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명절이 되려면

명절증후군

by 최빛글

“왜 여성들은 명절 때 혹사당해야 할까?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인가? 아니면, 가정에서 주어진 의무인가?”

산업화와 더불어 도시화가 진행되고 핵가족이 되면서 명절과 제사의 의식 절차는 많이 간소화되고 그 의미 또한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도 명절 때가 되면 귀성으로 대이동이 시작되는 걸 보면, 그 풍습은 여전히 우리 가까이 끈끈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와 아내는 일명 ‘이름 없는 제사’를 지낸다. 토속적 민간 신앙에서 나온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그렇게 하면 자손들이 ‘복’을 받는다고 한다.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종교가 여럿 있다. 그런 면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예부터 내려오는 토속 의식을 답습하는 것은 상당한 비난의 대상일 수 있다. 심한 경우엔 미신을 믿는다고 치부하고 경멸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명절도 그렇고 제사의 전통적 풍습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다. 조상과 부모와 자식으로 연결된 혈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윗사람에 대한 존경이고 아랫사람에 대한 사랑이지, 우상숭배도 미신도 아니다. 종교와 다르다. 오랜 세월 동안 생활 속에 깊이 스며있는 하나의 ‘관습’이고 ‘문화’다.

한데, 진즉 고쳐져야 할 폐단이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다. 제사는 물론 명절이 되면 ‘음식 장만에서 상 차리기, 설거지’까지 온전히 여성들 몫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그 몫을 너무도 당연히 여성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잘못된 일이다. 우리 ‘문화의 결함’이고 ‘오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와 의식도 변한다. 명절과 제사 문화 역시 구태의연하고 불합리한 것은 버리고, 현실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해야 한다. 가족 모두가 편안하고 즐거운 의식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명절에는 늘 그렇듯 아내는 무척 바쁘고 힘들다. 음식 장만에서 설거지까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름 없는 제사를 지내니 부모님 댁에 가기 전에, 집에서 한 번 차례상을 차려야 한다. 그러니까 음식 장만과 상차림을 두 번 한다는 얘기다. 집에서 하는 상차림은 그나마 내가 도와줄 수 있고 양이 많지 않아 부담이 적은 편이다. 더구나 20여 년 전부터 우리 애들에게 좋다고 하여 스스로 지내온 터이다. 밝은 마음과 정성을 담는다.

아내와 나는 명절 2일 전 시장과 마트를 들린다. 부모님 댁과 집에서 만들 음식 재료를 사기 위해서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두부같이 요리할 때 바로 사용할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재료를 미리 손질하고 씻어 놓는다. 그래야 다음 날 아침 음식 장만이 빠르고, 시간도 절약된다.

명절 하루 전 아침이 되면 아내는 동태, 버섯, 어묵 전을 부친다. 나물은 대체로 시금치나 배추, 고사리, 콩나물이나 숙주를 한다. 밥을 짓고, 민어나 조기, 병어나 양태로 생선을 구우면서 탕국을 끓인다. 만들 음식은 다 된 셈이다. 아내가 음식을 하는 동안, 나는 찬물에 담가놓은 데친 시금치를 짜주거나 싱크대에 널린 그릇을 설거지한다. 그래야 공간이 확보되어 아내가 생각한 순서대로 요리하기에 편하다. 이제 사과와 배. 귤과 같은 과일을 씻고, 떡과 만든 음식을 접시에 담아내면 상차림 준비는 끝난다. 내가 미리 준비해 놓은 교자상에 정갈한 음식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서, 술을 따라 올리고 차례를 지낸다.

집에서 제사나 차례를 지낸 후 먹는 음식은 유난히 맛있다. 아내는 “00가 왔다 가서 음식이 맛있나 봐요.”라고 한다. 사실이다. 난 아내의 말에 지극히 공감한다.

이름 없는 제사는 나의 작은할아버지(할아버지의 동생)와 아내의 제자를 기린다. 작은할아버지는 불과 열두세 살에 또래 아이들의 괴롭힘과 질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내의 제자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불과 30대 초반의 나이에 몹쓸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제자 얘기는 직접 실제 겪은 일이다. 우리는 두 사람을 제자의 기일에 맞춰 지내고 명절엔 차례상을 차린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아내는 씻고 부모님 댁에 갈 준비를 한다. 집에서의 명절 일은 마무리되었지만, 하루의 본격적인 일과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부모님 댁은 자동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내가 사는 집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다. 처가댁도 비슷한 거리에 있고, 방향은 반대로 남쪽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양쪽 부모님의 중간 지점에 살고 있다.

우리는 전날 사다 놓은 물건을 챙겨 부모님 댁으로 갔다. 코로나 이후 추석과 설에는 오지 않았던 막내인 남동생 내외와 조카들이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와 있었다. 참고로 나는 2남 3녀 중 장남으로 맏이고, 그다음 여동생 셋, 막내인 남동생이 있다.

