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7. 메모리 부족 (Low memory)

조수영 [제 1호 데이터 인간]

by 나식언

조수영 [제 1호 데이터 인간]


나의 직장 WMA 저장 전략실에 출근한다. 백 년 전 동면한 한지민이 곧 깨어날 것 같다는 소식을 접한다. 온전히 깨어날까. 한지민은 유일한 실험체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동면에 실패했다. 한지민이 데이터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성공적인 실험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모두 수포가 된다.


메모리 할당제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없으니까. 한지민이 자고있는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간호 로봇을 붙잡고 언제쯤 깨어날 것 같냐 묻는다. 데이터 처리중.... 예상시간 한 시간입니다. 복도에 앉아 기다린다. 요란한 비프음이 들린다. 병실로 뛰어 들어간다. 한지민이 꿈틀거린다. 지민아, 지민아, 나 기억나?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내뱉는다. 일단 언어를 잊지 않았다. 누구세요, 나 수영이야 수영이. 마지막 심어놓은 기억이 그대로인지 확인해야 한다. 어디까지 기억나? 너희 집.... 일단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관자놀이를 눌러 전략실에 전화한다. 실험 성공인 것 같아. 상황 보고 다시 연락할게. 지민에게 할당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혀 이해 못 하는 눈치지만 괜찮다. 내가 알아내야 할 건 데이터의 관리를 받지 않는지다. 스토리에 최대한 감정을 끼워 넣어 데이터를 크게 만든다. 이야기를 모두 듣는다면 메모리가 차는 느낌, 그니까 두통이 있을 것이다. 두통이 발생하는지 봐야 한다.

나였다면 동의 없이 백 년간 동면시킨 내게 욕이라도 퍼부을 줄 알았는데 지민은 별로 당황하지 않은 것 같다. 욕하는 시나리오, 때리는 시나리오 모두 준비했지만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지민의 배가 꼬르륵거린다. 화면 왼쪽 아래 Feed를 누르면 돼. 이야기하니 만족하는 눈치다. 그럼 활성화가 됐다는 건가? 실패인가 하던 찰나 곁에 둔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너 목이 말라? 물어보니 습관적으로 마셨다고 한다. 거짓말, 인류는 백 년 동안 물을 마실 필요도 없어 ‘마신다’의 개념조차 잘 이해하지 못한다. 확률은 80퍼센트로 올라간다. 메모리 해킹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갓 깨어나 정신이 없는 탓인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디부터 기억이 나는지 물어본다, 어제라고 한다. 확률은 90퍼센트로 올라간다. 태어났을 때의 기억은 없고, 동면에 들어간 날 이전부터 시작. 그래 한지민은 확실히 데이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확률 백 퍼센트.


“성공이야, 한지민 뇌는 멀쩡해, 데이터 아니야.”

“정말? 대박인데, 하루이틀만 더 지켜보고 연구소로 옮기자.”

“그래 알았어.”

한지민은 뉴스에 시선을 고정한다. 며칠 뒤엔 자신의 뇌가 데이터 확장의 실험체로 쓰일 줄은 모르겠지. 지긋지긋한 실험도 이제 끝이다. 마침내 나는 죽을 수 있을 것이다.


한지민이 어떤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온다. 감사합니다. 하는 지민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런 말 하면 안 돼. 남자는 그 단어를 듣자마자 멈춰 서 자신의 기억을 지웠다. 드디어 다 끝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풀어진다. 그동안 기억관리국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조수영 양 맞아요?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6명이 하교 중인 날 둘러싼다. 같이 좀 가시죠. 도망칠 곳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입을 틀어막힌 채 봉고에 끌려 올라온다. 그 사이에서 미친 사람처럼 발버둥을 친다. 그다음 기억은 없다.


영화처럼 의자에 결박된 채 눈을 뜬다. 오른쪽 머리가 뻐근하게 아파 투명 문에 비친 날 바라본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이미지같이 큰 주삿바늘이 내 오른쪽 관자놀이에 꽂혀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지 않는다. 뭐야! 풀어줘! 놔! 비명을 지르자 먹먹한 소리의 방송이 울린다.

