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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과사색 Jul 08. 2022

현실이 괴로울때 나를 돕는 방법:근본적 수용 실천 후기

현실 부정을 극복하는 '근본적 수용' 실천 후기

'근본적 수용' 실천 후기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제발 남자 친구 주지 마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그동안 나를 스쳐 지나간 숱한 쭉정이들 때문에 내 인생이 보통 꼬인 것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다양한 쭉정이들이 나의 평온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쳤었다. 그럴 때마다 눈을 감고 '이 새끼 또한 지나가리라' 라며 마음을 달랜 것이 구백번은 된다. 내 팔자는 남자 만나면 꼬이는 팔자라고, 그러니 남자를 절대 만나면 안 된다고, 행여나 누가 와서 붙을까 겁난다고 껄껄대며 자조적인 농담을 해댔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지축을 흔드는 귀요미가 나타났다. 이렇게 따뜻하고 바르고 그늘 없고 선하고 유쾌하고 선비 같은 사람이 존재했다니 놀라웠다.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났다니 더욱 놀라웠다. 그도 나를 좋아한다니 더더욱 놀라웠다. 현실 같지 않았다. 정말로 하늘에서 갑자기 내 품으로 툭 떨어진 선물 같았다. 너무 좋아서 믿기지 않고 얼떨떨한.


그의 마음은 늘 내 마음을 울렸다. 일 분 일 초 쉬지 않고 내 마음을 울렸다. 나의 전경이 나의 고복수에게서 느꼈던 것처럼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대사). 그는 나의 영혼 구석구석을 채워주고 반짝반짝 닦아주고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내가 마치 작은 새 알이 된 것만 같았다. 그가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품으로 정성스럽게 품어주는 새 알. 보호받고 사랑받고 존중받는 느낌은 신비로울 만큼 황홀했다.


그래서 '제발 남자 친구 주지 마세요'라고 기도했던 나는 머저리 같은 입방정을 떤 것에 백 번 용서를 구하며 그와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하는 세상에서 평생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쭉정이 경험 데이터 베이스를 빡세게 돌려본 결과, 그는 다르다는 것을 확신했다. 한결같이 다정하고 따듯한 모습과 변하지 않는 사랑에 더욱더 확신했다. 그와 결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와 행복하게 평생을 살고 싶었다. 이것만이 나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찾아온 금요일 저녁이었다. 긴 한 주 끝에 만난 그와 반갑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연말에 무엇을 할지 계획을 짜면서 들떠 있었다. 음악회를 가도 좋고, 자연을 보러 가도 좋다는 얘기를 나눴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어김없이 그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는 내 눈치를 보더니 자리를 피해 통화를 하러 갔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갑자기 매우 상해 있었다. 멍한 눈으로 내 옆에 터덜터덜 걸어와 앉았다. 그의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그리고는 헤어지자고 말했다.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했던 그가 돌변해서 매몰차게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온몸의 세포가 방방 뛰는 듯했고 뒷골이 당겼다. 평생을 꿈꿨던 사람이 갑자기 밥을 먹다가 전화 한 통 받고서 이유 없이 헤어지자고 했으니, 쉽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도, 그 사람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당장 나를 버리는 그의 매정함에 분노했고 슬펐다.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납득이 가게 설명해주지 않는 그가 미치도록 답답했다. 뭐에 씐 사람처럼 갑자기 ‘나를 만나는 것이 힘들다’는 말만 반복하는 그가 남처럼 낯설고 무서웠다.


어처구니없는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끝도 없이 펼쳐졌다. 왜 헤어지자고 하는 건지, 나에게 왜 이런 상처를 주는지, 무엇이 발단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가 어떻게 하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되는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나는 더욱 절망했고 분노했다. 배신당했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결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받아들이는 순간 내 인생은 망할 것만 같았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사랑 없이 늙어 죽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이번 생이 제대로 망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것은 공포였다. 내가 밤에 수도 없이 깨는 이유, 현실이 괴로운 이유, 무기력한 이유의 절반 이상은 이 사건과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에린이 말한 것처럼, 일은 이미 벌어져버렸다. 이제는 이 처참한 상황의 나의 현실이고, 이 상황과 그의 결정은 내 통제 밖의 일이다. 내가 고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오로지 내 생각과 행동만 알 수 있으며 통제할 수 있다. 그러니 ‘왜’라는 생각을 그만하고, ‘상황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헛된 희망을 그만 품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받아들이기 정말 싫었지만,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일단 무엇이든 시도해보고자 했다.    


