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냥 장난일까?
영상 통화 중이다. 제 엄마가 아이 둘을 목욕시킨 후, 동생을 먼저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히고 있다. 욕실에 혼자 남겨진 언니 핸세는 한 컵의 물을 세면기에 세게 쏟아붓기를 몇 번 반복하며 말한다. “깜짝 놀랐죠?”. 컵에 담긴 물을 그냥 천천히 따르는 것과 빠르게 쏟아붓는 것은 속도에 따른 물소리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갑자기 물소리가 크게 나면 놀랄만하다. 자신의 발견을 할아버지에게 알려주고 또 그 차이를 아는지 묻고 있다.
핸세는 말을 하기 시작하며 여러 가지 입 모양에 따른 소리를 배웠다. 그러면서 ‘부~’ 소리가 마치 방귀 소리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장난을 시작했다. 주변 여러 사람에게 시험해 보고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할아버지에게 자주 걸어오는 장난이 되었다. 핸세가 ‘부~’ 소리를 내면, 내가 ‘우 우 우 ~’하면서 고개와 팔을 좌우로 흔들며 몇 걸음 걷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후 동작 끝에 코를 쥐고 ‘냄새!’라고 하면 밝고 쾌활하게 웃으며 좋아한다. 우리 가족에게 통용되는 일명 “입 방귀 놀이”가 그것이다.
이제 다섯 살인 핸세는 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일주일 정도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벌써 작년 올해 합쳐 세 번이다.
아내와 내가 서울에 가 있는 때 보다, 작은 도시에 있는 이곳 외가에서 지내는 동안에 입 방귀 놀이 횟수가 훨씬 더 많다. 서울에선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우리까지 합쳐지면 가족 구성원이 많아지고, 동생이 있어 관심과 시선이 분산된다. 입 방귀 놀이가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반면에 여기선 할아버지, 할머니가 핸세 만을 지켜봐 주니 마음껏 할 수 있어서 그럴 것이라 여겨진다.
자기의 행동에 따라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고 원하는 동작을 하는지 핸세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가 할아버지가 좋은지 물으면, “응, 할아버지는 개구쟁이, 장난꾸러기야”라고 말한다. 자기 의도에 맞게 공감을 잘해준다는 뜻일까?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어떤 기준으로 모습을 그리고 판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한데 아이들의 생각은 넓은 우주와 자연 같아서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2. 심판의 한마디
핸세가 네 살 때 우리 부부와 함께 지낸 어느 여름날이다. 우리는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인근 지역에 ‘분수 쇼’(음악과 함께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을 표현하는 분수대)를 보러 갔다. 일정을 계획한 터라 먼저 숲이 우거져 그늘이 좋은 공원을 산책한 후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분수대가 설치된 시냇가로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에 올랐다. 평일이어선지 식당 주변 도로가 한산해 차량 이동이 없었다. 나는 좌우를 살피면서 황색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감행했다. 이때 원칙론자인 아내가 “어린애도 타고 있는데, 안전이 우선이지, 왜 그래요?” “더구나 시간적 여유도 있잖아요.”라고 비난을 쏟아 놓았다. 난 아내의 말이 백번 옳고 아이 눈치도 보이는지라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네, 알았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내가 강한 어투로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쐐기를 박으면서 뒷말들이 잔소리처럼 계속 엮어져 나왔다.
그 순간 핸세의 강력하고 결정적인 한 마디가 터졌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알았다잖아, 그만해” 일 순간 우리 부부는 얼떨떨해 말을 멈추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싸우는 줄 알았을까?’ 어느 한쪽을 편든 것 같지도 않다. 아이의 머릿속이 무척 궁금했다. 아무튼 지극히 상황에 맞는 심판 적인 말에 우리가 할 말을 잃어버린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3. 아빠는 세 번, 엄마는 다섯 번
아이들은 대체로 이 닦기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핸세도 예외는 아니다. 이를 닦자고 하면 대체로 핑계를 대거나 못 들은 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저런 모양새로 저 좋아하는 걸 한 가지 들어주고 협상을 해야 한다. 그날도 아내는 이 닦기로 실랑이를 하다가 드디어 욕실에서 양치를 시킨 후 입을 헹궜다. 아내가 일곱 번 이상 헹구면 이가 예뻐진다고 하자, “아빠는 세 번 하면 된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아내가 물었다. “엄마는?” “다섯 번이요”하고 대답했다. 아내는 충분히 많이 헹궈야 이가 하얗고 튼튼해진다고 하면서 일곱 번 헹굼을 시켰다. 물론 아이들의 치약은 삼켜도 몸에 크게 해롭지 않다고는 하나 어릴 때부터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고 아내는 강조한다. 그 이후 핸세는 서울 집에 가서도 이를 닦은 후 일곱 번 이상 입안을 잘 헹구고 있다.
