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흔적

묻어나는 행복

by 최빛글

우리는 주변에 흩어져 있는 소소한 일에서 때론 행복을 느끼며 산다. 특히,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엔 더없이 흐뭇하다. 일상의 언저리에서 묻어나는 순간의 뿌듯함이 삶의 기쁨이요, 보람으로 남기도 한다. 아들이 휴가를 얻어 집에 내려왔을 때 생긴 일이다.


“아, 아, 아!” 비명에 깜짝 놀란 나는 아들이 휴가로 내려와 쉬고 있는 문간방으로 뛰어갔다. 현관에서 가장 가깝고 거실에서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방이다. 침대 머리맡에 무심코 기댔는데 침대의 머리 부분이 ‘툭’하고 탈락하자 순간 깜짝 놀란 모양이다. 이전에도 기대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침대 머리가 본체에서 떨어져 버린 바로 그 나무 침대였다. “드디어 또, 고장이 났군.” 나는 아들을 안심시키며 방바닥에 뒹굴고 있는 나사못을 주워 들고 침대 머리의 나사못이 들어갈 구멍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구멍 주변은 처음 침대 머리가 빠졌을 때, 내가 혼자 고쳐보려고 씨름했던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흠집으로 얼룩져 있고, 심지어 구멍 안에는 쪼개진 칼블럭 (나사못을 고정할 때 사용하는 플라스틱 못 집) 조각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당시 내가 구멍과 맞지 않는 지나치게 큰 칼블럭을 억지로 쑤셔 넣었고, 전동드릴 사용이 너무 서툴러 망치질을 했던 탓이다. 망치질은 전동드릴을 조작하다 나사못 머리가 둥그렇게 파여 더는 드릴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생각해 낸 궁여지책이다.

아무튼, 기계치에 가까운 내가 혼자 작업하느라 나사못이 불안하게 고정된 상태로 작업을 마무리해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저녁이나마 침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보기 위해 애를 썼다. 아들과 함께 망치를 이용해 서로 침대 머리와 본체 부분을 맞들면서 나사못을 고정해 끼워보았다. 간절한 몇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넓어진 침대 머리 구멍과 칼블럭 조각이 붙어 있는 나사못을 고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번 집을 옮기면서 낡았지만 멀쩡하게 작동하는 전동드릴을 쓰레기 처리한 것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나는 침대 고치는 일을 내일로 미뤄야 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아들이 오랜만에 쉬러 집에 왔는데 거실에서 잠을 재우게 된 까닭이다. 알다시피 방이 아닌 거실은 잠을 자는데 좋은 장소가 아니다. 화장실과 냉장고 기타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과 시설들이 있어 수시로 가족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더구나 아들은 어려서부터 잠귀가 무척이나 밝다. 잠을 설치고 여독이 풀리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 집은 방이 세 개인 아파트다. 나는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은 코골이가 좀 심한 편이고, 아내는 요 며칠 이런저런 일로 잠을 못 잔 터이다. 이를 아는 아들은 스스로 거실을 선택했다. 내 방에서 자라고 몇 번 얘기했지만, 나의 코골이를 핑계로 극구 사양하며 거실에 자리를 폈다, 엄마, 아빠에 대한 ‘사랑’이고, 내일도 직장에 나가야 하는 아비를 배려한 ‘마음 씀씀이’다. 어느덧 듬직한 어른으로 성장해 있었다. ‘벅차고 뿌듯했다.’ 안타까움과 흡족한 마음이 교차하며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내일 아침엔 서둘러 침대를 고쳐야겠다. 아들의 좀 더 ‘편안한 잠자리와 휴가’를 위해서 말이다. 이런 생각으로 잠을 청하려 눕자, 새삼 아들이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사진첩을 보듯 되살아났다.