“조수영 양 안녕하세요. 저희는 WMA 기억관리국입니다. 처음 들어보실 겁니다. 화면을 보시죠.”


새로운 세계, 데이터 할당제의 시작. 우린 모두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살아갈 자격이 있습니다. 짧은 삶에 불행은 필요 없습니다. 비로소 열린 유토피아, 그 시작을 함께 해주십시오. 스피커 속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이해하긴 어려우실 겁니다. 그동안 관찰 한 결과 두 명의 학생이 본 실험에 최적화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조수영 양은 앞으로 평생을 살게 될 겁니다. 물론 병들지도 않죠. 본 데이터 할당제는 전 세계인이 받게 될 겁니다. 딱 열 사람만 빼고요. 그 중 한 사람은 조수영 양의 친구 한지민 양이 될 겁니다. 그래서 조수영 양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한지민 양과 밤새 같이 있기. 그것만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백 년 후에 다시 연구에 합류하시면 됩니다. 어려울 것 없죠? 이제 수영양은 세계 최초의 데이터 인간이 될 겁니다. 거의 다 주입된 것 같네요”


싫어! 하지 마! 싫다고! 발버둥을 쳐도 꿈쩍도 안 한다. 실험복을 입은 사람 둘이 나와 머리에 박힌 주사를 뽑는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띠링 하는 소리가 나며 내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진다. DATA 0, 눈을 깜빡이니 사라진다.


“조수영 양은 죽을 때까지 데이터 걱정은 없이 살게 될 겁니다. 하지만 싫은 기억은 삭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제1호 데이터 인간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조수영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곧 전 세계를 유토피아로 만들 계획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다시 내 팔을 끌고 차에 태운 후 우리 집 앞에 내려준다. 자꾸 언어가 보인다. 내 귀를 통해서가 아닌 주변에서 보인다. 딱히 표현 할 방법이 없었다.


“한지민 양이 곧 올 겁니다. 특별히 해줘야 할 건 없습니다. 한지민 양이 잠에 들게 해줘야겠죠. 쓸데없는 행동은 안 하는 게 서로 간에 좋을 겁니다.”

지민이 자꾸 악몽을 꾼다며 찾아온 시각이 열 두시였다.


‘ㅣㅔㅏ, ㅣㅔㅏ’ 집에 가라고 속삭였지만, 지민은 알아듣지 못했고 그 순간 머리에서

“멍청한 짓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누군가의 화난 말소리가 들렸다. 이부자리를 펴니 또 언어가 보였다. ‘넌 백 년 뒤 미래가 어떨 것 같아?’라고 물어보세요.’

“지민아 넌 백 년 뒤 미래가 어떨 것 같아?”

“음.... 나는 가끔 내가 죽고 난 미래가 궁금해”


대답을 들은 후의 기억은 없다. 정신을 차리니 지민은 없었고 연락도 닿지 않았다. 난 지민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살아가야 했다.


평생을 산다는 건 축복이 아닌 지옥이었다. 지민이 사라진 후 1년 뒤 할당제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독단적인 국가의 행위에 반기를 들었고, 폭동의 주동자들은 한두 명씩 실종되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난 예상이 됐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며 지민의 부재는 잊혀졌고 데이터는 쌓여갔다.

다른 사람들은 매일같이 남길 데이터를 선별하느라 진을 뺄 때 난 그저 짜증 나는 기억이나 삭제하면 그만이었다. 총 두 번 죽을 뻔했지만 난 절대 죽지 않았다.


한 번은 버스가 인도로 돌진해 서 있던 일곱 명이 사망했다. 나는 그 중 첫 번째로 부딪힐 위치였지만 충돌 5초 전 눈앞에 두 걸음 뒤로! 두 걸음 뒤로! 마치 고장 난 컴퓨터처럼 좌르륵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난 두 걸음 뒤로 나갔고 한동안 사람들에게 운 좋은 애로 불렸다.


