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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Oct 30. 2022

학교 구역 내 총기 소지가 통상과 관련이 있는가

학교 구역 내 총기 소지를 연방이 규제하다


 <미국 v. 로페스 (1995)> 사건이다.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미국의 총기 문제부터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초기 미국을 상징하는 장면 중에 ‘서부의 총잡이’가 있다. '성조기여 영원하라'라는 국가의 가사에도 로켓과 폭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 남북전쟁, 서부 개척 등 총과 함께 역사가 시작되고 발전한 국가라고 흔히 말한다. 미국 헌법마저 제2조에서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보장할 만큼 총기는 미국인에게 각별한 물건이다. 헌법 제2조는 그간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가 민병대를 규율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해석되어 왔으나, 연방대법원은 2008년 <D.C. v. 헬러> 사건에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판결하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발생한다는 총기 사고 문제로 총기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지만, 이런 역사적인 맥락과 헌법 정신,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주는 회원 수가 약 500만 명이 넘는 국가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 막상 보면 여전히 높은 총기에 대한 규제 반대 여론 등의 현실 때문에 미국에서의 총기 규제는 계속 숙제로 남는다.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보장한 헌법을 고치지 않는 한 총기 소지 자체를 금할 수는 없고, 공공장소 등에서의 휴대 등을 규제할 필요가 있는데 이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2022년 6월 연방 상ㆍ하원을 통과한 연방총기규제법으로 인해 그나마 상황은 일부 개선될 수 있지만, 이 법은 물론 총기 소지를 근본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아니고, 총기를 위험하게 사용할 잠재성이 있는 사람의 총기 소지를 법원 판결 등을 통해 한시적으로 제한하는 레드 플래그(Red Flag) 법을 시행하는 주에 대한 자금 지원, 21세 이하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 강화 및 최소 10일간의 정신 감정, 학교의 안전 및 정신건강 서비스 자금 지원 등을 내용으로 한다. 역시 주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연방 차원의 제대로 된 전국적인 총기에 대한 규제 법률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 중에는 역시 연방과 주의 권한 관계도 한몫을 한다. 



수정헌법 제2조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범죄가 통상에 영향을 끼치는가


 다시 <미국 v. 로페스> 사건으로 돌아간다. 1990년에 제정된 연방법인 총기금지학교구역법(Gun Free School Zone Act) 어떤 개인이 학교 구역이라는 것을 알거나 그렇게 믿을 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학교 구역에서 고의로 총기를 소지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1992년에 텍사스주의 산 안토니오에 위치한 에디슨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알폰소 로페스 주니어는 탄약통과 함께 38구경 권총을 장전하지 않은 상태로 숨긴 채 학교에 들어왔다. 학교 당국은 로페스가 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제보를 입수했고 그를 불러 조사했다. 조사과정에서 로페즈는 총을 소지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했고 그 대가를 받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조사를 받고 나서 로페스는 학교에서의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텍사스주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형사입건이 되었다. 이후 연방정부가 총기금지학교구역법 위반 혐의로 사건을 접수함에 따라, 주정부에 접수된 사건은 해소되었다.


