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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돌이 되기로 했다.

부품이 아닌 작품으로 살아남은, 나의 기록.

by 장이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말대꾸하지 말고, 쓸데없는 건 묻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살면서 한 번쯤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아주 어릴 적,

나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세 살 무렵, 김치를 담그던 이모에게
“이모, 기씸은 왜 기씸이에요?”

"엄마, 달은 왜 달이라고 불러요?"
발음이 서툴러 ‘김치’를 ‘기씸’이라고 하며

이런저런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모는 아직도 그때를 이야기한다.
“어쩜 아기가 그렇게도 궁금한 게 많았을까?”


세상에 대한 큰 호기심은 계속되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필름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작은 손으로 셔터를 누르며,

낯설고 새로운 순간들을 수집했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배우고, 기록하고

한 발짝 더 가까워지고자 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려 애썼고,

어떤 일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앞으로 나서서 먼저 도전했다.


그런 모습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반장을 맡게 되었고,

말썽을 부리는 남자아이를 혼내주다

결국 코피를 터뜨린 적도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편했을 텐데,

나는 늘 한 발 더 나서서

잘못된 건 바로잡고 고치려고 했다.


하지만 커가면서 나는

사회의 시선을 점차 의식하게 되었고

눈치와 억압을 배웠다.

그렇게 어른들의 말에 길들여졌다.


튀지 않고 조용하게

모난 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튀어나오는 질문을 덮었고,

말 잘 듣는 학생이 되기로 했다.


규율이 빽빽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말수를 줄였고, 궁금해도 묻지 않았다.

참았다가 집에 돌아와

책과 인터넷으로 혼자 답을 찾았다.


나는 그렇게

사회가 정한 틀에 나를 억지로 맞추며 성장했다.

실수도, 문제도 만들지 않았다.


그 후, 한국을 떠났다.

유학 생활을 하며 마주한 건

'당당한 질문문화'였다.


이곳에선 모두가 궁금한 것은 바로 물었고,

싫은 것은 싫다고 말했다.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질문했고,

토론하며 대화하듯

당당하게 의견을 나눴다.


질문을 멈춘 내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도전하기 시작했다.

궁금한 것은 물었고,

틀린 것은 바로잡았다.


외항사 승무원으로 일하며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곳은 말 그대로 생존의 무대였다.


한국에서 배운 온순함과 조신함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강한 그들은

거친 바람과 타오르는 불꽃같았다.


강한 생명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 역시 목소리를 내야 했다


그렇게 세계에서 날아온

각종 모양의 모난 돌 들은

다양한 매력을 드러냈고,

정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솔직히 자신을 표현했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


이곳에서 침묵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고,

무책임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니,
보이지 않는 규율들이
또다시 내 숨을 막았다.


눈치와 조심성으로

내 마음을 다시 가두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진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은
누군가의 기준 속이 아니라,

나답게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나를 작게 만들지 않기로 했다.

틀에 맞추기 위해

내 모서리를 모두 깎아버리면,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주변을 찌르지 않을 만큼만

부드럽게 다듬어가며

내 자리에서 나답게
모난 돌로 살아갈 것이다.


모난 돌은 부품이 될 수는 없지만,
작품은 될 수 있다.
나는 누군가의 부품으로 살기보다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고 싶다.


세상에는 수많은 모난 돌이 있다.
시스템의 부품이 되기 위해서

서로를 닮아가려 애쓰며

자신의 모서리를 모두 깎아내어
점점 더 작은 동그라미가 되어가는 이들.


그러나 때로는,

서로 다르고 제각각인 그 모양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모습이 된다.


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서로 다른 빛을 품고

자신만의 색과 모양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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