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차 경찰관의 기록>
<이 글은 현직 경찰관이 지구대 근무 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바로 내려쬐면 머리가 뜨겁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한낮이었다.
아스팔트 위의 열기가 신발 밑창을 타고 올라오던 시간.
지구대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형광조끼를 입은 30대로 보이는 청년이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들어왔다. 작업자처럼 보였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상황근무 책상에 앉아 있던 여경의 시선을 의식한 듯, 청년은 한동안 말끝을 흐렸다.
“저… 그게… 딱지 좀 끊어주실 수 있나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무슨 딱지요? 지금 본인 딱지를 끊어달라는 거예요?”
청년은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쓰고 있던 모자를 고쳐 쓰면서 말했다.
“며칠 전에… 길에서 오줌을 쌌습니다. 노상방뇨요.”
헛소리는 아닌 듯했다. 상담실로 자리를 옮기고 이유를 물었다.
“자진신고라… 안 될 건 아니지만,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게....."
청년의 사연은 이랬다.
시청 환경미화원인 그는 작업 중 급하게 소변이 마려워 건물 귀퉁이에서 해결했다.
그 장면이 CCTV에 찍혔고, 나중에 그 화면을 돌려본 건물 관리인이 시청으로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는 “응당한 처벌을 받고 와서 용서를 구하라”라고.
그래서 그는 경범죄처벌법상 ‘노상방뇨’ 통고처분, 5만 원짜리 딱지를 받으러
이 더운 날 지구대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창피함을 무릅쓴 발걸음.
거역하기 어려운 회사의 지시.
그리고 5만 원의 범칙금.
대화 중간중간 청년과 서너 번 눈이 마주쳤다.
그때마다 연신 고개를 떨구는 모습에 측은함과 대견함이 동시에 스쳤다.
내게는 왠지 모를 대견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꼭 발부받아야 해요?”
“네… 계장님이 꼭 납부하라고 해서요.”
건물 관리인의 연락처를 물었다.
“제가 한 번 통화해 봐도 될까요?”
몇 차례 연결음 뒤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건물 관리인도 쌓인 게 많았다.
그 자리는 취객들이 즐겨 찾는 ‘명당’이라서
‘소변 절대 금지’ 표지판도 소용없어 CCTV까지 달았다는 이야기.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거기다 오줌을 갈기냐”는 말,
건물 앞에 클린하우스가 있는데 왜 꼭 그 자리에 쓰레기들을 버리냐는 하소연.
10분이 훌쩍 넘는 통화 동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맞네요. 건물관리가 쉬운게 아니죠! 정말 힘드신일 하시네요"
"이 친구 이거 단단히 혼나야겠어요...."
관리인도 어느정도 분이 풀렸는지 범칙금액을 물어왔다.
나는 이때다 싶었고 청년의 사면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범칙금은 5만원인데요....이 친구 지금 제 앞에서 머리숙이고 있네요. 하하하"
"선생님. 5만원은 이 친구 일당인데 이번에 기회한번 주시죠. 제가 대신 따끔하게 얘기하겠습니다."
의외로 관리인의 대답은 간결했다.
"경찰선생님이 알아서 하세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청년을 향했다.
“자, 이제 딱지 안 끊어도 됩니다. 전화내용은 다 들었죠?”
청년은 모자를 벗어 두 손으로 가슴께에 모아 쥐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빠르게 지구대 문을 나섰다.
청년이 나간 후 상황데스크에 앉아 모든 얘기를 다 들었던 여경의 한마디.
"우리 주변에 CCTV가 생각보다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