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부터 나는 '애어른'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대치동 한복판에서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약 20년 전 일이다.
공부를 나름 잘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오빠는 당시에도 학원을 밤까지 다녔다. 영재반, 과고반... 뭐 대충 이런 이름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어느 날, 오빠가 학원에 오지 않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는 내 손을 무작정 잡아끌고 오빠랑 당시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 OO이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로비에서 방문자 명단을 쓰던 아파트였던 것 같다. 엄마는 경비 아저씨와 어떤 명단을 보면서 이야기하더니, 나를 다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마도 그 명단에 오빠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이곳에도 오빠가 없는 걸 알자, 아파트 인근 도로 한복판으로 나와 오열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너무 창피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나는 엄마를 무작정 달래기 시작했다. 잘 달래 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빠가 너무 미웠다. '오빠는 철이 없어.'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결심했다. 나는 오빠처럼 엄마 속을 썩이지 않겠노라고. 나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다.
어떻게 오빠를 찾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오빠는 OO이라는 친구와 학원 근처 pc방에 있었다. 큰 일탈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나는 '애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아닌데, '어른스럽다'는 말을 항상 들었다.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엄마아빠는 늘 변함없이 나를 예뻐했지만, 오빠의 입시에 죽을 둥 살 둥 매달리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적어도 학교 생활이나 공부로는 속을 썩이지 말자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지금은 엄마도 오빠도 고작 '공부'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어했다며 자조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학창 시절 내 학교 생활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중학교 3년 동안 학급 부회장 같은 감투를 썼는데, 엄마는 그저 "필요한 거 있어?"라며 내가 요청할 때 도와주는 정도였다. 외고에 합격했을 때는, 주변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혼자 준비해서 갔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그때는 나 스스로가 정말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