    일단은 수용이 부족한지 자가 진단을 했다. 내 생각들은 이러했다.  

“ 난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어. 평생 이렇게 상처받은 채로 혼자 살게 될 거야.”

“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남들은 잘만 결혼해서 잘만 사는데.”

“ 내가 뭘 잘못했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 정말 이게 내 현실이라고? 꿈같아. 현실 같지가 않아.”

“ 난 평생 이런 비참한 마음으로 계속 살 거야.”

“ 난 이제 망했어.”   


    왜 수용을 하지 못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로, 받아들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이별이 분했기 때문이다. 분해 죽겠는데 이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인정하면 패배자가 되는 것만 같았다.


두 번째로, 상황을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방법을 찾아내고 해결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결’만이 모든 문제 상황을 종료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지금 당장 고치거나, 그의 마음을 지금 당장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


세 번째로, 수용하는 것이 ‘포기’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해결 방안을 찾지 못했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해결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상황이 나아질 텐데, 포기한다면 이 난장판 같은 상황에 안주하는 것과 같았다. 난장판에서 일초라도 더 있기 싫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네 번째로, 지금 이 현실이 끔찍해서였다. 그래서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했다. 아니면 미래로 가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걱정만 해댔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결코 즐거움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끔찍한 현실을 대면하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이다.    


    내가 근본적 수용을 연습한 방법  

1. 일단 이 상황은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나의 경우, 무턱대고 ‘내가 해결할 수 없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포기하는 것 같아서였다. 이것저것 따져본 후에 머리로 납득이 되어야만 ‘그래, 내가 해결할 수 없다’ 고 인정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따져본 것은, 내가 상대방의 행동과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 였다. 사실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나조차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의도인지 파악하기 힘들 때가 있다. 내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거대한 계획대로 짜 맞추어 있어서 여기서 1도가 틀어지면 내가 1도 바뀌고 그런 것이 아니다. 하물며 나 또한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남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바꿀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2. 생각을 멈췄다. 이 상황은 내 통제 밖이라고 받아들이고 나니, 해결방안을 찾아서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즉, 생각을 더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그만한다고 해도 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마음 편히 뇌를 멈춰도 되었다.


생각을 멈추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른 생각이나 활동으로  공간을  차지해버리는 것이었다. 내게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뇌가 다른 생각을 능동적으로 몰입해서 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때는 뇌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눈만 화면을 응시할 ,  머릿속에서는 다시 절망적인 생각들이 경주마처럼 내달렸다. 하지만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는 그럴 틈이 없었다. 책에 빠져들어 능동적으로 머리를 쓰고 생각하니,  시간만큼은 다른 슬프고 처절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올  없었다.  게다가 책은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 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지금  문제 상황에만 갇혀있던  자신을  발자국 떨어져서   있게 도와준다. 고민도 극복될  있을 것만 같고, 갑갑한 문제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누리면서 살고 싶은 욕심과 희망도 생긴다.   


참고로, 내가 가장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서 밥도 먹기 싫고 숟가락 잡을 기운도 없을 때 내게 희망과 긍정을 준 책은 파올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이다.   

언제나 내 정신줄을 붙잡아 주는 파올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


3. 하지만, 해결방안을 떠올리려고 미친 듯이 해댔던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었다. 그와는 별개로 분하고 절망적이고 나는 인생의 패배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몰려올 때가 있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였다. 그래서 우울한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우울함을 가장 빠르고 가장 효과적으로 낮춰주는 것은 운동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 Barre라는 그룹 운동을 했다. 10명-20명의 여자들이 강사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근력운동을 했다. 이 운동이 왜 좋았냐면, 첫 번째로 음악이 신나서 내 기분을 속일 수 있었고, 두 번째로 몸을 빠르게 움직이는 운동을 하니까 신나서 내 기분을 속일 수 있었고,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나를 돌보아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누워서 한숨만 쉬고 방치하다가 내가 나에게 비로소 좋은 것을 해주니, 나를 사랑하고 대우해주는 느낌이랄까. 그게 참 좋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거나 활기찬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했다. 그것은 바로 분위기가 밝은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일단은 사람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장소는 절망스러운 감정을 분산시키기 좋았다. 방 안에서 혼자 우울에 지쳐 누워있다가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 걷고, 말하고, 웃고, 사람으로서 기능을 하는 것을 보면 기분 전환이 되었다. 나도 그 무리에 섞여서 활기차게 다시 잘 살고 싶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그 장소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기분이 더 전환되었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생산적인 일이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작은 성취감과 뿌듯함까지 가져다주었다.

