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5. 메모리 부족 (Low memory)

박선우 [페르소나와 감사합니다]

by 나식언

박선우 [페르소나와 감사합니다]


일주일 만에 햇살 모드 산책이다. 다른 모드는 세 시간에 한 번씩 바뀌지만 햇살 모드는 딱 한 시간이 맥시멈이다. 일 년을 입원하며 그 이유가 뭔지 알아챘다. 몇 시간 동안 해와 선선한 바람과 자연을 보다 보면 뭔가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그럼 사람들이 퇴원하고 싶을 테고 병원은 돈줄을 잃겠지. 그래 이곳은 정신병원이다. 메모리에 오류가 있어 몽땅 지워버려도 하나의 추억마저 간직할 수 없는 사람, 극심한 데이터 손상으로 헛것을 보는 사람, 고통스럽지만 그 기억을 압축할 용기가 없어 정말 정신적 치료를 받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아직도 데이터가 손상되는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치료법 따위는 없다는 거다. 머리를 세게 부딪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다. 한순간에, 정말 한 순간에 메모리는 뻑이 날 수 있다. 내가 병원에 온 이유는 정말 ‘치료’를 위해서다.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후부터 그 장면이 반복 재생처럼 맴돌아서.


이곳에선 사람을 사귀는 게 쉽지 않다. 말했듯 메모리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99퍼센트거든, 통성명조차 하지 않는다. 일 년이나 입원하는 이유는 전극 치료, 약물치료를 모두 해봤지만 나아지지 않아서, 그래서 난 데이터 초기화를 신청하고 대기하는 중이다. 국가에선 데이터 초기화를 굉장히 보수적으로 본다.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2~3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코어메모리와 내가 꼭 있어야 살 수 있는 메모리 몇 개를 고르면 된다. 나의 집, 내 블루베리 파이 레시피, 커피 내리는 법 이것만 알면 충분할 것 같다. 기억을 모두 잊는다 해도 메모리는 새것 같아질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벤치에 앉아 있다. 자리가 그곳 밖에 없어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앉았다. 여자도 목례한다. 인사를 받아주네, 더 나아가 통성명을 한다. 박선우입니다, 한지민입니다. 참 오랜만인 상황이다. 지민의 관자놀이에 피그라인이 보이지 않는다. 뭐 살이 찌면 묻혀 안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마른 여자한테 피그라인이 안 보이다니, 또 로봇인가.


지민이 화들짝 놀란다. 뭐 하시는 거예요. 내가 더 놀라 죄송합니다. 말하려다 입을 막고 목례한다. 확성기가 울린다. 햇살 모드 산책 종료입니다. 다음은 비바람이다.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며 지민도 일어난다. 북적북적함이 싫어 마지막으로 나가기로 한다. 통로를 지나자 낯익은 모습이 땅을 기어다니는 걸 본다. 어디가 심하게 아픈 건가, 팔뚝을 잡고 일으켜 지민을 병실로 부축한다. 메모리가 고장 나 걷는 법을 잊은 건가. 지민의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침대에 앉힌 후 긴 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친구가 화들짝 놀라 지민의 입을 막는다. 지민은 당황한 채 왜? 왜 이래? 말을 반복했다. 많이 고장 났나 보네, 감사합니다. 그 말이 들리자마자 화면에 삭제하겠습니까? 팝업이 뜬다. 내가 메모리를 지불하면서도 자주 갔던 만둣집. 삭제를 누른다.

“오랜만에 듣네요, 그 말” 지민과 친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문을 닫고 나오자 친구의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 말 하면 안 돼 큰일 나, 기억이 포맷된 걸까. 감사합니다라니,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 모드는 햇살 모드, 새벽 세 시 모드다, 새벽 세 시쯤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조금의 눅눅함, 바람인지 안개인지 모를 그런 오묘함이 좋다. 병원 밖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항상 3층의 모드 순서를 꿰고 있다. 모드가 바뀌기 십 분 전 미리 도착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다. 지금의 모드는 미세먼지 모드, 지민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모서리로 흐르는 물에 빠질 듯 입을 대고 게걸스럽게 물을 마신다, 마신다가 맞나? 조심조심 다가가 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확인하려 하지만 지민의 비명소리에 내가 더 놀란다.

“아 아니, 죄송해.... 아니, 뭐 하는 건지 궁금해서요” 지민의 턱에 물이 뚝뚝뚝 떨어진다.

‘햇살 모드 전환합니다’ 소리가 들리고 지민의 얼굴이 환해진다. 지민이 우왕좌왕하며 주변 눈치를 살핀다.


“선우 씨 혹시 입에 넣을 거 있어요? 그러니까 먹는 거, 먹는 거 뭔지 알아요? 냠냠, 먹을 거 있어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먹는다고? 뭐 예의상 문병 온 친구가 가져온 딱딱한 빵이 냉장고에 있긴 하다. 사 개월 지난 건데, 팔뚝만 한 딱딱한 빵을 건네자, 지민이 힘을 주어 찢고 게걸스럽게 입에 넣기 시작한다. 쉬지 않고 계속 입에 욱여넣는다. 팔뚝만 한 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배가 고파서, 목이 말라서 입원한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가루가 잔뜩 묻은 입을 슥슥 닦더니 더 없냐고 묻는 말에 없다고 답하자 지민이 만족스러운 한숨을 푹 내쉬고 벤치에 앉는다. 고마워요. 지민의 입에서 또 감정언어가 나온다. 삐빅 삭제하시겠습니까? 병원에서의 첫 햇살 모드, 삭제 버튼을 누른다. 정신을 차리니 지민이 입을 막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꾸벅꾸벅 인사를 하면서도 입은 틀어막은 채, 일 년 만에 보는 신기한 사람, 지민에게 호기심이 든다.