인사를 미처 나누기도 전에 어머니는 달걀이 없다고 하면서 마트에 다녀와야겠다고 했다. 그때 하필 솜털 같은 하얀 눈이 소록소록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동차를 타고 눈길을 조심해 가장 가까운 마트로 가서 확인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유정란 한판(30구)을 주문했지만, 만일을 몰라 두 판을 샀다.

제사나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한 달 전부터 준비하지만 정작 음식 장만할 날이 되면 항상 뭐가 빠졌다고 한다. 사전에 어머니와 아내는 각자 나눠 준비할 걸 의논하는데도 그렇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번거롭다. 한두 번이 아니다. 거의 매번 그렇다. 나는 살짝 눈치가 보이는데, 아내는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지혜롭게 말을 아낀다.


부모님 댁에서 상차림은 그 양과 종류가 상당하다. 산적은 단무지, 쪽파, 게맛살, 돼지고기 등을 하나씩 일일이 꼬챙이에 끼워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그다음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을 입혀 팬에 올려서 은근한 온도로 부쳐낸다. 산적이 10장 정도가 되면, 미리 물기를 빼놓은 동태로 전을 만들고, 송이버섯 전에 이어 애호박 위에 새우를 얹힌 새우 호박전도 부친다.

전의 종류가 세 가지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지론이다. 전 부침은 아내의 몫이고 제수씨가 거들어 준다. 아내와 제수씨는 상당히 키가 크고 체형도 비슷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단독주택 방바닥에서 쪼그리고 하는 일은 다리, 허리, 어깨에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하나의 ‘명절 후유증’으로 남는다.

전을 부치고 나면 1차 설거지와 청소가 이루어진다. 이것만이라도 나와 동생이 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둘은 부엌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나올 수밖에 없다. 남자가 부엌일 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어머니, 이를 알고 있는 아내와 제수씨에게 등 떠밀린다.

여기서 생각해 보자! 자식을 배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극히 감사하다. 하지만, 형제 부부가 함께한다면 서로 얘기하며 능률도 오르고, 시간도 절약된다. 여유가 생기니 중간중간 쉴 수 있어, 몸도 마음도 편해진다. 분위기도 좋고 명절 후유증이 줄어든다. 정말 좋은 모습이다. 어머니께서 꼭 알아주셔야 할 부분이고, 말씀드려 ‘행동으로 보여야 할 일’이다.


저녁 시간에 맞게 상을 차려 내기 위해 아내와 제수씨, 어머니는 쉴 틈 없이 나물을 데쳐 무치고, 생선을 찌고, 탕국을 끓이느라 분주하다. 명절 당일 작은아버지 식구, 외가 사촌, 동네 친척들이 인사 오면 대접할 음식을 만들다 보니 ‘양이 꽤 많다.’ 게다가 어머니는 농사가 상당했던 우리 집의 3남 3녀 중 큰 며느리여서 손이 크다, 만들어야 할 음식이 많아지게 되는 이유다. 아내는 결혼한 이래 35년째 묵묵히 이 일을 해오고 있다.

그런 아내의 의지를 나는 저버렸다. 아니, 오히려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전이 부쳐지자 어머니는 간단한 ‘다과상’을 내 왔다. 자연스레 술이 곁들여졌다. 적당히 한두 잔 하고 오손도손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술이 과해졌다. 동생과 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노래도 한 소절 불렀다. 아내와 제수씨, 어린 조카들에게까지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오후 4시경, 딸의 시댁에서 버스 편으로 전복을 보냈다는 연락이 와서 자동차를 움직일 일이 생겼다. 내가 술을 먹어 운전할 수 없으니 아내는 무척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된 것이 당연하다.

아내는 서둘러 음식 장만을 마무리했다. 이제 밥 짓는 일만 남아서 어머니와 제수씨에게 맡기고 전복을 찾으러 출발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고생한 아내가 운전해야 하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나 혼자 다녀와도 될 일이다. 그러면 아내도 하던 일을 천천히 마무리할 수 있고, 마음의 부담도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늦었다…….’

우리는 버스 터미널을 거쳐 처가에 한 상자 내려 주고 나머지 두 상자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각 하나씩 전달했다. 딸이 자주 뵙지 못하니 작은 아빠 하나 드리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나눴다.

해남에서 전복양식을 하는 사돈은 명절이면 전복을 세 상자 보내 주신다. 양 부모님이 계신 줄 알고 보내 주는 ‘배려의 선물’이다. 사돈께 ‘감사’ 드린다.

차례를 지내고 저녁 식사를 하며 아버지, 동생, 나 셋이서 반주를 또 했다. 취기가 돌았다. 식사 후 정리가 끝나자 집으로 돌아왔다. 고단함을 무릅쓰고 운전해야 하는 아내에게 거듭 ‘미안’했다.


명절 당일 이른 아침이다. 아내는 피곤한 내색도 없이 직접 운전하고 부모님 댁으로 갔다. 이젠 미안하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아내는 떡국을 끓이고 잡채를 볶아 나물과 함께 설날 아침상을 차렸다.

