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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폭싹 속았수다.2

모녀 호주 자유여행기

by 제니


휴가를 위해 떠난 호주행 비행기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시작했다가 퉁퉁 부은 눈으로 내렸다. 광례와 애순, 애순과 금명을 보면서 우리 모녀가 자꾸 연상됐다.
애틋해진 마음에 이번 모녀여행 잘해봐야지, 결심했는데 막상 현실에서는 엄마한테 모진 말을 쏟아내던 금명이가 됐다. 다섯 편에 나누어 호주 모녀여행기를 연재한다.
“나이 들면 다 그렇다는데, 엄마가 엄마 나이를 생각 안 했나 봐. 이번이 진짜 마지막일 수 있을 것 같아. “


전편에 적었던 이 말은 사실 엄마가 최근 몇 년 간 해외여행 갈 때마다 하는 말이었다. 내가 취업한 뒤로, (코로나19 시절 제외) 엄마와 나는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꼭 장거리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호주... 그리고 일본, 홍콩, 대만 등 단거리는 더 자주 갔다. 내 휴가는 늘 모녀여행이나 가족여행을 위해 썼다.


이렇게 다니기 시작한 첫 번째 이유는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이 제일 즐거워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무감도 배제할 수 없었다.


“내가 딸 아니면 누구랑 이렇게 여행을 가겠어. 엄마는 딸이랑, 그리고 가족이랑 여행한 추억을 먹고살아. 너무너무 행복해. “


친구도, 취미 생활도 딱히 없는 엄마에겐 여행이 유일하게 한을 푸는 창구였다. 가족에게 헌신한 긴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마음도 있어 보였다. ”어딜 또 가. 돈이 그렇게 많아, 당신?” 핀잔을 주는 아빠의 잔소리가 심해지면 엄마는 늘 가슴을 치며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사치를 해,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기를 해. 평생을 가족 위해 살았는데 이제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래. 난 그게 해외여행이야. “


엄마 주변에 몇 없는 친구, 지인들은 야속하게도 왜들 그렇게 멋지게 사시는지. 주재원 남편을 따라 몇 년씩 이탈리아며 스위스며 살아본 아줌마, 돈 잘 벌고 바쁜 자식이 비즈니스 태워 하와이 한 달 살기 시켜주는 아줌마, 퇴직하고 남편과 둘이 세계여행 떠난 아줌마... 엄마는 담담하게 ”OO엄마는... XX는.... 이번에 어디 다녀왔대. “ 이야기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다음 휴가에는 엄마랑 어딜 다녀와야 하려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번 호주 여행도 그렇게 잡은 거였다. ‘이번에는 기필코 혼자 가야지. 마음 약해지지 말자.’ 속으로 수백 번 생각하고 호주 여행을 계획했다. 2년 전 엄마와 다녀온 시드니 패키지여행이 정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어서 이번에는 시드니 이틀 머물고 나머지는 멜버른에서 유유자적 보내리라, 결심했다.


주말에 본가에 가서 은근슬쩍 휴가 계획을 꺼내니, 엄마는 바로 “엄마도 호주 다시 너무 가고 싶어. 진짜 그때 너무 좋았잖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 가는 게 무섭도록 빠른 데 갈 수 있을 때 한번 더 다녀올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덧붙였다.


이 말에 난 또 못 이기는 척, 집에 돌아와 2인 항공권을 끊고 있었다.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면서 말이다.


KakaoTalk_20250408_130652208.jpg 호주 멜버른 야라강에서 햇살을 맞으며 앉아있는 노부부의 뒷모습. copyright @jennyinan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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