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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Dec 14. 2021

그리울 땐

그리워하면 안 되나...

좋아하는 게
노를 젓지 않고도 마음이 움직여
바다를 건너 섬에 안착하는 거라면,

사랑하는 건
눈동자에 물감 한 통이 통째로 주입되어
시야와 감정 모두가 그 색으로 물들어
빠지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겠다.

-김이나의 '보통의 언어들' 중에서-



사랑에 빠지면 세상 모든 것이 예뻐 보인다. 늘 떠 있던 구름이 솜사탕처럼 보여 한 입 베어 물고도 싶고, 그저 부는구나 했던 바람에 마음이 이리로 저리로 살랑살랑 흔들리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랑의 감정도 함께 무뎌지고 옅어지겠지, 당연히 그렇겠지 생각했었다.


인간 냄새나는 드라마, 판타지가 아닌 현실 같은 드라마, 하지만 현실보다 예쁜 드라마.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특히 좋았던 드라마가 '디어 마이 프렌즈'였다. 사랑에 나이는 없다고, 언제 찾아오든 늘 설레고 예쁜 선물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마음은 왜 나이를 먹지 않을까? 설렘은 왜 늙지 않을까?

삶의 끝을 바라보며 다시 만난 성재 아저씨와 희자 이모의 로맨스는 20대의 사랑 못지않게 알콩달콩하다. 젊은 청춘들의 가슴 쿵쾅거리는 설렘은 아니겠지만, 노을을 바라보며 마주 잡는 두 손에 잔잔한 설렘이 느껴졌다. 내 눈에만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콩깍지도 여전하다. 세월과 함께 찾아온 희자 이모의 치매도 기꺼이 안아주는 성재 아저씨의 사랑은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연하의 사고로 사랑을 끝내야 했던 완이는, 아무리 울어도 그 마음이 마르지 않아서 아프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사랑은 끝내도 목소리는 듣고 싶고, 만날 순 없어도 얼굴은 보고 싶은 완이는, 연하를 지울 수도 그릴 수도 없다. 돌아가겠다는 말도,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도 할 수가 없다. 말을 뱉으면 영영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아서, 못 보면  죽을 것만 같아서...


연하는 그런 완이에게 사랑한다고 한다. 네가 그립다고, 이제는 걸을 수 없는 자신의 다리가 그립다고,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립다고 이야기한다.

돌아오라는 것도 기다리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한다고... 그냥 그렇다고... 그리울 땐 그리워하면 안 되냐고. 그리운데 그리워할 수가 없으니, 얘기하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자신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다고.


연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어쩌자는 건 아니지만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소진시키는 것 말고는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서로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쌓아간 감정과 시간을 모두 비워내어야 사랑은 끝나니까. 그동안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사랑을 보내면서 그 정도 정성은 들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영원 이모는 유부남을 사랑한 죄로 평생을 그리움으로 아파해야 했다. 모르고 시작한 사랑이어도 죄니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해 몇십 년을 그리워했다. 부인과 이혼을 하고도 차마 돌아가지 못하고 그리워만 한 그도 혹독한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마지막으로 영원 이모를 만나려고 왔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랑도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걸까? 상태가 호전되어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영원 이모의 첫사랑.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살고 싶어 졌는지 모르겠다. 그 마음에 암세포도 한풀 꺾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를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예전에는 못 던 사랑들이 보여서 새롭고 좋았다.

친구 간의 사랑, 남녀 간의 사랑, 이루어지지 못한 옛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사람이 있는 곳엔 어디에나 사랑이 있었다. 이렇게 사랑이 많으니 그렇게 많이 노래해도, 글을 써도, 드라마로 만들어도 이야기가 마르지 않나보다.


사랑은 참 신기하다.

사랑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마법을 부린다.

그래서 사랑이 예쁜가보다. 

그래서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가보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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