아이가 말을 하면서부터는 이해를 잘 시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대화와 이해가 선행되면 바람직한 행동과 습관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작은 경험치에서 하는 말이다. 지극히 당연해서 어쩌면 우습게 들릴 수 있다.
4. 방어 본능인지, 자기중심인지
“내 할아버지야, 나와” 내가 동생을 안아 주자 핸세가 하는 말이다. 큰애다 보니 양보해야 할 것도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이전보다 많은 제재와 금기에 적응해야 함은 물론 선의적 양보를 배우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양보는 함께 살고자 하는 몸짓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그것이 포기이고 잠시는 경쟁에서 밀려난다 생각할 수 있다. 조만간 자연스레 양보의 미덕을 알고 스스럼없이 행동할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어린 나이에 맏이의 역할과 합리적 판단의 기대는 스트레스다. 자신을 표현하기에도 미숙한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사랑받는 또 다른 존재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좀 더 말하자면 “넌 누가 제일 좋니?” 물어보면 거의 순위가 바뀌지 않고 동생은 서열이 맨 마지막이다. 그만큼 자신이 받아야 할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 가지는 동생을 아직은 확실히 인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러한 행동과 반응은 자기중심보다는 인간의 천성적 자기 방어본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건 순전히 나의 의견이다.
블록 쌓기 같은 장난감을 원하는 일정 모양으로 쌓거나 진열하며 놀이를 하는 경우, 매번 동생이라는 복병에 의해 흐트러지기 일쑤다. 그럴 때면 ‘하지 마!’라고 경고를 하는데 그래도 동생이 계속하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때릴 수도, 말릴 수도 없어 어쩌지 못해 울어버리는 핸세는 심성이 곱고 착하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마음 바탕에 깔려있다. 요즈음엔 동생이 넘어지거나 다칠 때, 일으켜 안아 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울상을 짓는다. 마음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차츰 가족이든 친구든 한 사람 한 사람 그 존재를 알고 인정해 가고 있는 것 같다.
5. 하루가 다른 학습 발달
다섯 살이 되면서 핸세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선생님과 친구들이 낯설어서 힘들어했지만 두 달 남짓 넘어가니 명랑하고 활발해졌다. 유치원의 학습프로그램을 곧잘 따라 하고 특히 영어를 소리 내어 읽는 걸 좋아한다. 사실 핸세는 어릴 적부터 동요 듣기와 책 읽는 것을
즐겨했다. 거기에 유치원을 다니면서 영어 말하기와 그림 그리기가 더해졌다.
어느 때부턴가 핸세는 ‘지독’이라는 말을 가끔 사용한다. 아내와 딸의 대화에서나 일상에서도 뭔가 매우 심하거나 좋지 않은 일을 얘기하면 옆에서 ‘지독이야’라고 한다. 지독한, 지독하게, 지독하다’를 ‘지독’으로 명사화해서 쓴다. 어휘(단어)의 확장인지, 오류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지극히 상황에 맞게 구사하는 건 확실하다.
집에서는 한글 쓰기가 시작되었다. 글자가 제법 모양을 갖췄다. 점차 학습량과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데, 그 나이가 그런지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타고난 집중력에 학습효과는 나날이 향상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딸에게 몇 마디 조언했다. 무엇보다 인성과 건강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조기교육보다는 자연스럽고 나이에 걸맞게 학습해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딸도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그런 방향으로 행동발달과 학습 교육을 하고 있다. 바람직한 결정과 방향이다.
6. 아이는 원래 외출을 좋아할까?
핸세는 집 밖에서의 에너지가 좋은 편이다. 주말과 휴일엔 문화센터를 방문하여 발레 등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거기에다 키즈 카페, 마트, 공원, 놀이터를 들러서 집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다른 아이들은 어쩐지 잘 모르지만, 이 아이는 호기심이 왕성한 탓인지 태생적으로 외출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무튼, 지극히 활동적이다.
평소에도 저녁에 엄마, 아빠, 동생과 어울려 놀며 좀처럼 잠자리에 들려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도 밤 10시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등을 끄고 억지로 잠을 자게 하면 30분 정도는 혼자 뒤척거리다 겨우 잠이 든다.