아들은 지금의 건강한 직장인이 되기까지 어려운 과정이 몇 번 있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생생한 건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기흉’을 앓았을 때다. 두 차례 수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강한 의지와 신념으로 극복했다. 그때의 힘들었던 장면과 내 일기장이 겹쳐지며 하나씩 펼쳐졌다.

『 1. 숨이 가쁘고 가슴이 아프다.

잦은 통증과 답답함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슴을 수술하고 완쾌한 지 불과 보름 남짓.

단단한 몸을 만들려고 애쓴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른 가슴 한쪽이 너무 아프다. 문제가 생겼다.

아들은 허공만 응시한 채 말이 없다.

온 세상이 입을 다물어 버린 듯 침묵이 너무 깊다.

불안하다. 돌덩이나 짐짝을 끌어안은 마음이다.


2. 다음날 서둘러 병원에 갔다.

담당 의사가 또 수술 판정을 내렸다.

다시 한번 고비를 넘어야 한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것이 유난히 길어 걱정된다.

수술 후 통증은 더더욱 기억하기 싫다.


이전 치료과정을 떠올리며 전율하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져 온다.

삶의 어느 갈피에서 나도 한 번은 꼭 겪고 넘어야 할 고개인가.

3.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러나 두려움과 함께 오는 복잡한 감정은 쉬 떨칠 수 없다.

병실 창문 틈을 파고드는 한 줄기 햇살을 바라보며

또 한 번 각오를 새롭게 하고 의지를 다진다.


안쓰럽다 못해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옆에 앉아있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아들. 순간 울컥했다.

밝은 빛으로 정신을 가다듬는다.

뒤덮고 있는 검은 구름 떼를 간절한 소망으로 벗겨낸다.

4. 걱정과 우려 끝에 다행히 두 번째 수술이 잘 되었다.

한 달은 재활에 신경 써야 할 듯싶다.

미래를 준비할 소중한 시간들이 가슴 통증에 발목이 잡혔다.

불안한 무게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하지만 건강이 우선이다. 이겨낼 수 있다.

빨리 회복하고 해야 할 일을 다듬어야 한다.

‘건강의 중요함을 깨닫고 실천하는 기회’가 되었음을

감사하자고 스스로 위안하고 다짐해 본다.

대신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고통에 뭐라 말할 수 없다.

살아가면서 부모는 자식에게 못 해줬던 미안함만 남는다더니 내가 지금 그렇다. 고비고비 어려울 삶의 무게, 고된 시간 들. 그 사이사이 살짝 스며들어 힘이 되어 주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나는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튿날, 회사에 나가 아침 일을 일찍 마치고 직장동료들에게 어제의 침대 상황을 얘기하며 도움을 구했다. 참고로 내가 다니는 회사는 건물 관리와 비슷해 이와 관련된 기술자가 상당히 있다. 그중 경험이 많은 동료가 ‘나무 침대이니 길이가 더 긴 나사못을 박아 보라’고 하며, 두 가지 크기의 나사못과 전동드릴을 친히 건네주었다.


회사와 집은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다. 난 잠시 외출해 집으로 향했다. 아들과 나는 서로 맞들며 침대 머리와 틀 본체를 지난번보다 훨씬 더 튼튼하게 제대로 고정했다. ‘아들이 있었기에, 함께였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음 지었다.

아들은 이제부터 편안히 쉬면서 휴가를 보낼 수 있다. 내 마음도 포근하고 흐뭇하다. 사랑과 따뜻한 정이 오가면서 행복의 흔적이 온 집안에 묻어났다. 그것은 나의 기쁨과 이 되고, 아들이 푸른 나무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남기고 싶은 말〉

⋅가족들은 서로 하나로 맺어져 있다는 것 그것이 진정 이 세상에 유일한 행복이다. (마리 퀴리)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은 즐겁고 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더 가치 있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법정 스님)

⋅희망은 갈망하고 추구하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J. 플래처)

⋅행복은 희망만 있으면 싹이 튼다. (괴테)

엄먀 물고기와 아기 물고기의 뽀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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