“지민 씨는 여기 왜 왔어요?” 메모리가 뻑이나서 왔겠지만, 정확한 증상이 궁금하다.

“음.... 다 보셨으니 얘기할게요, 언제까지 숨어서 살 수도 없고, 제 친구.... 그 병실에 그 사람 보셨죠? 저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정도 전에 살던 사람인데, 사정이 있어서 백 년 동안 동면 상태였어요, 어제 깨어났고요. 그러니까 전 메모리 할당제 시행 전 사람인 거죠. 근데 뭐가 잘못됐는지 저는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요. 그게 어떤 기분이냐면, 배가 그니까 명치 쪽이 조이는 느낌이랑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몰래 물 마시러 올라왔던 거예요.”

정신적인 문제인지 진짜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메모리를 거짓으로 말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지민이 불쌍한 표정으로 말한다.


“말 한 김에 부탁 좀 드릴게요, 먹을 수 있는 거, 씹을 수 있는 게 있으면 꼭 좀 저한테 가져다주세요.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은 제가 아직 못 믿거든요, 선우 씨가 제겐 더 믿음직한 것 같아서. 무리한 부탁인가? 잘 모르겠긴 한데, 그냥 네, 남는 거 있으면 여기서 만날 때 주시면 감.... 네, 아무튼.” 끄덕끄덕 대답하자 한지민이 가볍게 목례하고 어기적어기적 3층을 걸어 나갔다.

믿음직하다.. 그 말을 내가 들어본 적 있던가?


나는 어릴 적 소위 말하는 ‘메모리 최적화 키즈’ 였다. 나의 생물학적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메모리를 밀착 관리했다. 돌잔치, 유치원에서의 생활, 자연의 풍경은 모두 압축했고 내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잘재잘 떠들면 당장 지워. 이 한마디만 했다. 열세 살까지의 나의 메모리는 엄마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조금의 감정 메모리라도 남겨오는 날엔 내게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내 메모리의 처음부터 끝은 모두 공부였다. 공부는 메모리가 무제한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의 감정 메모리가 한 톨이라도 남아있는 걸 싫어했다. 그게 엄마를 향한 사랑일지라도. 그에 비해 아빠는 감정 메모리의 필요성에 대해 엄마와 항상 다투었다. 선우를 저런 식으로 살게 하면 안 된다고. 사람은 감정이란 게 필요하다고. 메모리를 잡아먹더라도 소중한 기억 몇 개쯤은 품고 살아야 한다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싫어했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요구하는 이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기억이 몽땅 지워질 걸 알고 있어서겠지. 엄마는 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불안해했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메모리 최적화 키즈들이 열세 살 생일이 되자마자 메모리 초기화를 하고 부모에게서 벗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표정이란 게 없어졌고, 엄마는 나를 세뇌했다. 각종 매체에서 찾은 감정 메모리의 폐해를 보여주며, 넌 무조건 성공해야 해. 성공해서 네 업무 메모리는 몽땅 국가에 주고, 그때부터 넌 네 인생을 즐기며 살면 돼. 남들처럼 매일 메모리 하나씩 지우며 사는 거 말고, 넌 인생을 행복하게 즐기면서 살면 되는 거야. 알아들어? 네가 좋아하는 건 그때 가서 해도 안 늦는다고.


모두의 예상대로 나는 13살 생일에 메모리를 초기화 후 엄마에게서 벗어 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마음에 걸렸다. 나의 감정을 진심으로 돌봐주던 유일한 사람. 아빠는 학교를 빼먹고라도 내게 행복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 했다. 엄마가 있는 집에 들어가기 전엔 몽땅 지웠어야 했지만 순간이라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 오늘 우리 둘이 한 모든 일을 종이에 가득 적어 내 주머니에 넣어주곤 메모리를 삭제했다.

차곡차곡 모아놓은 종이 뭉치들을 엄마에게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난 그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 열세 살 생일 열흘 전, 빼곡히 모아놓은 종이를 엄마는 갈기갈기 찢고 태우고 던졌다. 난 그때부터 아무런 욕구가 들지 않았다. 행복도 불행도 더는 느끼고 싶지 않아졌다. 난 메모리 초기화를 하지 않았고, 공부에 매진했다. 설령 불편한 감정이 잠깐 공부 메모리에 묻으면 난 바로 지운 후 다시 공부했다. 아무런 감정 메모리가 내게 남지 않도록.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천재였다. 국가에서 준 공부 메모리를 한 톨도 낭비하지 않고 가득가득 채워 넣었다. 성적은 일등을 놓친 적이 없다. 가끔 죽고 싶다는 감정이 들 때, 나는 갈기갈기 찢긴 아빠의 메모 형태를 기억하며 버텼다. 내용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종이 뭉치를 볼 때면 난 최고로 행복했으니까.


열여섯 생일 전, 이대로는 더 이상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메모리는 고작 3분의 1도 차 있지 않았으니, 불행의 감정이 밀고 들어오는 건 당연했다. 사춘기인 탓일까, 불행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공부와 불행, 그게 내 메모리의 전부였다. 아빠가 교통사고가 나던 날, 평소와 같이 공부하고 있었고 이내 엄마의 비명이 들렸다. 병원에 가 아빠의 시신을 마주한 순간, 나의 공부를 포함한 모든 메모리가 불행으로 찌들어버렸다. 처음으로 삭제하시겠습니까 팝업이 떴고, 내겐 이 불행을 감당할 만한 메모리가 없었다. 그래서 내 메모리는 아빠의 죽음이 제일 크게 남아있다. 그 전의 기억들은 모두 압축하거나 삭제했다. 몇 년을 그렇게 이렇다 할 기억 하나 없이 살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야 난 엄마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병원에 입원을 결정했다.


글 나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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