잠을 제때 자지 않고 적게 자서 그럴까? 핸세는 태어날 때는 컸는데 지금은 키가 작은 편에 속한다. 안타까움에 아동 전문 한의원의 처방을 받아 약을 지어 보내기도 했다. 은근한 걱정을 낳는다.
7. 나름의 용기와 노력
내가 퇴근하면 아내와 나는 저녁을 먹고 집 근처 천변을 따라 걷기 운동을 하고 하루를 정리한다. 운동을 마치고 씻고 나서는 대체로 거의 매일 핸세 자매와 영상 통화나 일반 통화를 한다.
하루는 핸세가 “나 오늘 용기를 갖고 노력했어”라고 얘기했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봤더니 유치원에서 이단 미끄럼틀을 탔는데 높이가 있는 터라 처음엔 무서웠던 모양이다. 한데 다른 친구들이 선생님 지도하에 하나둘씩 미끄럼틀을 타자 핸세도 두려움을 뒤로하고 용기를 내어 도전해서 성공했다는 거였다. 선생님에게 “용기를 내서 해볼게요”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 나이에 노력이 가상하다. 물론 친구들과의 경쟁심리도 작용했겠지만 두려움을 극복해 내는 그 용기는 칭찬에 손색이 없다.
이제 핸세는 해보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한 도전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8. 혼자의 시간
어느 공간에서 혼자 놀이하는 시간이 있다. 그럴 땐 책을 보는 데 열중하거나 장난감 놀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엔 상황극(역할) 놀이가 추가되어 전화상으로도 한다. 여러 가지 장난감 요리기구를 놓고 “맛있게 만들어 줄게” 하면서 자기는 엄마가 되고 상대방은 아이 역할을 해달라고 한다. 자라면서 엄마는 거의 모든 일을 해주고 또 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핸세는 매번 엄마 역을 자처한다.
아기 상어 인형을 가지고 놀 때는 엄마와 아기 1인 2역이 되어 혼자 대화하고 중얼거리며 이야기를 엮어가기도 한다.
가정과 사회를 어느 정도 알고 체득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9. 꼬마 철학자
2024년 10월 초 딸 가족은 베트남 남부 휴양지 나트랑으로 여행을 갔다. 당시 오후 한나절, 숙소 근처를 산책하는 애들과 영상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핸세가 “할아버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요. 가을이 온 것 같아요.” 이렇게 날씨를 전하자, 다 들 그 표현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여행지역의 계절이 가을에 접어든 것인지, 아니면 순간적인 바람의 느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어른들은 꼬마 철학자 생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 말은 두고두고 우리 가족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는 ‘핸세의 명대사’로 꼽힌다.
어느 주말 아침, 아내 휴대폰이 울렸다. 핸세가 휴가로 내려와 있는 제 삼촌과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전화를 바꿔주자 대뜸 “삼촌, 현팔이라고 하지 말고 백설 공주라고 해”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제 삼촌이 평소 귀여운 조카를 사랑의 표현으로 '현팔'이라고 부르는 데서 나온 말이다. 요즘 핸세는 자기를 예쁜 백설 공주에 비유해 불러 주는 걸 좋아한다. 삼촌은 느닷없는 조카의 항의 전화에 그저 살가워 웃고만 있다.
다음 날, 우리 부부와 아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 몫으로 핸세 옷을 각 한 벌씩 인터넷에 주문했다.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저녁 무렵 딸 가족과 전화가 연결되었다. 그때 핸세는 상황극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린이날 선물을 샀다는 말을 전해 듣자 갑자기 “그럼 현팔이라고 해도 돼”라고 놀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안 들은 척 다 듣고 있었다는 거야! 뭐야, 속물근성 작렬인가? 사려가 깊은 건가?” 순간 가족 모두는 빵 터지고 말았다. 삼촌이 저를 예뻐하는 걸 알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선물을 받게 되니 기분이 좋아서 한 얘기일까. 꼬마 철학자의 그 깊은 속을 헤아리기 어렵다.
아이는 우주이고 자연이며,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
<남기고 싶은 말>
⋅모든 교육은 자연, 인간, 사물 이 세 가지 스승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이를 복종하는 존재로 만들지 말라.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라.
⋅서둘러 가르치지 말라. 아이의 본성과 성격을 관찰하라.
⋅관념은 이해 없이는 형성되지 않는다.
배움에는 반드시 수고가 필요하다.
⋅체험을 통해 얻은 것은 결코 잊지 않는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가르쳐라.
단란한 핸세네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