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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오빠의 '엄마'가 됐다.

"네가 더 믿음직하니 오빠 좀 잘 챙겨줘."

by 제니 Mar 14. 2025

 부모님이 가끔 부재한 상황에서는 내가 오빠의 '엄마'가 됐다. 엄마는 늘 '네가 더 믿음직하니까.', '덜렁거리는 네 오빠를 잘 챙겨줘라' 등의 말로 내게 그 역할을 부여했다. 


 가끔은 오빠 학교 가방을 챙겨주기도 했고, 엄마가 해놓고 간 요리들로 밥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엄마가 준 카드로 오빠의 학원비를 결제해 주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오빠를 잘 챙기는 동생이 됐다. 친척 어른들은 명절 때 우리 남매를 보면 늘 내가 '누나'같다고 했다. "오빠를 어쩜 그렇게 잘 챙기냐"며 말이다. (그렇다고 오빠가 늘 도움이 필요한, 어디 모자란 사람이었던 게 아니다. 그냥 공부하기 싫어하는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무엇이든 알아서 잘하는 아이'가 됐다. 눈치도 빨랐다. 참을성이 강했고 어른스러웠다. 이렇게만 나열하면 장점 같지만, 20년이 지나서야 그때를 되돌아보니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었다. 그 결과 나는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성인으로 컸다.


 아이는 아이여야 하고, 어른은 어른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애어른'은 양립할 수 없는 단어다. 브런치를 쓰던 초반에 한 구독자님이 내게 "사춘기가 없는 건 좋은 게 아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엄마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사춘기가 없었다는 내용에 달린 거였다. 이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 댓글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던 것 같다. 연재하면서 나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다 보니 이제야 내게도 결핍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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