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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Apr 26. 2022

생각 하나.  새로움의 입구에서


도전이 그대를 유혹한다면, 이는 만족할 만한 초대입니다. 

–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 




 번지점프의 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태연자약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년의 남자들은 사실은 아빠의 멋진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아이들을 저 아래 두고 떠밀려 올라와 동병상련하는 처지였습니다. 앞선 사람들이 하나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립니다. 이제 곧 내 순서가 다가오는데, 갑자기 뒤에 있던 학생이 어깨를 두드립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내 어깨끈이 망가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곧 뛰어내려야 하는데,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황급히 직원을 불러서 얘기했더니, 좀 낡아서 그렇지 괜찮다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요. 여태까지는 속이 좀 불편한 정도였는데, 그때부터는 다리가 굳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나는 뛰어내렸고, 어느덧 창공을 휘젓고 있었습니다. 새로움을 찾아가는 길에는 설렘과 두려움, 의욕과 부담이 공존합니다. 때로는 가야 하지만 가고 싶지 않은 길도 있고, 가야 하고 가고 싶지만, 그 낯섦이 부담스럽기만 한 그런 길도 있습니다. 더구나, 그 새로운 길에 접어들 때,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듯이, 또 그 길 위에 갇혀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그 부담감은 가중되기 마련입니다. 부담스럽지만 가야 하는 길의, 그러나 때가 되면 그 낯섦이 익숙함으로 변하여 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또 다른 길을 찾아 다시 떠나야 하는 그러한 길의 입구에 서 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에게 주문을 겁니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 얼마나 시간이 빠르던가. 매주 말에 생각해 보면 정녕 한 주가 그저 한나절의 시간같이 느껴졌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빠른 한 주가 겨우 52번 지나면 한 해가 지나는 것이니, 1년의 세월 동안, 아니 그보다 조금 더 긴 세월이라도 나는 어떤 어려움도 외로움도 능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실제로는 단지, 그 새로운 길의 입구에 섰을 때와 그 길을 걷는 중간중간에 잠시 찾아오는 여유로운 시간에서나 필요한 것입니다. 막상 두려워했던 낯섦과 실제로 대면하게 되면, 오히려 삶의 단조로움을 물리치는 새로운 활력이 일어설 것이고, 정작 마음속의 시계를 꺼내보며 주문이나 외우는 그런 한가로움은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폭풍처럼 지나가 버린 시간의 출구에 우리는 벌써 서게 될 것이고, 우리는 출구에 비치는 햇살을 보며 그저 잔잔한 미소를 띠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군 복무 시절 훈련장으로 이동하는 트럭 위에 앉아서 무심하게도 펼쳐져 있는 야속한 산자락을 바라보았을 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흘러 흘러 내게도 올 테니….” 라는 노랫말이 “흘러 흘러 내게도 오려나….”로 느껴지긴 했지만, 전역 전야에 밤하늘을 바라보았을 때는 마치 지난 세월이 하루의 꿈처럼 느껴졌던 경험이 새롭습니다.
  
  마치 번지점프대 위에서 카운트다운을 들을 때처럼, 두려움은 단지 두려운 일을 상상할 때만 실존하는 것입니다. 막상 뛰어내리면 그저 우리는 바람처럼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생각 둘. 뒤안길과 갈림길


