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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의 신발주머니

승무원의 미소보다 아름다운, 투박한 친절을 꺼내다.

by 장이엘


사회에서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늘 웃고 있었다.

아니, 늘 웃고 있어야 했다.


나의 감정은 깊숙이 숨겨두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승객들을 맞이했다.


승무원에게 '미소'는 기본이었고,

덜덜 떨리는 입꼬리의 경련도

억지로 버텨내야 할 '직무능력'이었다.


나는 언제나 잘못하지 않아도

"일단 기분이 나쁘셨으면 죄송하다"라고 말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야 했다.


그렇게 미소와 친절함은 나의 무기가 되었고,

동시에 나를 죄어오는 갑옷이 되었다.


그 갑옷은 점점 더 몸을 조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타이트해졌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 눈에 띄게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다.

억지로 환하게 웃지도 않았으며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친절을 베풀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반에는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선영이라는 친구가 있었고

걸음이 불편해서 친구들의 1/2 속도로 걸었다.


하굣길에 선영이가 혼자 절뚝이며 걸어가는 걸 보았다.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선영이에게 다가갔다.


버거워 보이는 가방과 신발주머니.

"신발주머니 들어줄까? "

"응. "

나는 아무 말 없이 신발주머니를 들어주었고

선영이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2학년이 될 때까지 나는 그렇게 1년간

선영이의 신발주머니를 들어주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칭찬을 바란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무심한 듯 투박하게 행동에 옮겼다.


그랬던 내가 성인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 사회가 원하는

완벽한 페르소나를 키워나갔다.


치아가 모두 보이도록 언제나 환하게 웃는 미소.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투.

극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억누르며 친절하기.


이 모든 것이 '서비스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마음과 신체를 지배했다.


어느 순간 '진짜 친절'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직업적 친절'이 대신 채우고 있었다.

입꼬리는 항상 올라가 있었지만

마음의 온도는 차갑게 내려가 있었다.


이제 나는 친절을 자랑하듯

어색하게 올라가 있던 입꼬리에 힘을 빼고,

차가워진 마음의 온도를 높이려고 한다.


아직도 나도 모르게

‘웃어야 해, 미소 지어야 해' 하는

강박관념이 불쑥 나타나기도 하지만

금방 알아차리고 크게 심호흡한다.

내 감정에 집중하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내 안에서 아직도 숨 쉬고 있는

조금은 투박하지만 따뜻한 '선영이의 신발주머니'를

다시 찾아 꺼낸다.


그렇게 나는, 조금은 서툴지만 진짜인 나

천천히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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