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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Feb 11. 2022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

옷소매 붉은 끝동

"내가 너를 연모한다"


왕이 사랑했듯이 그녀도 그를 사랑했다.

온전히 그녀로 살기를 바랐지만, 그만의 사람이 되어달라는 손을 잡은 것 또한 그녀의 선택이었다.


다시 보기 줄거리에 적힌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라는 문 평범하지 않은 한 남자를 사랑했던 그녀의 아픔을 담고 있는 듯하다. 한 남자의 여인이 아닌, 왕의 여자 사는 삶도 행복했을까.


그 시대의 수많은 여인들이 자신의 삶선택할 수 없었다. 더구나 궁녀의 삶이란 모시는 분에게 변이 생겨 쫓겨나거나 죽어서나 궁 밖을 나올 수 있었다. 운 좋게 왕의 여인이 된다고 한들 그 삶답답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족쇄를 차고 있는 기분이 아닐까.


세상을 떠난 선왕의 비는 궁궐을 화려한 감옥이라 했다. 자식도 친구도 남편도 없는 궁에서 아홉 개의 굳건한 문에 갇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그녀는 지독하게 외로웠고, 쓸쓸했다. 구중궁궐 그런 의미이기도 하구나.  정원에 피어있는 이 아무리 화려한 들, 넓은 들판의 꽃보다 자유로울까. 그런 그녀였기에 덕임을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진심으로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다.



"원한 적 없습니다. 빈으로 사는 삶을.

원하지 않는 삶을 가졌다고 의무까지 다해야 합니까."


후궁이 되어 왕의 곁에 있을 수는 있지만, 어린 자식을 앞세우고 동무들과도 더는 우정을 쌓을 수 없게 된 덕임은 생기 잃은 꽃처럼 시들어갔다. 환한 웃음도 간절한 바람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눈동자공허해 보였다. 자신의 삶을 이제 더는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그녀는 그렇게 향기를 잃어갔다.


"다음 생에는

본 척 그냥 지나가시옵소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왕이었고,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의 곁에 남은 것도 그녀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다음 생에는 옷깃만 스쳐 지나가 달라는 말을 남기고 왕의 곁을 떠다.


사랑을 외면하는 고통보다 그녀의 삶을 잃어버린 고통이 더 던 덕임은 짧은 생을 마감다.

동무들 곁에서 햇볕도 비바람도 차가운 눈도 함께 맞으며 살아갔다면 , 아프긴 해도 생기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 텐데... 덕임이 눈 감는 순간 마지막으로 보고 이가 동무들인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삶의 일부일 때는 행복하지만, 삶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일도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없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빈이 된 후, 더는 동무들과 함께할 수 없어 눈물짓던 그녀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마치 소녀를 떠나보내는 수많은  덕임들의 마음 같아서 슬펐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사랑스러운 과거의 나와 작별하는 그 마음이 뭔지 짐작이 되어서 코끝이 시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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