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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Oct 30. 2022

성범죄가 통상과 관련이 있는가

성폭행에 대해 주가 아닌 연방에 구제 신청을 하다


 <미국 v. 모리슨 (2000)> 사건이다1994년 연방의회는 여성폭력방지법(Violence Aganist Women Act)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률은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이 발의한 것으로, 성적 동기에 의한 범죄의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공소가 주법원에 제기되지 않더라도 피해자는 손해배상 등 민사적 구제 소송을 연방법원에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1994년 버지니아 공대의 신입 여대생이었던 크리스티 브르존칼라는 같은 학교 학생인 안토니오 모리슨과 제임스 크로퍼드에 의해 폭행과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애초에는 모리슨과 크로퍼드의 기숙사를 방문했고 거기에서 그들이 그녀를 공격했다고 하였으나, 나중에 그녀의 기숙사에서 공격당했고 사건 발생일까지 그들을 만난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녀의 주장에 대하여 학교 측이 진행한 소명 절차에서, 모리슨은 그녀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서로 합의하였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학교 측은 모리슨에게 정학 처분의 징계를 내렸으나, 알리바이를 증명한 크로퍼드는 징계를 면했다. 모리슨에 대한 정학 처분도 이후 과도한 징계로 인정되어 무효가 되었다. 모리슨과 크로퍼드의 유죄를 인정할 충분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서 두 남학생은 주법원에 의해 처벌되지 않았다. 이에 브르존칼라는 여성폭력방지법에 따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연방정부도 여성폭력방지법의 해당 조항이 헌법에 부합한다는 점을 방어하기 위해 소송에 참여하였다.


  성범죄를 포함한 범죄에 관한 규율은 주의 소관 사항이라는 점에서 연방지방법원은 연방의회가 상기 법 조항을 제정할 권한이 없다고 판시하였으나, 3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항소법원의 패널은 지방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그러나 항소법원 전원합의체는 패널의 판결을 다시 뒤집고 여성폭력방지법에서 연방법원에 손해배상 등을 위한 민사적 구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지방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였다. 이후 연방대법원은 재판관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당시 클린턴 정부 및 여러 여권주의 단체의 지원을 등에 업고 소송에 임했던 브르존칼라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성적 동기 범죄의 피해자에게  주법원이 아닌 연방법원에 민사적 구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여성폭력방지법의 해당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최종적으로 판결하였다. 연방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연방의회가 연방헌법의 통상 권한이나 평등 보호 원칙에 근거하여 해당 조항을 제정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통상과 연계시킬 수는 없다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의 결과는 총기금지학교구역법의 관련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한 <미국 v. 로페스> 판결에 근거한다고 하였다. 연방대법원은 전국적인 사항과 지역적인 사항 간의 구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연방헌법에서 연방은 명시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점을 강조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 v. 로페스> 판결은 비록 꼬리를 물면 통상에 대한 영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성이 경제적이지 않은 행위에 대해 연방의회가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규율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통상 조항을 원용할 수 있는 경우를 3가지 범주로 제한하였다. 본 사안도 로페스 판결에서 제시한 범주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범주, 즉 주간 통상의 ‘경로’와 주간 통상에 사용된 ‘매체’의 규율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세 번째 범주인 ‘주간 통상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 여부를 기준으로 그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연방정부는 본 사안과 같은 여성에 대한 성적 동기의 폭력행위를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주간 통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였지만, 연방대법원은 여성폭력방지법이 규율하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주간 통상에 실질적인 영향이 아닌 미약한 영향만을 끼친다고 판단하였다. 여기에서 ‘미약한’ 영향은 개인용 밀 재배와 관련된 필번 사례 등에서 '수많은 사람의 동일한 행위가 누적되면 주간 통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경우 개별적으로는 영향이 사소한 행위도 연방이 규율할 수 있다'라고 말할 때, 그 ‘사소한’ 영향과는 구분해야 한다. 필번 사례 등에서의 사소한 영향은 수적으로 사소할 뿐, 동일한 행위가 누적되면 주간 통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지만, 본 사안에서의 ‘미약한’ 영향은 그것이 누적되어도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는 그러한 영향을 의미한다. 연방대법원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통상에 대해 끼치는 영향은 미약하기 때문에, - 즉, 어떤 범죄 행위도 따지고 보면 주간 통상에 미약한 영향이라도 끼칠 수 있는데, 본 사안에서의 영향도 그러한 영향에 불과하기 때문에 - 개별적 행위가 아닌 그러한 행위의 종합을 고려하여 통상에 대한 영향을 판단한다는 ‘종합 원칙’ 내지 ‘누적 효과’는 본 사안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누적 효과를 고려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별적 행위가 수적으로 사소하더라도 수를 증가시키면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인정될 수 있을 만큼 유의미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