그 수많은 뒤안길 속의 갈림길들이 결국에는 모두 여기 이곳으로 향해 있었던 것이라고




 길마다 우리에게 다른 의미를 줍니다. 도시의 차도, 그리고 개천을 따라 흐르는 산책길에서 우리는 다른 서정을 느끼게 됩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노곤한 몸을 버스 좌석에 앉힌 채 차창 밖을 바라봅니다. 온갖 차들로 붐비는 도로에서 우리는 삶의 고단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먼저 가기 위해 애를 쓰는 차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고, 무표정한 차의 전조등처럼 우리의 표정도 어느덧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퇴근 후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을 나섭니다. 한낮의 밝음처럼 들뜨지도 않고 한밤의 어둠처럼 가라앉지도 않은 차분하고 선선한 저녁을 걷습니다. 산책길을 따라 놓여있는 들풀들은 저녁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로 저리로 몸을 젖힐 뿐, 어디론가 향하지 않습니다. 낮은 풀잎이 발길에 닿은 듯 멀어져 가듯, 길의 이야기도 나의 이야기도 다가오곤 멀어져 갑니다. 도시의 차도를 닮았던 마음이 어느새 속세를 떠나 성찰의 시간을 갖는 구도자의 산책길을 닮아갑니다. 그 길을 걷고 있으면, 목적지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황급히 내닫기만 했던 나의 분주한 발걸음도 어느새 텅 빈 목적지에 이르러도 허탈하지 않을 것 같은 너그러운 발걸음으로 변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닌 보이지 않는 삶의 길을 생각합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걷고 있는 그 길을 닮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사람들에게서는 편안하지만 어쩐지 무미건조한 정서를 느낄 것 같습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쩐지 그 길을 닮은 주름이 구비져 있겠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굽어진 길의 어귀를 돌면 끝도 없이 뻗어 있는 곧은 길이 담겨 있을 것 같습니다. 눈보라 치는 산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차가운 눈이 가득 쌓여 있겠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산 정상에 쌓인 눈에 반사되어 더욱 빛나는 햇살이 담겨 있을 것 같습니다.


 길 중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길은 갈림길이고, 우리를 쓸쓸하게 하는 길은 뒤안길입니다. 저기 희미한 뒤안길 옆에도 여러 갈림길이 있었고, 지금 내 앞에 놓인 갈림길도 이제 곧 뒤안길을 따라 흐려져 갈 것입니다. 미래로 향해진 갈림길에 서서, 결국에는 가게 될 길의 옆에서 조금씩 조금씩 흐릿해질, 가지 못할 길의 사라지는 잔영을 그려봅니다. 뒤안길을 바라보며 우리는 걸어왔던 길의 가치를 잠시 내려놓은 채, 걷지 못했던 길을 위해 아주 잠깐이라도 연민의 손길을 내밉니다.


 생각해 봅니다. 먼 훗날 길의 끝에 도달했을 때, 사실은 뒤안길 속의 그 갈림길들이 결국에는 모두 여기 이곳으로 향해 있었던 것이라고…. 걸어왔던 길과 걷지 못했던 길, 두 가지 길에서 나는 분명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겠지만, 어느 길을 걸어왔든지, 이곳에서의 나의 미소는 왠지 모르게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 셋. 별


한 번쯤 별을 따라가라

발걸음 속에서만 찾았던

길을 만나리




생각 넷. 명상


하루를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온통 눈으로 살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일할 때도 그렇고, 쉴 때조차 눈으로 쉽니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주로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쉴 때는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등 온종일 전자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요새는 전철에서도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발 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은 만원 전철 속에서도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가끔 나의 어깨가 타인의 스마트폰 받침대가 되기도 합니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눈은 온종일 거의 쉬지를 못합니다. 지금과 같은 전자 기기들이 없었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물론, 그때는 그 나름대로 일하고 쉬는 방법이 따로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런 시대에 비하면, 요즈음은 참 눈을 통해 접하는 자극을 찾기 쉬운 시절입니다. 전자 화면이 없는 삶은 무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옛날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눈을 통해 쉬기도 하지만, 가끔은 눈에도 휴식을 주고 싶습니다. 눈을 잠깐이라도 감고 나서 떠보면 왠지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비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럴 때면, 일할 때나 쉴 때나 온통 눈을 사용하면서 눈을 통해 온갖 복잡한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하루를 되돌아봅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말 중에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멀리 떠나가고 싶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도 나를 맞이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겠지만, 아주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은 제자리에서 그저 슬며시 눈을 감아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을 감으려고 하면 처음엔 익숙지 않아서, 왠지 불안하고 오히려 이런저런 잡념이 더 강하게 용솟음치려는 것이 느껴집니다. 마치 문을 닫으려 하자 앞다투어 들어오려는 무리 때문에 어수선해지는 것처럼. 


마음이 번잡할수록 눈을 감기가 그만큼 어렵습니다. 평온한 뜰에 이르기 전에 헤쳐가야 하는 거친 수풀길에 들어서는 것처럼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면 우리가 저 멀리 떠나가서 찾으려 했던 그 누군가의 모습을 제자리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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