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엉겅퀴(제1장)

(태양 아래 빛나는 엉겅퀴의 자줏빛 꽃잎 2021.8.4.)

by 우산

아파트 단지 안에 예쁜 정자와 연못, 한옥 담장이 생겼다. 갈색 담장 앞에는 데이지 꽃이 하얗게 피어있다. 가운데 노란 꽃술을 품은 하얀 데이지 꽃은 태양의 사랑을 흠뻑 받고 감사의 미소를 짓는 듯하다.

서영은 그 꽃을 보며 학교에서 밝고 긍정적이며 활기차게 생활하는 현이를 떠올린다.

누가 봐도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자란 모습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으며 학급의 재활용품을 정리하거나 주번이 미처 지우지 못한 칠판을 지울 때도 제가 할게요 라는 말을 기꺼이 한다. 아이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손걸레를 깨끗이 빨아 걸고 가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은 어떤 분일까 하고 궁금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학부모 총회 때 만난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왜 현이가 그렇게 빛나는지 정답을 알 것 같았다.

데이지 꽃을 보며 현이의 얼굴을 떠올리던 서영은 붉은 자줏빛 꽃잎을 반짝이는 엉겅퀴 꽃을 발견한다. 하얀 데이지 꽃잎 사이에 있어서인지 더욱 강렬하고 곱게 보인다. 그 빛깔의 강렬함이 자기주장과 고집이 강한 사춘기 아이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곧게 서서 꽃잎을 받쳐주는 줄기 옆으로 뻗은 가시가 달린 엉겅퀴의 잎을 보니 귀엽게 웃다가도 자기 마음에 거슬리면 표정이 바뀌고 돌발 행동을 하는 영락없는 사춘기 아이이다.

사춘기 병을 심하게 앓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충분한 사랑을 주었는데 내가 무얼 잘못했길래, 쟤는 왜, 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모든 아이들 문제에 정답을 찾아줄 것 같은 오 OO 박사라면 아이를 하루 쯤 관찰하고 문제를 바로 발견할 수 있겠지만 보통의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겉으로 문제가 빨리 드러나는 경우는 해결이 쉬울 수 있지만, 보통의 경우 아이와 부모가 마음의 상처가 깊어가도 상담소를 찾아 적극적 해결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 아이의 마음이 어그러지기 시작한 시점과 원인이 불분명하고 부모들도 문제를 포장하고 솔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듯이 마음에 병이 생기면 빨리 의사를 찾아 치료하도록 편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서영은 늘 생각해 왔다.

빨리 치료하면 조금이라도 상처도 덜 하고 회복이 빠를 텐데, 곪아 터지고 문제가 커져서야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학교에 위클래스 상담 교사가 있어 전보다는 학부모와 학생이 용기를 내면 다소 편안하게 상담을 할 수 있으니 다행스럽기는 하다.

마음의 병이라는 것이 다른 병과 달리 혼자만 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주위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방치하면 문제가 커지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모든 성장과정과 생활환경은 가치관 형성의 과정이다. 무심코 한 부모의 행동이 아이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다. 폭력의 징후를 어린아이라고 쉽게 허용하거나 자기 주장만 하며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어리다고 작은 것이라고 허용했던 것이 문제가 커지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나 기대가 아이를 가식적으로, 강박관념에 지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모든 문제 행동이 부모의 잘못은 당연히 아니다.

사춘기의 호르몬 작용은 어떤 작은 바람에도 커다란 파동이 될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 질풍노도라는 감정이 연잎을 띄우는 바람으로 잔잔하게 하거나, 커다란 유람선을 밀 수 있는 에너지로 키우는 것도 때로는 교사의 능력과 책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영은 교단에 서 왔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부모들의 전적인 지지와 신뢰도 필요하다.

선이는 엉겅퀴의 고운 색과 가시 잎이 대조적이다 생각되며 그 어떤 면이 강조되는가에 따라 아이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얼마 전 결혼을 한 선이를 떠올린다.

서영이 존경하는 서 부장님의 딸인 선이는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를 자퇴했다.

선이가 어떤 사건인지 어느 정도 가담했는지를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다만 서 부장 부부의 도덕적 완벽주의가 아이를 너무 몰아붙여, 기댈 곳 없는 선이가가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들과 밀착도가 높아진 것 같다며 서부장이 눈물지으며 자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같은 나이 학생들과 고등학교에 다니려면 이번에 보는 검정고시에 꼭 합격해야 하는데 영어에서 과락이 되고 본인도 어찌할 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다고 했다.

한때 초•중학생의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서영은 선의의 공부를 돕겠다고 했다.

검정고시는 절대평가로 일정 수준만 공부하면 되니, 선이가 잘 따르기만 하면 가능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았다.

