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짧은 주말여행

남도의 금강산을 다녀와서

by 최빛글

“여보, 오늘 산에 갈 거예요? 왠지 가기 싫다.” 코로나 이후 처음 감기를 앓은 아내는 이제야 조금 기운을 차린 탓에 산을 오르는 것이 약간은 부담이 되는 듯 보였다. 동생 내외와 약속한 산행이니 기분 전환도 할 겸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마지못해 승낙하며 준비를 서둘렀다. 근처 마트에서 생수와 과자를 사서 배낭에 넣고 출발했다. 참고로 아내와 처제는 친자매여서 인지 몰라도 과자를 꽤나 좋아한다. 오전 10시에 동생 집에서 만나 함께 가기로 한 터라 30분 거리에 사는 우리는 그 시간만큼 일찍 자동차에 올랐다. 가던 길에 자동차에 기름을 넣은 탓인지 10분 늦게 도착했다. 동생네를 만날 때는 거의 매번 우리가 늦는 관계로 처제는 ‘코리안 타임의 대명사’라고 농담을 던졌다.

땅끝 해남의 달마산에 위치한 도솔암이 목적지이다 보니 보성, 장흥, 강진을 거쳐 해남으로 이어진 길을 달렸다.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우리 일행은 정오가 다 되었으니 가볍게 점심을 먼저 먹은 후 산에 오르자고 의견을 모았다. 해남의 맛집을 검색한 결과 후보 세 곳 중 두 식당은 휴일인 탓인지 영업을 하지 않아, 짬뽕이 유명한 중국집을 골랐다.

우리나라의 ‘경제 침체’ 탓일까, 아니면 ‘삶의 질과 여유’를 중요시하는 요즘 세태 때문일까? 하여튼 내가 사는 곳을 비롯해 인근 지방 소도시는 휴일엔 거의 문 닫는 상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잠시 생각이 머물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중에 주인이 음식을 내왔다. 약간 짜긴 했지만 싱싱한 해물과 어우러진 짬뽕은 남도의 깊은 맛을 간직하고 있어 일행 네 사람은 모두 맛있게 잘 먹었다.


도솔암까지는 달마산 산 중턱 주차장에서 0.8 km, 도보로 20여 분 걸리는 거리였다. 가는 길이 가파르진 않으나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엊그제 비가 온 탓에 상당히 미끄러웠다. 유월 초여름이고 자연 친화적인 숲길이었지만, 햇빛과 구름이 오가는 습한 날씨여서 조금만 걸어도 땀이 배어났다. 안전에 유의하며 조심스레 산을 올랐다.

가는 길목마다 곳곳에 뾰족이 솟아오른 작은 봉오리들은 자신의 몸을 마치 조각칼로 오려놓은 듯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감탄을 넘어 경외심마저 갖게 했다. 맑은 공기와 더불어 경치를 즐기고 음미하며 걷다 보니 내 걸음이 자꾸 뒤처졌다. 처제가 ‘형부! 형부!’ 하고 불러댔다. 어느 순간 길가로 뻗어 나온 나뭇가지에 가려 내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좁은 오솔길이라 혹시 넘어져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따름이다.

잠시 옛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와 나는 ‘캠퍼스 커플’이었고 양쪽 집안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기 위해 서로 노력했다. 지금 나를 부르고 있는 처제 위 오빠(처남)의 영어 과외를 시작으로 처가에 출입하게 되었다. 때론 학교 빈 강의실에서, 때론 처가를 방문해 과외를 했는데, 그 당시 처제는 중학교 1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집에 과외를 하러 갔을 때, 귀여운 소녀가 ‘나도 공부하고 싶다’고 책을 꺼내 들고 다가왔다. 해맑은 그 표정과 뭔가 해보고 싶은 열정의 그 모습이 순간 떠올라 기억 속에 펼쳐졌다. 나만의 기준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동생을 이뻐하지 않을 형부는 없을 것이다. 그때 그 소녀가 어느덧 50대 중반의 엄마가 되었다. 지금은 좋은 배우자와 부럽지 않은 자녀를 두고 나름의 행복을 가꿔가고 있다. 인근에 살아서 서로 공감하며 취미와 문화생활도 공유한다. 그 시간이 우리에게 즐겁고, 아내와 나도 흐뭇하다.