죽지 않는다는 게 늙지 않는다는 말과는 다르다는 걸 서른 중반이 돼서야 깨달았다. 십수 년 후 무심코 비친 내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때 알았다. 이렇게라면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으로 끝없이 살아야 하는 건가. 두려워졌다. 그들에게 평생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해야 했다. 데이터센터로 찾아가 제일 높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했고 세 번을 퇴짜맞았다. 나 조수영이라고, 조수영이라고 하면 알 거라고 빌다시피 요청했으나 그들은 그저 진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필요했다. 백 년 뒤 난 한지민을 만나야 하니까. 옥상에 올라가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협박했다. 당장 날 찾아와, 안 그럼 죽어버릴 테니까. 못 죽게 한대도 어떻게든 죽을 거니까. 당장 찾아와. 세 번 협박했으나 그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방법으로 내가 십수 년 전 그들에게 겪은 일 백 장을 인쇄한 뒤 시위대가 있는 데이터센터 옥상으로 올라가 떠들었다. 당장 찾아와, 이 종이 뿌리기 전에, 뿌리고 뛰어내릴 테니까.


십분의 적막이 흐르고 종이를 한 장씩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다. 열 장은 뿌렸을까, 그 순간 기억을 잃었고 깨보니, 마치 호랑이를 가두던 철창 같은 곳에 누워있었다. 그 철창은 소위 회장실처럼 긴 소파가 늘어진 어떤 사람의 방 안에 있었다.


“원하는 게 있습니까?” 실체 없는 소리가 머리를 웅웅 울렸다.

“늙지 않게 해줘요”

“.....그게 답니까?” 허무하다는 듯 변조된 목소리는 말했다.

“네” 이제 와서야 잘못 대답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 죽게 해주세요 라고 해야 했는데, 아마 들어주진 않았겠지만.

실험실 복장의 세 사람이 들어와 내 관자놀이에 주사를 꽂았다. 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더 이상 늙지 않을 겁니다. 한지민이 깨어나기까지 75년은 더 남았습니다. 저희는 연구 대상이 더 필요합니다. 인생이 무료하다면 같이 일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데이터센터에서 말입니다”

산다는 게 신물이 나는 지경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사람은 나보다 빨리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데요.”

“기억 데이터를 추출해 다른 사람에게 옮겨 심을 수 있는지 연구할 겁니다”

“왜죠?” 사실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었다. 난 어차피 저들이 감시하는 연구 대상일 뿐이니까. 눈앞에 ‘데이터 제도를 폐지하라’ 플랜카드를 든 사람들이 보인다.

“저들이 아끼고 아낀 남은 기억 데이터는 가치가 있으니까요”


데이터센터는 일 테라를 긴 시간 다 쓰지 않은 사람들을 연구했다. 모든 기억을 압축해 버려 행복한 기억만 남겨두는 사람들, 불행한 기억은 단 한 톨도 남겨두지 않아 매일이 행복한 사람들을 경계했다. 간혹 그 반대의 사람들도 찾아냈는데, 데이터 할당제에 반기를 들기 위해 행복한 기억은 모두 지우고 기억을 불행으로만 가득 채운 사람들이었다. 나는 수십 년간 열 명의 사람을 내가 당했던 것처럼 납치했다.


초기 연구 대상인 나에겐 이렇다 저렇다 설명해 줬지만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울부짖는 그들의 관자놀이에 주삿바늘을 꽂고, 뽑고, 다시 주입하고, 그다음 연구센터의 기억을 지우면 그만이었다. 매일 웃고 있던 사람들이 기억을 재설정하자 눈물을 보이고, 입꼬리가 축 처진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사이 지민을 제외한 아홉 명은 동면에 실패해 깨어났고 우린 그들을 말 그대로 ‘제거’했다. 실패한 연구 대상자들의 뇌들을 모아 요청하는 부호들의 기억을 ‘백업’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는지 연구했으나 동면이 충분하지 않았던 탓인지 아날로그 기억과 데이터 기억이 충돌해 연구할 수 없게 타버렸다. 결국 우리는 한지민의 동면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근데 드디어 지민이 깨어난다니, 드디어 지겨운 인생도 끝이었다. 난 예상하고 있었다. 한지민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난 ‘제거’ 될 것이다. 내가 백 년간 원하던 바였다.


글 나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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