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9. 메모리 부족 (Low memory)

박선우 [비스킷과 불신]

by 나식언

박선우 [비스킷과 불신]


지민을 만난 뒤로 아빠의 죽음이 대부분이던 나의 데이터에 다시 차곡차곡 메모리가 쌓여갔다. 지민이 목이 마르다는 것, 배가 고프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니까. ‘데이터화’ 되지 않은 사람은 특별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같은 감정언어를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는 것, 데이터가 모자랄까 노심초사하며 행동하지 않는 것, 내가 상상한 ‘진짜 인간’ 과 비슷했다. 지민이 처음으로 목마름과 배고픔의 느낌에 대해 설명해 주던 날, 어떻게든 상상해 보려 했지만,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호기심이 들었다. 얼만큼을 먹고 마셔야 만족할까? 간호 로봇의 뒤를 밟아 수술용 비스킷을 훔쳐 오는 건 일도 아니었다.


우걱우걱 입안으로 밀어 넣는 비스킷을 보며 맛이 어떠냐 물었으나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음식점 사업을 하려 했기 때문에 맛의 행복은 몰라도 맛이란 건 알고 있었다. 지민은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스킷을 먹었다. 맛이 없는데도 저렇게 행복해할 수 있구나, 지민의 그 모습은 나의 메모리를 크게 잡아먹은 듯했다.


병원 지하엔 수명이 다 된 간호 로봇이나 로봇의 부품, 각종 데이터들이 모여있는 큰 방이 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마치 쓰레기장 같은 공간. 이 병원의 비밀번호들은 모두 **7890으로 통일되어있다는 건 입원 한 달 차에 이미 알아냈다. 맛없는 비스킷 말고 다른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고철 덩어리들을 치우고 치우다 flavor라는 단어를 발견한다. 색이 완전히 바래 어떠한 식재료인지 가늠되진 않지만 먹는 것이라면 지민은 알 것으로 생각해 챙겨두었다.


지민의 주머니에 바래진 봉투를 넣자, 지민이 입을 틀어막고 방방 뛰었다. 역시 먹는 게 맞았구나. 좋아하는 지민의 모습을 보니 살짝 두통이 왔다. 큰 메모리가 저장되었다는 의미였다. 지민을 닮고 싶어졌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사람들 말고, 데이터가 모자라더라도 자기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가져보지 못한 행복의 데이터들은 생각보다 용량이 너무 컸다. 지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억하고 싶었지만 자꾸만 삭제 팝업이 떴다. 곧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들마저 모두 지워야 할 것 같았다. 지민의 표정이 어두워 보이다 이내 눈물을 흘렸다. 난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진짜’ 사람처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는 순간 나의 기억 두 가지는 지워야 할 것이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가 싫었다.


그럼 차라리 지민의 행복을 바라보는 것 말고 지민을 도울 방법을 생각해 보자. 지민을 백 년간 동면시켰던 수영, 수영을 캐보자. 알아낸 모든 걸 알려주자, 도망치는 법을 알려주자. 그게 내가 지민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수영은 매우 수상했다. 요즘 세상에 볼 수 없는 ‘친구’라는 것부터 이상했다.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내 병실은 2층이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지민이 있는 1층을 빙글빙글 도는 게 루틴이 되었다. 수영은 자주 전화를 받았는데, 지민의 병실에선 생글생글 웃던 사람이 전화를 받을 때면 그 누구보다 어두워 보였다. 전화로 한지민이 어쨌고 저쨌고 말했다. 센터로 삼 일 뒤에 옮기자. 그 말은 수영이 데이터센터 연구진이구나, 멋대로 백 년을 동면시킨 이유가 저것이었구나 싶었다.


손바닥만 한 노트를 들고 다니며 계속 적었다. 수영과 수십 번 눈이 마주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노트 첫 장엔 ‘기억나지 않을 시 지민에게 통째로 줄 것’이라고 적어두었다. 수영이 말했던 3일이 지나도 지민은 퇴원하지 않았다. 내 기억이 아빠와 지민으로 꽉꽉 채워지고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수영의 입에서 ‘제거’라는 표현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을 좋아해 본 적 없던 내가 누군가를 위해 데이터를 쌓아두고 있었다. 지민에게 노트를 전달할 때가 되었다. 3층에 올라가 지민을 만나 수영의 이야기를 떠봤다. 지민은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다 알아요.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아는데 도망치지 않는 지민이 의아했다. 소문에 의하면 데이터센터에 ‘업데이트’의 명목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아무도 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지민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지만 지민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수영의 통화가 끝나고 수영의 어깨를 잡았다.


“당신, 한지민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거야?” 수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 데이터센터 연구원이잖아, 다 들었어, 아날로그니 제거니 그런 거, 한지민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있어.” 수영이 피식 웃더니 내 어깨를 일부러 살짝 부딪치며 지나가다 말을 건다.


“지민이 좋아해요?” 아니라곤 할 수 없었다.

“그쪽이 지민이한테 먹을 거 주고 있죠?” 답하지 못하는 내게 말한다.

“주세요 먹을 거, 그리고 당신 지민이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어요?” 수영이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뭐든지.” 내 대답을 듣고 수영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곤 걸어갔다.


지민의 퇴원이 하루하루 미뤄졌다. 지민은 근력을 키우기 위해 삼 층을 하릴없이 걷고 손을 꼼지락 대며 근력운동을 했다. 그만하게 하고 싶었다. 몸이 좋아지면 바로 퇴원할 테니까. 하지만 내가 가진 기억으로 지민의 호기심을 들게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민은 하루가 다르게 걸음걸이가 나아지고 있었고 정말 시간이 없었다. 지민에게 수첩을 건넸다. 지민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천천히 읽어 나갔다. 공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덮고 다시 돌려줬다.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하며.


“고마워요, 근데 전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그게 수영이가 원하는 거라면.” 간호사를 호출해 퇴원을 물어본다. 간호 로봇은 보호자의 동의가 미뤄지고 있어 퇴원이 어렵다고 했다. 퇴원을 조수영이 미루고 있다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민의 주머니에 비스킷을 꺼내 입에 욱여넣으며 3층 바깥으로 나갔다. 무엇이 지민을 위한 최선인지 모르겠다.


글 나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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