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선 [발코니]
“여보, 그냥 하지 말자. 나도 강민이도 괜찮아, 당신이 위험할까 봐 그래요. 안 그래도 불만들이 많은데 당신만 안 한다고 해서 문제가 안 되진 않을 것 같아. 그냥 우리 있는 메모리로 잘살아 봐요, 응?”
아내의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우리 아들 강민이는 자폐다. 그러니 멀쩡한 데이터와 버릴 데이터 구분을 못 한다.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기분이 좋으면 그딴 데이터를 더 소중한 기억 대신에 가지고 있다고.
“누가 더 똑똑하자고 한대? 데이터라도 많아야 할 거 아니야, 그깟 돈이 문제도 아니고. 쟤 지금 꼬라지를 보라고. 스스로 쓸데없는 데이터도 못 지워서 하루의 반을 좀비처럼 멈춰있는 거. 옆에 붙어서 삭제를 눌러, 지금 어떤 장면이 나와? 그걸 꼭 가져야겠어? 그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당신이랑 쟤 데이터가 같냐고 지금! 그럼 강민이만 늘리자고? 당신은 삭제했어도 쟨 가지고 있잖아! 당신도 강민이랑 같은 기억이어야 할 거 아니냐고!”
아내의 무책임함에 화가 난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강민이를 위해서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싫단다. 강민이 또 좀비처럼 서 있다. 내일로 수술을 앞당겨야겠다.
“다 결정 된거야, 당신 위해서 아니고 강민이 위해서니까 제발 싫단 말 좀 그만하고 수술 잘 받고 나오는 거야” 아내의 어깨를 살짝 주무르며 달랬다.
강민은 어젯밤부터 손을 앞으로 쭉 뻗은 채 멈춰있다. 아내가 강민아 지금 어떤 장면이 나와? 왼쪽 어딘지 알지? 왼쪽, 그 아래 삭제를 눌러봐. 아무리 말해도 들은 척을 안 한다.
데이터 센터에서 최대한 멀리 주차 하고 모자와 마스크를 나눠준다. 절대 벗으면 안 돼, 알지? 나는 차에 있는 게 안전했으나 아내의 모습을 보니 수술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데이터 센터 앞 ‘서민들도 데이터 용량 추가를 원한다’ ‘보험 적용되게 하라!’ 내 사진을 붙여놓고 ‘이치선을 대통령으로!’ ‘부호들의 데이터 용량 추가 멈춰라!’ 현수막이 보인다.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데이터 센터로 들어간다. 내 이름을 말하고 당부한다. 저 사람이 안 받겠다고 해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좀비처럼 멈춰있는 강민이의 허리를 잡고 아내가 들어간다. 다 끝이다. 강민은 죽을 때까지 용량이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강민이 멀쩡하게 걸어 나온다. 데스크 옆 조화가 신기한지 만지작거린다. 하나 뜯어 입에 넣고 씹는다. 수술이 잘 됐구나. 몰래 다가가 묻는다.
“와이프도 수술받은 거 맞죠?” 맞다는 소리에 한숨을 내쉰다. 마스크와 모자를 씌우고 최대한 멀리서 걸어간다. 그 순간 시위대가 아내와 아이를 덮쳤다. 부자들 상판이나 보자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
“여보 오지 마!” 아내가 소리친다. 하지만 시위대는 아들과 아내의 모자와 마스크를 잡아당기며 사진을 찍어댄다. 강민이 큰 소리에 흥분해 시위대 중 한 명을 무자비하게 때린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아내를 꺼내고 강민을 붙잡지만 내 얼굴을 가격하는 바람에 모자와 마스크가 벗겨진다.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내 얼굴을 가렸지만, 시위대의 분위기는 싸해졌다. 몇 번의 찰칵 소리가 들렸다.
[단독] ‘메모리 복지’ 외치던 이치선, 정작 가족은 풀(full) 용량 확장?
미래 생존당 이치선 의원이 일가족과 메모리 증설 센터를 찾은 현장이 포착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평소 이 의원은 '메모리 비용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서민들의 대변인을 자처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사진 속 이 의원의 가족들은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최고급 프리미엄 메모리 시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정식 시술이라 할지라도, 국민에게는 "비용 부담을 없애주겠다"라며 희망 고문을 하던 이 의원이 뒤로는 제 가족의 특권을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비난이 거셉니다.
당원들조차 "공약은 표 구걸용, 생활은 귀족형"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째 집 안에 갇혀있다. 7층 발코니 밑엔 기자들과 시민단체가 깔려있고, 확성기로 하루 종일 ‘이치선은 해명하라!’ 소리가 들린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이 찾아와 시끄럽다며 너희 때문에 짜증으로 메모리가 부족하다고 화를 낸다. 경찰들이 찾아와 빨리 해결하라며 닦달이다. 해결할 방법이 없다. 용량을 늘리는 수술은 있지만 줄이는 수술은 아직 없다.
물론 아들의 자폐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그건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다. 다른 자폐 아동 부모들이 불같이 화를 내 조금 누그러지던 시민들마저 더 난리를 피워댄다. 나보고 어쩌라고, 니들이 돈 없는 게 내 탓이야! 소리치고 싶다.
