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 [보고싶었어]
3일이 지났지만 퇴원 허가가 나지 않았다. 아직 온전하지 않다고 판단한 간호 로봇이 퇴원은 허가가 나올 시 가능합니다. 라며 말을 바꿨다. 수영은 그 말에 맞장구쳤다. 그래, 너 지금 제대로 걷지도 못하잖아. 수영은 가끔 두어 시간씩 자리를 비우는 것 빼고 내 옆에 붙어있었다. 그럼 수영이 없는 두어 시간 동안 나는 하루 또는 이틀분의 음식을 욱여넣었다. 박선우는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해 삼 층으로 왔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기 위한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비스킷들을 잔뜩 훔쳐 와 마치 불법적인 것을 전달하는 것 같이 내 환자복 주머니에 한 움큼씩 집어넣어 주었다. 며칠을 똑같은 비스킷만 먹다 보니 짜고 맵고 단 음식을 입에 넣고 싶은 충동이 자꾸 들었다.
“선우 씨, 소금이 뭔지 알아요?”
“소금이요? 당연히 알죠, 옛날에 제가 식당을 해볼까 해서 공부했었거든요. 음식 장사는 부자들을 상대로 하는 일이라,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못했죠” 의외의 대답이었다. 소금을 구할 수 있어요? 말하자 아뇨, 몇 달 전부터 데이터 평등 시위 중이라, 음식점은 다 문 닫았을 거예요. 근데, 어제 퇴원한다고 안 했어요?”
그러게, 오늘 아침에도 오늘 퇴원인가요? 물었으나 간호 로봇은 십 초간 뜸을 들이다 오늘은 퇴원이 불가능 합니다. 말했다. 매일 이유를 물었으나 자동응답으로 ‘퇴원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닙니다.’ 그 말만 반복되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하루 종일 병실을 걸었고 잡히는 모든 것을 쥐었다 풀었다 반복했다. 수영에게 나 퇴원하면 어디서 살아? 물었을 때 수영은 나랑 살면 돼! 해맑게 이야기했다.
내가 매일 3층에서 비스킷과 물을 잔뜩 먹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마다 수영은 저 남자랑 친해졌어? 물었다. 뭐가 그렇게 알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응, 친해진 것 같아하면 수영의 표정이 냉담해지곤 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나중에 말해줄게, 잔뜩 궁금하게 해놓고 말해주진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오후 세 시쯤 수영이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여보세요. 하고 병실을 나가자마자 삼 층으로 발을 옮겼다. 박선우가 벤치에서 날 맞이했고, 주머니에 먹을 걸 몰래 넣어주었다. 오늘따라 묵직한 주머니를 부스럭대며 몰래 보니 아주 낡아 보이는 봉투 안에 든 콜라 맛 젤리였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입을 꾹 막았다. 박선우가 웃는 얼굴로 검지로 입을 툭툭 치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렵게 구했어요, 아껴 먹어요. 먹어요? 암튼, 네 먹어요.
“지민 씨, 방 안에 친구.... 그 사람 언제부터 알던 사이에요?” 박선우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백 년 전이죠, 할당제 전에 고등학교 친구였어요. 아, 나이가 달라 보여서요? 수영이네 아버지가 과학자셨는데, 서른 살 중반의 얼굴이 제일 맘에 들어서 그렇게 멈춰 달라고 했대요. 저도 이해는 못 해요, 암튼 그랬대요” 주머니에서 몰래 젤리를 하나씩 입에 넣으며 말한다. 선우가 갸우뚱거렸다.
“음.... 그래서 그랬나, 수영씨 직장이 데이터센터 같던데, 매일같이 복도에 나와서 통화하잖아요, 지민 씨 얘기가 나오길래 뭔가 해서. 아버지랑 통화하는 말투는 아니었거든요.”
“걔네 아버진 예전에 돌아가신 거로 아는데, 아닌가? 무슨 얘기가 나오는데요?” 선우가 목소리를 낮추며 얘기한다.
“무슨 연구 대상 이야기를 하던데.... 그리고 한지민 삼일 안에 데리고 나간다고. 그리고 뭐라더라 아....아널...아날로그! 아날로그라는 단어를 자주 쓰더라고요. 그니까 정황상 지민 씨를 아날로그라고 부른다고 할 수 있죠. 암튼 좀 수상해 보였어요, 눈치도 엄청 보고, 제가 이래 보여도 눈치는 좀 좋거든요.”