 로페스는 총기금지학교구역법의 해당 조항은 통상 조항에 근거한 연방의회의 규율 범위를 벗어난 조항이라는 이유로 본 법에 의해 자신을 처벌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학교구역에서의 총기 소지를 금지한 해당 법 조항을 주간 통상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규율하는 연방의회의 적법한 권한 행사로 보았다. 재판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교육사업은 주간 통상에 영향을 끼친다고 하면서 로페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로페스는 항소하였고, 항소법원은 로페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본 법의 해당 조항은 통상과의 관련성이 없어서 통상 조항에 근거한 적법한 입법으로 볼 수 없다고 하면서 1심 법원의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항소법원은 법률을 개정하여 주간 통상과의 관련성에 관한 요건을 법률에 반영할 것을 제안하였다. 연방정부는 이에 불복하였고 사건은 연방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연방정부는 총기의 매매 및 총기와 관련된 행위는 주간 통상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학교와 같이 교육과 관련된 장소에서 총기를 소지하는 것은 폭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게 되고, 이는 일반적인 경제적 조건에 영향을 끼친다는 논리를 펼쳤다. 즉, 폭력이 범죄 피해를 유발하여 보험료 등 그에 따른 비용을 증가시키는 데 그 영향은 경제 전역에 걸쳐 전파될 뿐만 아니라, 안전하지 못하다고 인식된 지역으로 여행하려는 의지를 약하게 하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또한 연방정부는 학교 구역 내 무기의 존재가 이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을 동요하게 만들어 학습을 방해하고, 교육이 경제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다시 이는 국가 경제를 약하게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범죄와 통상 간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연방정부의 논리는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총기 소지에 따른 실제 범죄의 발생, 또는 잠재적 범죄의 위험성은 치안 불안을 야기하여 치안 비용, 여행 등과 관련된 경제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악영향을 주는데, 사람의 경제 및 통상 행위는 일정한 지식수준에 의해 영향을 받으므로 교육은 경제 및 통상과 관련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즉, 학교 구역에서의 잠재적 범죄의 위험성으로 인해 교육활동이 방해받는다면 이는 결국 경제 및 통상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학교 구역에서의 총기 소지도 교육을 매개체로 하여 통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9명의 대법관  5명의 찬성에 의해 로페스의 손을 들어주며 총기금지학교구역법의 해당 조항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항소법원의 판결을 확정하였다연방의회가 통상 조항에 근거한 광범위한 입법 권한을 갖고 있지만, 통상 조항을 근거로 학교 구역에서의 총기 소지를 연방이 금지하는 것을 인정할 정도로 ‘통상’의 개념이 확장되지는 않는다 하였다연방대법원은  사안은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규율할  있는 3가지 범주   번째와  번째 범주 통상의 경로  통상의 매체와는 무관하므 번째 범주인 '주간 통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면서, ‘총기 소지 가장 넓은 정의에 의해서도 결코 통상적 행위 해당하지 않는 보았다학교에서의 총기 소지로 인한 범죄의 위험성이 그 자체가 통상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통상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연방정부 주장을 물리친 것이다연방정부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기도 하지만이런 식이면 세상에 관련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를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방대법원은 이점을 지적하면서만약 연방의회가 통상과 매우 동떨어진 사항을 규율할  있다면  어떤 것도  규율할  있게 되는데연방헌법은 연방의회를 '명시된 권한'만을 행사하는 기구로 명확하게 설정하였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연방대법원은 연방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이는 결국 통상 조항에 근거한 연방의회의 권한이 주가 보유한 일반적인 “경찰권 되어 버리는 결과 된다고 보았다. 총기금지학교구역법이 학교 구역 내에서의 총기 소지를 규제하면서 통상과의 관련성이 있는 상황으로 제한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상 조항에 근거한 연방의회의 적법한 입법으로 인정할 수 없었고, 로페스의 행위가 달리 주간 통상과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결국 연방대법원은 로페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연방의회는 1995년에 법을 개정하여, 각각의 사건에서 총기가 주간 또는 외국과의 통상 과정에서 유통되었거나 통상에 영향을 끼쳤음을 입증하도록 하는 부가 요건을 포함하였고, 이후 다른 소송에서 개정법은 헌법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범죄에 관한 규율은 주의 권한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폭행, 총격을 비롯하여 일반적인 범죄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규율은 기본적으로 주의 권한 사항이다. 연방정부가 범죄를 규율하려면, 연방의 이익과 관련되거나 연방의 관할구역에서 발생하는 등 연방 형법에서 제시한 범죄에 해당해야 한다.

             


<연방 형법상(미국 법전 제18편) 범죄 예시>


1. 미합중국의 특별 해양 및 영토 관할구역에서의 항공기에 대한, 또는 주간ㆍ해외ㆍ외국의 항공 통상에 

   사용되는 민간 항공기에 대한 방화, 파괴, 손상, 불능화 등의 행위


2. 미합중국의 법률에 의해 보호구역, 피난지, 번식지로 분류된 부지에서의 조류, 어류, 야생동물 등에 대한 

   사냥, 포획, 살상 등의 행위


3. 공무수행 중이거나 공무수행을 이유로 한 미합중국 공무원에 대한 폭행, 협박, 방해 등의 행위


4. 다른 주에 거주하는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1년 이상 이행하지 않거나, 부양료를 5,000달러 이상 