사람들이 요구한다. 강민의 뇌 데이터를 공유하라고, 자폐도 거짓말이라고. 일주일을 소음 속에 사니 강민의 데이터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 메모리 과부하가 온 것 같다. 벽에 머리를 찧고 비명을 지른다. 나도 하루 종일 저 소리들을 감당하느라 데이터들이 밀고 들어오는 지경이다. 무엇을 삭제할지도 고르지 못하고 지우고 있단 말이다.
아내가 고통스러워한다. 기억들이 너무 고화질이라고, 선글라스와 귀마개를 껴도 너무 선명하다고 울부짖는다. 우린 이제 가진 게 너무도 많아서 죽어가고 있다.
벽에 머리를 찧어대는 강민을 떼어내려 해도 떼어내지지 않는다. 강민의 이마는 이미 수많은 멍이 들어 피가 비친다. 아내는 웅크린 채 하루 종일 귀를 막고 있다. 강민의 머리채를 잡아 발코니로 끌고 간다.
“보세요! 내 아들입니다. 당신들 때문에 하루 종일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있어요. 자폐가 아니라고요? 이제 증명이 됐습니까! 제 아내는 당신들의 감정 때문에 온종일 울부짖고 있어요. 당신들 때문에 제 메모리도 바닥났다고요! 그게 그렇게 죽을죕니까. 다 아이를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요!”
아마 저들에겐 나 하나의 목소린 아주 작게 들릴 것이다. 사람들은 진정되지 않는다. 내려와서 얘기해! 개소리! 꺼져! 등등의 소리가 들린다. 너무 강한 감정이 밀고 들어와 말을 하다 멈춘다. 삭제하시겠습니까?
강민의 첫걸음마 장면이다. 다음, 다음, 다음, 강민이 처음으로 빠빠라고 말했던 기억을 삭제한다.
모든 사람이 말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겨우 부여잡은 강민이 몸부림친다. 뭐가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어쩔 줄 몰라 하며 비명을 지른다. 그 순간 강민이 난간을 넘어 뛰어내린다. 안돼, 붙잡을 새도 없이 추락한다.
째지는 비명이 들린다. 몇몇 사람들이 멈춰 기억을 삭제한 후 도망친다. 기괴하게 비틀어진 자세의 강민을 가만히 본다. 팝업이 뜬다, 메모리 부족. 삭제하시겠습니까? 이전 기억을 지우고 지금 기억을 받아야 할까? 팝업창이 뜬 채, 아주 먹먹하게 들리는 소리와 함께 좀비처럼 서 있다.
또 한 번의 비명과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그냥 지웠어야 했는데, 강민이 어설프게 그린 가족사진이 뜨며 삭제하시겠습니까. 뒤로, 뒤로, 뒤로 강민에게 처음 바다를 보여주던 날이다. 메모리를 삭제하면 지금 이 광경을 내가 감당할 수 있나. 저 밑에 뒤틀린 자세의 아내와 강민을 내 메모리가 감당할 수 있나.
이윽고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먹먹한 사람들의 비명소리만 머리 위로 어렴풋이 맴돌았다.
[속보] ‘특권 논란’ 이치선 의원 일가족 참변.... 고성능 메모리가 부른 ‘과부하 비극’
메모리 증설 특권 논란으로 거센 사퇴 압박을 받아온 미래 생존당 이치선 의원 일가족이 오늘 오후 자택에서 투신하였습니다. 고화질 메모리 시술을 받았던 이 의원의 아들이 투신한 데 이어, 이 의원 부부 또한 메모리 과부하로 인한 ‘좀비 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비극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네, 이치선 의원의 자택 앞입니다. 조금 전 일가족 세 명의 시신이 수습되었습니다.
사건은 오늘 오후 2시경, 이 의원의 아들 강민 군이 7층 발코니에서 투신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에 따르면, 강민 군은 투신 직전 극심한 흥분 상태였으며 대중의 야유와 플래시 세례 속에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울 수 없는 비극의 원인으로는 이 의원 가족이 받은 '프리미엄 메모리 증설 시술'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서민들이 1테라바이트의 한계 속에서 기억을 압축하고 저해상도로 저장할 때, 이 의원의 가족은 수십억 원을 들여 모든 순간을 '초고화질'로 저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들 강민 군의 자폐 증세와 대중의 비난 섞인 감정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유입되면서, 뇌가 감당할 수 있는 데이터 처리 속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의원의 아내는 아들의 투신 장면을 목격한 직후 뒤따라 투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누가 돌을 던졌나" vs "업보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추모보다는 논쟁이 뜨겁습니다.
"기억을 지울 권리조차 박탈한 대중의 폭력"이라는 의견과 "서민을 기만하고 특권을 누리려다 데이터에 먹힌 업보"라는 냉담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메모리 증설 시술'을 전면 불법화하고, 기존 증설 자들에 대한 강제 용량 축소 및 데이터 백업 센터 조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글 나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