생각의 외유를 접어두고 눈을 들어보니 어느덧 목적지인 도솔암이 눈앞에 그 자태를 드러냈다. 넓은 들판과 서남해 다도해를 품고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자랑하고 있었다. 병풍을 휘둘러 놓은 듯한 기암괴석을 거느리고 높은 바위 위에 요새처럼 홀연히 서 있는 모습은 태초의 하느님이 내려온 신비한 영지 같았다.

게다가 흰 구름과 희뿌연 안개를 휘감고 있는 뾰족한 기암괴석의 봉우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도솔암에서 나는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그리고 서로 믿고 사랑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도했다. 우리 일행은 도솔암을 둘러싼 절경에 감탄하며 ‘여기 이런 곳에 어떻게 암자를 지을 수 있었을까?’ 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궁금해했다. 그때, 매사에 성의를 다하는 동서는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추노’와 최근 드라마 ‘귀궁’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고 말해줬다. 모두가 드라마와 영화촬영지로써 손색이 없음을 인정하며 달마산을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강진을 들러보기로 하고, 우리는 처제가 준비해 온 과일 간식과 음료를 먹으며 단란한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예전에 잠깐 보았던 정약용 선생님의 다산초당과 시인 김영랑 님의 생가도 들러보고 싶었으나 다음으로 미루고 남미륵사로 향했다.

스님 한 분이 만드셨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절은 웅장하고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특히 동양 최대규모라는 황동 아미타불 불상은 가히 가공할 만한 크기와 위용이 정말 대단했다. 거기에 남방불교의 형태와 비슷한 석탑과 코끼리 상은 우리나라의 보통의 절과는 다른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곳저곳 절을 돌아보며 38년에 걸친 스님의 땀과 숨결을 느끼며 입구마다 전시된 스님의 시를 음미했다. 문득 들꽃을 보며 인생과 대비해 무한한 자연의 섭리에 대해 생각의 곁을 내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가는 도중, 때가 유월인지라 곳곳의 들판은 마지막 모내기로 바쁜 일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짧은 여행이지만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자동차 안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순간 그들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다.

어느덧 우리나라도 배고픔은 사라졌고, 경제성 없는 벼농사는 차츰 재배면적이 줄어들고 있는지 오래다. 그럼 에도 농사를 천직과 생업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일에 열심이다.

여기서 하나 짚어보자면, 일정 비율의 식량 자급률은 국가 간 무역 전쟁이나 식량 무기화에 대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식량자원 산업인 농어업, 목축업 등이 자생력을 갖도록 체계를 정비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종사자들 또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육성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의 좁은 시각과 소견일 수 있으나 많은 사람의 바람일 수 있다.


오후 5시가 넘어 동생네에 도착했고 이어서 6시쯤 집에 당도했다.

오늘 여행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도솔암의 풍경과 정취는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릴 만큼 손색이 없었다. 남미륵사는 한 스님의 지난한 인생이 그대로 녹아있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 주었다. 벌써 기회가 될 때마다 해남과 강진 그 주변을 가 보고 싶은 심정이다.

무엇보다 동생 내외와 함께해서 즐거운 하루였다. 과일 간식을 정성스레 준비한 처제와 긴 시간 운전을 마다하지 않은 동서의 따뜻한 마음이 있어 뿌듯했다. 고마운 마음에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는데 다음 기회에 먹자고 하면서 처제 내외는 어서 가서 쉬어라고 등을 떠밀었다. 아내가 아직은 감기 기운이 남아 있어 피곤하겠다는 생각에 미리 배려한 것이다.

동생 내외와 우리 부부는 어느 틈엔가 서로를 믿고 함께 공감하며 공유하고 격려하는 사이가 되었다. 30분 거리에 살고 있어 이웃사촌이기도 하다. 특히 동서는 농촌에서 나는 채소, 과일, 곡식을 우리에게 나눠 주기 바쁘다. 그런 배려심과 온정은 내가 더 다듬고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짧지만, 동생 내외와 함께한 오늘 여행은 더불어 사는 삶의 뜻깊은 추억의 한 장을 엮게 되었다.


<남기고 싶은 말>

⋅좋은 친구는 네 잎클로버와 같다. 발견하기 어렵지만 얻게 되면 행운이 온다. (아일랜드 속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이는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탈무드)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영혼을 살찌우는 보약이다. (나폴레온 힐)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꾸면 보는 세상도 바뀐다. (웨인 다이어)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면 작은 일을 위대하게 하라. (나폴레옹)

마음을 담아 선물하고 싶은 예쁜 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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