굴과 소고기를 넣고 간을 맞추며 끓여낸 떡국을 조카들은 맛있게 먹었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요리한 사람은 흐뭇해지기 마련이다. 아내도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세배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나는 아버지, 동생과 먼 곳에 있는 산소부터 차례로 성묘를 했다. 조금 쉬고 있으려니 점심때가 다 되어 작은아버지 식구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장남이고 남동생이 둘 있다. 큰 동생은 서울 살고 막내인 작은 동생은 근처에 산다. 그래서 제사나 명절에 오는 동생은 막내 작은아버지다. 거실에서 막내 작은아버지 식구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둘째 여동생 아들, 딸과 사위가 세배하러 왔다. 막내 작은아버지 식구는 일어나 어색해 머뭇거리고, 다른 사람들도 어쩔 줄 몰라 혼란한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나 내가 재빨리 정리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러자 아내가 부엌에서 나와 식사하던 사람은 계속하고, 둘째 여동생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가 세배하도록 자리를 정돈했다. 아내의 슬기로운 순발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부엌에서 식사하던 어머니, 아내, 제수씨와 조카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으나, 어머니와 아내는 이내 식사를 멈춰야 했다. 다과상을 차리기 위해서다. 둘째 여동생 아이들은 간단히 세배만 하고 일어서려 했지만, 어머니는 그냥 보낼 수 없다고 만류하셨다. 결국, 부엌에서 점심 먹고 있던 식구들은 식사가 제대로 되었을 리 없다. 나는 얼른 점심을 마치고 상 차리는 걸 도와 아이들에게 다과상을 내다 주었다.

여동생 아이들이 가고, 작은아버지 식구들도 떠나자, 제수씨는 친정에 가기 위해 준비했다. 몇몇 짐 챙기는 걸 도와준 뒤 동생네가 출발하자, 아내와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몹시 피곤해 처가에 갈 여력이 없다. 오늘은 쉬어야 한다.


명절 증후군은 육체와 정신적 피로, 압박감에서 온다. 반복되고 있는 지나친 허례 의식과 시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어른의 고정관념이 원인이다. 거기다 배우자인 남편을 포함한 남자들이 친구, 친척, 형제들과 벌이는 ‘만남과 음주문화’다. 남자들은 보통 ‘오랜만에 만나서’라고 핑계 대며 ‘혈연의 정, 학연, 지연을 다질 기회’로 정당화한다. 나 또한 대체로 지금껏 그랬다.

이번 설 명절에도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무엇을 도와줄 것인지 생각하고 배려하며 실천하는 행동보다, 동생과 술잔 나누기에 바빴다. 나처럼 행동하면 쫓겨날 일이다. 해당하는 남성들이 있다면, 반성에 그치지 말고 반드시 ‘고쳐서 바로잡아’야 한다. ‘마음의 각서’를 쓰는 것이 좋겠다.


아내와 나는 이번 명절을 기해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제사와 명절의 번거로운 고리를 끊어내기로 했다. 아내가 지혜를 짜내어 다음 네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음식의 간소화다. 마음의 정성이 중요하므로 평소 먹던 식단대로 준비한다. 서운한 감이 있다면 생전에 고인이 좋아하셨거나 명절 때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만 추가한다. 둘째, 제사 의식은 저녁 식사 시간에 절 두 차례와 구두로 간단히 드릴 말씀을 하도록 한다.

셋째. 모든 일은 상호 분담과 협동으로 한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 넷째, 손님은 다과상으로 대접한다. 과일과 차를 중심으로 정갈하게 차린다. 단,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은 우리 뜻을 반영하기 어려우므로 최대한 조율하도록 한다.

위 네 가지는 우리 부부가 집안 관례를 고려해 나름대로 결정한 것이다. 다른 이가 보기엔 번거로울 수 있다. 저마다 풍습이나 절차, 현 실정이 다 같을 수는 없으니 하는 말이다. 가정에서든 식당에서든, 식사하며 덕담 나누는 것도 좋을듯싶다. 가을철 산소 단장 작업(풀베기, 벌초) 후 간단한 의식으로 해도 된다. 방법은 여러 가지 많다. 중요한 건, 이젠 지나친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형식을 버리고 내용과 정성으로 챙겨야 할 때라는 것이다.

조상을 기리는 진정한 마음을 담으면 된다. 부담 없는 즐거운 명절과 행사가 되어야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다. 이것이 바로 옛것을, 우리 문화를 더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길이다.


<남겨주고 싶은 말>

⋅나이가 60이다 70이다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이 늙었다, 젊었다 할 수 없다.

늙고 젊은것은 그 사람의 신념이 늙었느냐, 젊었느냐에 있다. (맥아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헬렌 켈러)

⋅인생에 뜻을 세우는 데 있어 늦은 때는 없다. (볼드윈)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바그너)

⋅마음에 뜻을 지닌 사람이야말로 행복하다. (쉴러)



하트를 그리다 달팽이로 변형.jpg

하트를 그리다 달팽이를 그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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