가장 좋아하는 보스턴의 카페 '타테'에서 글 쓰기

파올로 코엘료의 책 '아크라 문서'를 읽는 것을 다시 한번 추천한다. 내가 살면서 실제로 고민했던 것들을 허를 찌르며 얘기해서 한번 놀랐고, 비관의 끝을 달리며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느낄 때 삶을 더 넓고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줘서 두 번 놀랐다.  


4.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올 때는 그저 믿었다. 내가 아닌 절대자, 하느님, 우주 등등 더 큰 힘의 존재를 떠올리면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다 돌보아 주시겠지, 지금 이것이 아니라면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겠지, 날 버리지 않으시겠지, 계획이 있으시겠지. 두려움보다 믿음이 더 커야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다. 그리고 두려움의 실체는 생각보다 매우 작다.   


    나의 Coping Statements  

나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나에게 스스로 말해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를 이미지로 형상화한다면, 깜깜한 방구석에 덩그러니 엉켜 붙어 있는 먼지 덩어리 같았다.


그래서 혼자서는 coping statements를 생각해낼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긍정적인 메시지를 알림 형태로 보내주는 어플 광고를 보게 되었다. ‘Motivation’이라는 어플이었다. 다운로드하여서 살펴보니, 메시지를 받고 싶은 주제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우울, 외로움, 죽음, 불확실함, 성공, 성장, 친구, 감사 등등 인간이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종류의 감정과 경험들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상처’와 ‘배신’을 주제로 선택했다. 그리고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총 30번의 메시지가 핸드폰 화면에 뜨도록 설정했다.

알림으로 받는 긍정적인 메시지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치 친구들에게서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하고 위로받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엔 미안해져서 ‘나 이제 괜찮아’라고 둘러대기 일쑤였는데, 이 어플이 정말 효자였다.


거의 20분 간격으로 메시지가 핸드폰에 뜨도록 설정했기 때문에, 침울해지려고 하는 찰나마다 띠리링- 알림과 함께 위로와 긍정의 메시지가 나를 잡아 일으켜줬다. 처음 한 두 달 동안은 메시지를 캡처해서 사진첩에 넣어두고서 계속해서 읽었다. 놓으면 죽을 것만 같은 동아줄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나 스스로도 긍정적인 말을 내게 해줄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계속 되뇌며 나를 일으켜 세우는 말들은 이러하다.


“ 내가 바꿀 수 없다. 내 통제 밖의 일이다. 받아들이자. 받아들일 수 있다.”

“ 평생 이렇게 살진 않을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 당분간은 슬프겠지만, 이 감정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 결국엔 괜찮아질 것이다.”

“ 세상은 넓다. 인생은 아름답다. 주저앉아 절망만 하고 있기에는 인생이 짧다.”

“ 나에게 집중하자. 그 사람에 대한 감정 소비 그만하고 나를 위해서 살자.”

“ 미래를 믿자. 두려움의 실체는 생각보다 작다.”

“ 내가 꿈꿨던 것이 산산조각 난 것이지, 내 미래가 산산조각 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에게는 미래가 있다.”

“ 더 좋은 곳으로 향하는 중일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 모든 것이 나를 역행하는 것 같을 때, 비행기는 바람과 ‘함께’가 아니라 바람을 ‘역행’해서 날아오른다는 것을 기억하자.”  (By Henry Ford)

“ 단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온 마음을 다해 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정해진 타이밍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 조급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 지금 이런 일들을 우연히 겪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우주가 계획한 정확한 시간과 장소 안에서 나를 위해 발생하는 일이다.”

“ 잘 될 거라고 믿자. 지금 모든 해답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

“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은 애초에 내 것이 될 운명이 아닌 것들이었다.”

“ 가끔 우주는 내가 갖고 싶은걸 갖게 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나를 돕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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