연방이 주의 경찰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연방대법원은 통상 조항에 근거한 연방의회의 규율 권한은 이중적인 정부 구조인 연방 체제의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너무 거리가 먼 영향까지 인정하도록 그 인정 범위가 확장되어서는 안 되고, 그렇게 확장된다면 완전히 중앙집권화된 정부를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연방대법원은 주간 통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제적 행위와 미약한 영향을 끼치는 비경제적 행위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연방의회가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무소불위로 제한 없이 권한을 행사하게 되면 전국적인 사안에 대한 연방의 권한과 지역적인 사안에 대한 주의 권한 사이의 헌법적 구분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것, 즉 연방의회가 모든 것을 규율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였다. 연방대법원은 <미국 v. 로페스> 판결을 언급하며, 연방이 주간 통상과 관계가 없는 전통적으로 주가 관할하는 영역의 규율까지 떠안는다면 연방과 주 사이의 권한 관계는 불분명해질 것이고, 오래전부터 주의 주권 사항이었던 형사법 규율이나 교육과 같은 영역에서도 연방 권한의 한계를 규정하기가 어렵게 된다고 하였다. 대법관 토머스의 보충 의견과 같이, 연방의회가 통상을 규제한다는 미명 하에 사실상 주정부의 경찰권을 행사하는 지경이 된다면, 이는 헌법에서 제시한 권한 배분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다. 요컨대, 본 사건과 같은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등의 민사적 청구 권한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러한 구제는 주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연방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이는 연방 체제가 지향하는 '분권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 즉, 범죄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의 보호는 대표적인 주의 경찰권에 속하는 것인데, 연방의 관할을 인정할 수 있는 요인인 통상과의 관련성이 없는 '일반적 상황에서의 성범죄'를 연방 법률로 규율하는 것은 헌법적 근거가 없다고 봐야 한다. 성범죄 근절을 위하여 강력하게 투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범죄를 규율하는 연방법을 제정하면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화할 수 있는 등의 효과는 있지만, 법리적으로는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투쟁은 주 차원에서 전개되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일반적 상황에서의 성범죄 v. 통상과 관련된 상황에서의 성범죄


