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휴가를 위해 떠난 호주행 비행기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시작했다가 퉁퉁 부은 눈으로 내렸다. 광례와 애순, 애순과 금명을 보면서 우리 모녀가 자꾸 연상됐다.
애틋해진 마음에 이번 모녀여행 잘해봐야지, 결심했는데 막상 현실에서는 엄마한테 모진 말을 쏟아내던 금명이가 됐다. 다섯 편에 나누어 호주 모녀여행기를 연재한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의 호주 ‘자유여행’을 떠났다. 부모님과 갈 때는 거의 대부분 여행사 깃발부대, 패키지여행만 떠난지라 걱정이 들긴 했지만. 떠나기 전날까지 일하면서 자격증 시험까지 치르느라 그런 걱정은 잠시였다. 상세 계획은 하나도 짜지 못한 채 그저 호텔과 비행기만 끊어놓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호주 아직도 인종차별 심한 나라인 건 아냐? 특히 동양인 여자 둘이면 완전 타깃이야. 엄마 잘 모시고 다녀.” 시드니 공항에 착륙하고 카톡을 확인해 보니, 시차 때문에 뒤늦게 엄마와 나의 출국을 알았던 오빠의 카톡이 와있었다. “가이드 끼고 가는 거지? 절대 둘이서만 다니면 안 돼.” 이런 말도 덧붙였다.
걱정주머니 가득한 부자(父子)를 뒤로 한 채, 엄마의 몸살 기운은 눈치도 못 챈 채, 나는 용감하게 시드니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하러 온 걸까 통역하러 온 걸까.
시드니 냄새를 만끽하기도 전에 공항에서부터 난 동시통역사가 돼야 했다. 호주 의약품 반입이 까다로워져 엄마의 각종 비상약과 처방약을 신고(declare)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륙 직전 인터넷에서 본 거로 대략 메모장에 정리해 가긴 했지만, 엄마는 입국 심고서를 보고 자신을 붙잡는 검역관을 보자마자 잔뜩 긴장했다. 나를 툭툭치고 뒤로 숨는 엄마를 보며 난 그럴수록 검역관에게 열심히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빨리 통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검역관은 다행히 질문 한 두 개만 던지고 곧바로 우리를 통과시켰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면 이런 느낌일까. 나보다 내 건강과 안전을 더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만 빼면, 엄마는 해외에서만큼은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됐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현지 사람과 소통할 때는 무조건 나를 통해야 했고, 길도 모르고 휴대폰 지도도 손에 익지 않으니 길도 내가 다 찾아야 했다.
또, 살림꾼인 엄마에게 호텔 세탁실과 주방은 한없이 낯설었다. 기계 설명이 전부 영어로 되어 있고 사용법도 한국과는 영 다르니 말이다. 스테이크 구우려다 화재경보기 한 번 울리게 하고 나선, 엄마는 주방마저 내게 넘겼다.
혼자 한 번 해볼게.
다리가 아파 호텔에 들어와 쉬려던 참에 엄마는 내게 '세탁실'을 가자고 했다. 옷을 한번 빨아야 될 것 같다면서 말이다. 인상 찌푸리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아냐 이번엔 엄마가 혼자 한번 해볼게."라는 거다. 나도 마음으로는 벌떡 일어나고 싶었는데, 몸이 도저히 안 따라줬다. "엄마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카톡해. 폰 보고 있을게." 엄마는 알겠다며 방을 나섰고 한 10분 뒤 카톡이 왔다. "와야것다."
세탁실이 있는 14층에 내리자, 웬 아주머니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얼른 들어가 보니 한 영국인 아주머니와 엄마는 열심히 바디랭귀지로 소통하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엄마가 영어도 잘 모르고 기계도 잘 모르다 보니, 건조기에 옷을 넣고 돌려 버린 거다. 아차 싶어 옷을 빼내려고 했을 땐 이미 늦었다. 이놈의 건조기가 작동을 멈춰도, 코드를 뽑아도 문이 안 열리는 거다. 그래서 두 아주머니는 국경을 초월해 온몸으로 건조기를 상대로 씨름하고 있었다. 영국 아주머니에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나는 호텔 직원을 불러와 옷을 꺼낼 수 있었다. 엄마는 이 경험이 나쁘지 않았는지 옆에서 계속 까르르, 까르르하며 웃었다.
“엄마 때문에 네가 애쓴다.” 방에 돌아와 다음 일정을 고민하는 내게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진 못 찍는다고, 걸음이 느리다고, 자꾸 화장실 가고 싶어 한다고 잔잔한 짜증을 부렸던 나 자신이 또 원망스러워졌다. 이제 나가면 우리 둘이 까르르, 까르르해보겠노라 결심하며 다음 관광지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