선이를 만나보니 말수가 적고 웃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열심히 하겠냐고 물으니 선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검정고시까지 40일 정도 남았으니 체계적이고 집중력 있는 교육이 필요했다. 하루에 세 시간씩 주 3회 수업을 했다. 중학교 1학년 정도의 교과 내용을 정리하고 발음 체계를 가르쳤다.

선이는 숙제도 밀리지 않고 해왔고 수업에 집중했다. 간간이 아이의 기분이나 마음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순수한 봉사였기 때문일까, 배움이 절실한 아이였기 때문일까. 선이를 가르치며 서영은 마음이 밝아지는 걸 느꼈다. 그 정도로 장점이 많은 아이였다.

선이는 그렇게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다음 해에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후 선이는 서영이 다니는 교회 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았다.

선이는, 얼마 전 결혼하였다.

서부장님은 안타깝게 세상을 일찍 떠났고 딸의 결혼식을 보지 못하였다.

서영은 사춘기 가시로 자신도 아팠고, 주위 사람도 아프게 했던 선이가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자신의 행복을 잘 지켜가기를 기원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특별한 내조를 필요로 하는 남편의 직업 때문에 서 부장은 아이에게 따뜻한 대화보다 다그치는 말과 의무만을 강요했다고 자책을 많이 했다.

그 말을 듣고 서영도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보기도 했다. 안 하던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힘들었던 시기에 큰딸에게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빨리빨리'라는 말만 한다는 원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자녀에게 관심은 있지만 실리적인 면만을 강요하는 마음 급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학교 생활 이모저모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 규칙은 잘 지키지만, 친구들을 자신의 잣대로 재고 맘대로 되지 않으면 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지낸다. 친구들을 늘 비교와 불평의 대상으로 보며 그늘진 학교 생활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서영은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 그런 학생들의 모습은 다른 교사들의 눈에도 단박에 보이며 서영과 같은 심정을 나누기도 한다.

서영은 다양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그녀 자신의 양육태도를 반성해 보기도 했다. 시간에 쫓기며 가사와 학생지도, 자녀 교육을 하다보면 인간적인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자신이 부족하다거나 잘못을 깨달으면 가르치는 학생이든 자신의 자녀이든 곧 사과하고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녀의 장점이었다.

데이지 꽃 사이로 군데군데 돋아난 엉겅퀴 줄기와 꽃들을 바라보다 나란히 붙어 엉겅퀴 꽃송이에서 시선이 머문다.

수년 전 담임을 했던 진이와 철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힘겹고 위태하게 중 3을 보내고 졸업시켰던 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가시가 많아요,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라고 외치는 아이 같았다.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 동안 진이는 지각을 했고, 뒤늦게 나타나 교실 문을 확 열고 꽝 닫고는 당당하게 자리에 앉았다. 학교 규칙을 당당하게 무단 횡단하는 모습이었다.

첫날은 그냥 지각하지 말고 내일부터 일찍 오라고 했지만 진이는 그다음 날도 늦었다. 왜 늦었니 하면, '그냥요'가 답이었다. 계속해서 지각을 하며 문을 꽝 닫는 진이에게 서영은 차분하고 약간 냉정한 어조로,

"적어도 늦게 들어올 때는 문은 조용히 열고 들어와야지."

했더니,

"나에게 그런 말 하지 마요, 난 세상에 선생님은 없고 선생 직업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선생님은 그냥 월급 받으니 하는 거잖아요!"

교무실로 오라고 해서 말했지만 녀석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반성의 기미도 없고 지각을 하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수업 중간에 불러 말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도 않아 일단 교실로 보냈다.

오후에 진이와 친한 철이가 와서 진지하게 말했다.

"선생님, 진이는 제가 타이를게요. 걔는 그렇게 말하면 절대 말 안 들어요. 죄송합니다."

뭐지?, 이 상황은? 서영은 자신이 상담을 받는 것 같았다. 철이는 진이의 보호자인가.

철이는 언제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학교 생활을 하며 학기말까지 꾸준히 성적이 올랐고 자신이 좋아하는 영이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면서도 진이를 챙기는 모습이 기특하고 듬직했다.

전혀 생활하는 모습이 다른데도 진이를 친구로 챙기는 철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동료 교사에게 들으니 진이는 가장 요주의 인물이고 해마다 폭력사태가 있던 학생이라고 했다. 1학년 때 담임인 김 선생님에게도 그런 식이다가 지금은 좀 듣는 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녀석의 태도를 그냥 두고 볼 수도 없어 서영은 어머니와 상담을 해봐야 할 것 같아 집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너무 죄송하다고 하면서 타이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진이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여자 선생님이라 남자아이를 이해하는 폭이 좁으신 것 같은데요, 우리 진이 아무 문제없어요. 선생님께서 너무 좁은 잣대로 재지 말고 이해의 폭을 넓히셔야 해요. 우리 진이 꽤 괜찮은 아이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