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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

10년 만에 나타난 얼굴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미움도 무뎌지나 보다.

by 제니 Mar 21. 2025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해 연재하다 보니, 다른 인간관계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연인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사회에서 만난 이들과의 관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저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인간관계를 통한 저의 성장기도 함께 이 브런치북에 녹이려고 합니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 결혼식을 갔다. 나는 여러 이유로 졸업 직후 대부분의 인연을 정리했기에 어떤 얼굴이 보일지 궁금했다. 청첩장 모임 때 대충 어떤 친구들이 오는지 들었는데, 나의 시절 인연은 두 명이었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어색하게 혼자 앉아있는데 한 친구가 내 옆자리로 오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도 이제 이런 거 마셔야지.” 라며 편의점 음료 판매대에서 초록색 캔 아메리카노를 꺼내 내게 건네던 친구. 그 친구와 낄낄댔던 순간들이 갑자기 스쳐 지나갔다. 학교부터 학원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였다.


 그런데 입시를 앞두고 우리는 한순간에 멀어졌다. 같이 엮인 일련의 사건이 발생했고 그 친구만큼은 나를 도와줄 거라 생각했지만, 입시를 앞두고 방해받고 싶지 않다며 선을 그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보지 않았다. 많이 미워했는데, 10년 만에 나타난 얼굴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미움도 무뎌지나 보다.


 또 다른 친구는 5년 만에 만났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까지 같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강 때는 당일치기 여행을 다닐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각자 교환학생을 가는 순간이 오면서 연락이 뜸해졌다. 취업하고서 다시 한번 만났다. 반갑고 재밌었다. 근데 그때뿐이었다. 각자 직장 생활이 바쁘고 생활 반경이 다르다 보니 만남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인연은 쉽게 정리됐다.


 결혼식이 끝난 뒤 본가로 향했다. 고등학교 친구들 이야기를 궁금해했던 엄마에게 이날 주워들은 동창 소식을 들려줬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정리가 되나 봐. 나중에는 아무도 안 남는 거 아냐?" 씁쓸하게 묻는 내게 엄마는 "그때는 또 그때의 인연이 생겨."라고 답했다. "다 시절인연이야." 그러면서 지나간 인연에 연연하지 말라했다. 그 순간에 행복하고 재밌게 지내면 거라고.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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