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감정의 조개껍데기 #003,
내가 혼자 즐기는 취미 중, 겉은 조용하고 속은 시끄러운, 그러니까 '겉조속시' 취미는 단연코 러닝이다.
기록도 재보고 싶고, 여러 사람과 함께 달리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서, 이번에는 큰맘 먹고 마라톤 대회에 신청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여럿 모이는 대회를 좋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서, 나로서는 꽤나 용기 낸 선택이었다.
혼자 스트레칭을 하고, 물품을 맡기고, 틈틈이 사람 구경도 했다. (특히 요즘 러너들은 어떤 옷을 입고 뛰는지 궁금해서 유심히 살폈다.)
혼자 나름 만족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대회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EDM 음악이 빵빵 울리고, 사회자는 끊임없이 화이팅을 유도하고 포토존에서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 모든 것이 좋으면서도, 동시에 내겐 살짝 버거웠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과열된 에너지에 살짝 어지러워지는 느낌. 나는 그저 숨을 고르며 조용히 뛰고 싶었을 뿐인데, 주변의 응원과 음악 소리에 괜히 내 존재가 더 커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뛰는 동안 문득 상상했다.
'내향인 마라톤' 같은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참가 조건은 오직 1인 참가. '친구랑 같이' 같은 것은 불가. 반드시 혼자 와야 한다. 장내에는 "수고했어, 오늘도" 같은 잔잔한 음악만 흐르고, 도우미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고, 조용히 응원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당신의 리듬을 믿어요", "지금도 충분히 좋아요", "누구보다 아름다운 속도" 같은 문구를 적어서.)
격한 환호 대신, 포근한 미소와 따뜻한 손짓만. 코스 중간중간에도 자원봉사자들이 조용히 서서 눈빛으로만 응원해 준다. 결승선에 도착하면 웅장한 음악 대신, 조용히 꽃 한 송이를 건네는 피날레. 완주 기념품은 무소음 키보드, 프리미엄 드립백 커피세트, 아늑한 조명, 소리가 맑은 칼림바 같은 것들.
마이크 대신 작은 종이쪽지에 '수고했어요'라고 적힌 메모가 함께 따라온다.
상상만 해도 너무 웃기고, 사랑스럽다.
오롯이 혼자, 나의 호흡과 리듬만 느끼며 뛰는 마라톤.
그런 마라톤이라면 매년 출전할 텐데.
결국 오늘 나는, 수많은 화이팅 속에서도 나만의 속도로, 내 안의 작은 리듬을 믿으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굳이 대회가 '내향인 마라톤'이 아니어도 나는 혼자 뛰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