“무슨 눈치를 챘는데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난 박선우가 이런 뜬금없는 말을 하는 게 좋았다. 백 년 전 사람 같달까.
“조수영이 지민 씨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난 바보가 아니다. 지금까지 수영을 지켜본 건, 수영과의 우정을 잊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백 년 전, -내겐 그저 며칠 전 같은, 수영과 나는 친구 이상의 무언가였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나의 일방적인 우정이 아니었다는 거다.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1년을 다녔고 우리 둘은 초등학생 때부터 왕따였다. 왕따 둘이 같이 다니기 시작하자 애들은 우릴 바퀴벌레 한 쌍, 레즈비언, 지네 등등 각종 단어로 놀렸지만 수영과 나는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집도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수영에겐 엄마가 없었고, 내겐 둘 다 없었다. 수영의 아빠는 직장 때문에 집에 거의 못 오다시피 했고, 우리 둘은 자매처럼 스물네 시간 붙어있었다. 결론은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을 친구였다는 얘기다. 고등학교 때의 앳된 얼굴이 남아있는 수영이, 쓸데없는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습관이 있던 수영이, 나 없이 백 년을 외롭게 보냈을 수영이. 그 애틋함 때문에 깨어나서도 수영에게 모질게 할 생각은 없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수영은 백 년을 보냈겠지만 내겐 단 며칠로 느껴졌으니까. 수영은 참 숫기 없던 아이였다.
남들이 길이라도 묻게 되면 날 빤히 쳐다보며 뒤로 숨는 아이. 첫날 깨어나 데이터에 대해 떠드는 수영을 내가 믿었을 리가. 수영은 눈물이 꽉, 흐르기 전까지 고여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냥 말 하고 싶었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내가 해줄게, 그게 무엇이든.
처음엔 의심이었으나 선우의 말을 듣고 나니 확신했다. 수영은 백 년 전 나를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구나. 수영은 데이터센터에 다녀온 듯 피곤한 상태로 병실에 들어왔다. 집에서 쉬지, 왜 자꾸 여기로 와, 수영이 멈칫하며 내 이부자리를 살핀다. 너 보고 싶어서 왔지. 오면서 간호사한테 물어봤는데 내일 퇴원 못 한대, 하루만 더 있어 보자. 아직 다리에 힘도 없고 아직 회복이 덜 됐어.
나는 그래 그러자 대답했다. 수영은 익숙하게 보호자 침대를 펼치고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를 위해 날 희생할 수 있나? 내 대답은 동그라미였다.
수영이 통화를 하며 나간 뒤 삼 층으로 가 선우를 만난다. 비스킷을 한 움큼 주머니에 넣어주며 우린 익숙하게 문이 제일 잘 보이는 벤치에 나란히 앉는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조수영 씨는 지민 씨한테 위험한 게 맞는 것 같아요. 삼십 분쯤 전에 조수영 나갔죠? 가면서 화를 내더라고요. 간호사가 퇴원을 안 시켜주는데 어떡해! 짜증을 내면서, 지민 씨가 퇴원 허가가 나면 지민 씨를 상대로 연구를 하겠다. 그거죠. 그러니까 몰래 탈출 계획을 좀 세워보는 게 어때요?, 만약 아니라면 내가 알려줄게요, 지민 씨가 떠나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 알지 않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고맙지만 선우 씨는 아무것도 몰라요. 속으로 말했다.
선우와 나란히 앉아 3층 순찰을 도는 간호 로봇에게 물었다.
“저 멀쩡하니까 퇴원시켜 주세요.”
“송 수신중....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퇴원할 수 있습니다. 한.지.민 환자는 보호자의 퇴원 거부로 미뤄지고 있으니,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아 다시 요청해 주십시오.”
선우를 보고 씩 웃었다.
“일부러?” 소매에 비스킷 한 조각을 숨겨 입으로 욱여넣으며 끄덕끄덕 고갯짓했다. 그날 수영은 열한 시가 넘어 병실로 돌아왔다. 늦었네, 수영이 진 빠진 표정으로 응 대답한 후 소파에 널브러진다.
“수영아 내일 퇴원하자” 수영이 벌떡 소파에서 일어나 인상을 구겼다. 너 아직 회복되려면 멀었다니까. 그 몸으로 나가서 어쩌게. 네가 돌봐주면 되지.
수영이 어떤 말을 하려다 참았다. 간호사한테 물어볼게. 그래.
우린 오랜만에 깊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