자녀의 분가와 더불어 나에게만 집중되는 시간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린과 내가 글을 쓰고 읽으며 독자와 작가로서의 만남이 이어질 것이고, 여러 과정을 지나온 성숙한 만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를 응원해주는 친구가 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까지처럼 린과 나는 성격도 다르고 의견도 다르겠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공감해주는 부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친구란 서로가 있는 거리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똑같은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서로의 방을 존중해 주고 서로가 바라보는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와 먹구름까지도 소중하게 여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겨울산행 동영상입니다. 늦게 만난 산 친구들과 비닐 포대로 썰매 타고 행복한 소백산 겨울산행

https://tv.naver.com/v/1234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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