 이 사례에서도 9명의 재판관 중 4명은 연방의회가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여성폭력방지법의 해당 조항을 제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주간 통상에 관한 연방의회의 규율 범위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수의견의 논리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 행위 자체는 경제적 행위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것이 통상이나 경제에 어떤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여러 주에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내에서 통상과 관련된 작업을 하는 여성 근로자에 대한 성폭력을 연방의회가 통상 조항을 근거로 규율한다면, 이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겠지만, 위 사안과 같이 주간 통상과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하여 주법원이 아닌 연방법원에 민사적 구제를 청구하는 것까지 통상 조항을 근거로 허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다수의견의 입장으로 해석된다. 소수의견은 본 사안의 경우 <미국 v. 로페스> 사건과 달리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통상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의회의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나, 다수의견은 통상에 대한 성폭력의 영향은 - 마치 A가 없었더라면 B도 없었을 것이라고 하여 모든 A를 B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 유의미한 영향이라고 인정하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경우 연방의회는 사실상 어떤 범죄행위도 통상 조항에 의해 규율할 위험이 있다는 입장이다. 범죄 피해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경제 활동을 줄일 수 있고, 다른 주에서 생산된 제품의 소비를 줄이는 등 주간 통상에 영향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범죄가 주간 통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트 오브 애틀랜타 모텔 v. 미국> 사건에서 흑인에 대한 투숙 차별이 해당 지역으로 여행하고자 하는 흑인들의 의욕을 위축시켜서 결국 주간 통상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던 것처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여성의 자유로운 여행과 활동을 위축시켜서 통상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흑인에 대한 모텔의 투숙

거부로 인해 흑인이 그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을 자제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지만, 여성에 대한 성적 동기에 의한 폭행의 위험성 때문에 여성이 다른 주로의 여행을 자제하리라는 것은 – 물론 실제로 그런 여성이 있을 수 있지만 – 모텔의 투숙 거부 사례처럼 일반적으로 추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 경제적인 행위 여부가 중요한가


 다수의견은 성적 동기의 범죄는 어떤 의미로든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고, 기존에 통상 조항에 근거하여 주 내의 행위에 대한 연방의회의 규율을 인정한 사례들은 모두 경제적인 속성을 갖는 행위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v. 로페스> 사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통상에 끼치는 영향뿐 아니라, 성폭력 범죄라는 행위 자체의 속성이 비경제적이라는 점도 고려한 것은 불필요하고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같은 취지로 소수의견도 경제적 행위와 비경제적 행위의 구분은 실제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연방헌법의 통상 조항은 통상을 규율하는 연방의회의 권한을 언급할 뿐, 규율하는 행위 자체의 경제적인 속성 여부를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 소수의견은 가령 강도는 돈을 목적으로 범행하는데 이것을 경제적 행위로 봐야 하는지 비경제적 행위로 봐야 하는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동기가 경제적인 경우이다. 아울러, 연방의회가 비경제적인 행위까지 규율하게 되면 모든 생활 국면을 규율할 우려가 있다는 다수의견의 논리에 대해서도, 소수의견은 연방과 주의 권한에 관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각 주의 이익을 대표하여 구성된 연방의회가 정치적으로 판단할 사항이지 법원이 판단할 사항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로페스 사건과 마찬가지로 통상에 대한 영향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더라도, 본 사안에서의 영향은 실질적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다수의견과 동일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다수의견도 연방헌법이 연방의회에 부여한 통상에 관한 규율 권한을 축소한 것이 아니라, 연방의회는 헌법의 뜻에 맞게 주간 통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규제하라는 취지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로페스 판결이나 모리슨 판결에도 불구하고, 통상에 대하여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는 연방의회가 여전히 광범위하게 규율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본 판례는 연방헌법의 통상 권한뿐만 아니라 주정부의 차별적 행위를 금지하는 수정헌법 제14조의 소위 ‘평등보호 원칙’에 근거해서도 여성폭력방지법의 해당 조항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정헌법 제14조는 ‘주정부 행위’에 대해서 적용되고, ‘사인의 행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 저서는 통상 조항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하고 있으므로 이에 관한 자세한 서술은 생략한다. 




<여성폭력방지법 관련 조항>

[미국 법전 제34편 12361조] 민사 청구권 


(a) 목적

헌법 제1조 8항뿐만 아니라, 수정헌법 제14조 5항에 근거하여 본 조를 제정할 수 있는 연방의회의 적극적 권한에 따라, 성적 동기에 의한 폭력 범죄의 피해자에게 연방법원에서의 민사적 구제 청구권을 인정함으로써,

피해자의 민권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과 보건, 주간 통상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증진하는 것이 본 조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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