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그녀는 제주 가시내였다
ㅡ아침 산책길, 참새 방앗간은 커피집이다.
그렇다고 스팀을 치고, 갖가지 라테와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집은 아니다. 찬바람도, 이슬도,
부산에 귀한 눈도 다 맞아야 하는 노천에 우뚝 선
커피집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 제주 가시내' 였던
할머니 커피집이다.
오래 그곳에 있었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 커피집을 즐겨 찾게 된 건 코로나 때부터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즈음 시작된 아침 산책길에 주머니를
뒤져서 찾은 동전으로 커피를 마시던 집.
그 집의 커피도 세상 물정에 따라 처음보다 100%
올랐지만, 그 집 할머니의 인심은 더 후해졌다.
가끔 만나면 들고 있던 동전으로 커피를 뽑아 주시기도 하고, 아침마다 오는 노점상에서 과일을 사서 하나씩 주기도 하셨다. 누구보다 후덕한 얼굴로 웃으시며.
그날도 자판기 앞에 섰다가 눈이 마주쳤다.
"커피 갖고 일로 와."
하며, 집으로 불렀다. 삶은 고구마를 들고 와서
먹으라고 권했다. 바쁜 일이 없던 터라 이야길 들을 준비를 했다.
"아, 나는 제주 가시내야. 열아홉 살에 부산에 왔다가 구경만 하고 갈라 했는데, 이모가 틀질을 잘한다고 칭찬도 하고, 물질도 싫어서 여기 눌러앉았지. 이모집이 큰 이불점을 했거든."
모처럼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어서일까. 할머니는 신이 나서
"내가 돈을 많이 벌었어. 이름난 기술자였지. 내가
벌어서 시집도 가고, 아들도 셋 낳고 공부도 다
시켰지. 신랑은 이불만 갖다주고 나면 술 마시고 아주 편안했어. 저어기 이불집에 납품을 했거든."
하며, 자랑을 하셨다.
"재미나고 좋은 일은 없었나요?"
하자, 기다렸다는 듯
"아~~~. 막내가 대학 졸업하고, 고맙다고 큰 절 할 때 보람도 있고 좋았지. 그때 큰맘 먹고 한 달 동안 여러 나라를 갔어. 파리에 유명한 백화점에 가고, 영화에 나왔다는 다리에도 가보고, 무슨 탑이라 더 라. 그 탑도 보고."
아련한 눈빛으로 그 시간을 더듬는 할머니.
그 할머니가 그때부터 좋아졌다
코로나가 조금 주춤할 무렵, 할머니는 자물통으로 빗장을 걸고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 커피집도 영업이 시원치 않았는데, 그건 정해진 순서 아닌가. 커피도, 설탕도, 프리마도, 물도 제때에 채우질 않으니, 기계는 자주 멈추었다.
보다 못한 이웃이 할머니 대신 재료들을 챙겼지만, 그 이웃도 자신의 가게가 있어 개점 휴업일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커피를 마시며 인사를 하던 아저씨 가 할머니가 수술을 하고 어제저녁에 오셨다며 빨리 나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산책을 하고 집으로 오다 정류소 몇 개를 돌아가서 본죽 한 그릇을 샀다. 할머니는 아들이 셋이라 했는데, 큰 아들은 멀리에 있고, 두 아들도 근처에 살진 않았다. 다행히 현관문이 조금 열렸길래
"죽 한 그릇 샀어요."
하고 내밀자, 글썽한 눈으로 손을 꼭 잡으셨다.
할머니는 커피집을 매일 잘 꾸렸고, 그곳을
찾는 이는 더 많아졌다. 가끔씩 멀리 외출을 하는지 자물통이 입을 꾹 다물 때가 많았지만, 뭐!
추석 전이었다. 매일 커피집 앞에는 과일차가 왔는데, 비닐봉지에 든 커다란 배가 다섯 개에 만원이었다. 배가 크서 할머니는 아기를 안듯 들고 오시다가 무거운 거 귀찮아서 준다는 듯이
"자."
하신다.
함빡 웃으며 커다란 배를 받아 들고 산책을 갔다가
배를 자랑했다. 배는 물도 많고 달았다.
식용유 한 병을 드리려고 갔다가, 자물통이 가로 막혀서 다른 집에 드렸다. 사흘 뒤에 다시 갔다.
식용유를 받으시다가
"나는 준 게 없는데. 커피나 한 잔 마시라."
하며 500원을 주셨다.
주머니에 든 500원을 만지작거리며 걷는 중에, 친구가 미술관에 놀러 가자는 톡을 했다. 마침 자판
기 앞이라 커피를 뽑다가 기분 좋은 시간에 톡을 한 친구도 좋고,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좋다.
나는 자랑거리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건 열심히 자신을 위해서 애를 썼던 사람이기에.
나는 자판기 커피 외에도 '오늘의 커피'를
좋아한다. 그 바리스타가 커피가 추출되는 시간을
기다리라는 말은, 좋은 시간이 온다는 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