    지급하지 않은 경우


5. 미합중국의 증권 등에 대한 사기 목적의 위조, 변조 등의 행위


6. 어떤 사람이 주간 또는 외국과의 통상에서 수송되거나, 미합중국의 해상ㆍ영토ㆍ항공 관할 구역에 있거나,

    외국의 공무원이나 국제적으로 보호되는 사람이거나, 연방 공무원이 공무수행 중일 때 그 사람에 대한 

    감금, 유괴 등의 행위


7. 미합중국의 특별 해양 및 영토 관할구역, 미합중국 정부가 소유하는 건물 등에서 외설스러운 시각적 묘사

   물을 고의로 판매하거나 소유하는 행위, 미합중국의 특별 해양 및 영토 관할구역, 연방 교도소, 연방 기관

   장의 지시 등에 따라 구금하는 시설 등에서 다른 사람을 위협하여 성적 행위를 하도록 하는 행위


8. 미합중국에 대해 전쟁을 개시하거나 적을 지원하는 행위, 공해에서의 해적 행위, 미합중국 밖에서 

   고문을 시도하거나 시행하는 행위



 주는 물론 통상과의 관련성을 따질 필요가 없이 위와 유사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 일례로 뉴욕주 의회는 2022년 6월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의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뉴욕주는 원래 1913년에 제정한 자체 총기규제법에서 집 밖에서의 총기 소지를 금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2022년 6월 연방대법원에 의해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보장한 연방헌법에 어긋난 것으로 판결이 났고,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위와 같은 법안을 다시 추진한 것이다. 


 총기 규제도 역시 기본적으로 주의 권한 사항이지만, 통상 조항을 근거로 연방도 과거에 법을 제정하기는 하였다. 일례로, 총격에 의한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1968년의 총기규제법(Gun Control Act)은 허가받은 업체를 제외하고 주 경계선을 넘는 총기의 이전을 일반적으로 금지하였다. 그러나, 연방의회의 주간 통상에 대한 규율이 헌법상의 원리인 것과 마찬가지로 헌법에 연방의 권한으로 명시된 권한 외에는 주와 국민의 권한이라는 점 또한 헌법상의 원리이기 때문에 연방 차원의 적극적 규제에는 한계가 있고, 더욱 근본적인 한계는 무기를 소지할 권리에 대한 옹호가 헌법정신이자 아직은 미국인의 정신이라는 점이다. 





꼬리를 물어 통상에 연결할 수는 없다


 이전의 사안과 달리 본 사안에서 총기 소지 행위의 주간 통상에 대한 영향은 실질적인 영향이라고 볼 수 없다. 연방정부의 주장처럼 학교 구역에서의 총기 소지를 규제하지 않음에 따라 안전하지 못하다고 인식된 지역으로의 여행이 위축될 수도 있지만, 흑인의 투숙을 금지하는 숙박시설이 있는 지역으로 흑인이 여행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과 같은 합리성은 인정하기 어렵다. 연방대법원은 학교에서의 총기 범죄가 교육에 영향을 끼치고 교육이 통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방정부의 주장처럼 통상에 대한 미약한 영향을 끼치는 비경제적 행위까지 연방헌법의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규율하는 것은 연방의회에 부여한 통상 권한의 범위를 초과했다고 보았다. 즉 연방정부가 교육을 매개로 통상에 대한 영향을 주장한 것은 꼬리를 물어 결국 통상에 대한 영향이 있다는 무리한 연결을 시도한 것이다. 





경제적 행위 여부가 중요한가


 통상 조항에 근거한 연방의회의 규율을 인정한 이전의 사례들은 제품의 생산이나 밀의 재배와 같이 규율되는 행위가 통상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경제적 속성을 갖는 행위였다. 그러나 총기 소지 행위는 통상에 대한 영향을 인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행위 자체를 경제적 행위로 인정하기 어렵다. 이 점이 연방대법원이 총기금지학교구역법의 해당 조항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보는 데 일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된다. 행위 자체의 속성이 경제적인지 여부는 다음의 <미국 v. 모리슨> 사건에서도 중요하게 고려되었지만, 이후 세 가지 사건에서는 의미가 없게 되었다. 연방이 어떠한 행위를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규율하려는 목적이 주간 통상에 대한 영향을 통제하려는 것이라면, 행위의 속성이 경제적인지 여부를 중요한 요소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간 통상에 영향을 끼친다면 비록 비경제적인 행위라도 규율할 필요가 있고, 주간 통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비록 경제적 행위라도 규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행위의 속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규율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된다는 비판이 가능하나, 이는 통상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 여부로 걸러내면 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마지막 사례인 <미국 v. 힐 (2019)>에서 좀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총기금지학교구역법 관련 조항>

[미국 법전 제18편 922조] 불법행위

(q)(2)(A) 


(수정전) 1990년

누구라도 학교 구역인 것을 알거나 그렇게 믿을 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장소에서 고의로 화기를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다


(수정 후) 1995년

누구라도 학교 구역인 것을 알거나 그렇게 믿을 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장소에서 고의로 각 주 상호 간의 또는 외국과의 통상 과정에서 유통되거나 달리 이러한 통상에 영향을 끼치는 화기를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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