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영 [미인과 악인]
신이 내린 얼굴, 그게 내 별명이었다. 나의 부모는 내가 배우의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날 데이터센터로 끌고 가 포맷을 하라고 했다. 만 13살이 넘은 나는 거부했다. 부모는 담당 직원에게 몇억의 돈을 찔러넣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그들을 신고했다. 강제 메모리 삭제 미수죄. 형량은 가볍지 않았다. 데이터 삭제 5년 형. 그들을 선처하겠냐 물었을 때 난 아니요라고 답했다.
그들은 나의 얼굴을 철저히 이용했다. 여섯 살의 아이를 한숨도 못 자게하는 것은 물론, 잡지 촬영과 광고, 얼굴로 돈 되는 것이라면 무조건 시켰다. 만약 촬영장에서 하기 싫다고 떼를 쓰거나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얼굴만 빼고 죽기 직전까지 구타했다. 그랬으면서 배우는 안 된다는 위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강영아! 강영아! 법정에서 울부짖는 그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첫 작품이 대박이 났다. [사랑의 기억], 헤어진 연인이 아무런 데이터도 지울 수 없어 기억을 가지고 살다 어느 순간 다른 사랑이 나타났을 때 옛 연인의 기억을 삭제할 것인지 선택하는 스토리였다. 난 일명 벼락스타가 되었고 그토록 싫어하던 광고와 잡지를 찍느라 스물네 시간이 모자랐다. 정부에선 배우들을 싫어했다.
자신의 ‘진짜’ 메모리는 삭제하면서 대본의 ‘가짜’ 감정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벌레라고 일컬었다.
배우들은 코어메모리를 제외한 데이터들을 삭제하고 삭제했다. 배우는 대부분 사랑 연기를 하기 때문에 대본만 이해하기에도 일 테라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모두 병적으로 다이어리를 썼고 정말 지우기 싫은 기억은 세세히 감정을 적어놓고 압축시켰다. 지금 내가 그러하듯이.
그래도 난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남들은 꿈도 못 꿀 절절한 사랑을 해본다는 것, 그게 설령 진짜가 아니더라도 좋았다. 하지만 어딜 가나 돈만 밝히는 사람은 존재했다. 나의 첫 번째 소속사 별인그룹은 다 허물어져 가는 회사였지만 내가 대박이 난 후 번쩍번쩍한 사옥을 지었다. 김정철 사장은 시간이 갈수록 돈의 노예가 되어갔다. 나의 어릴 적 부모처럼 조금의 쉬는 시간도 용납하지 않았다.
쉴 새 없는 잡지, 광고촬영은 물론 나중에는 누드 촬영까지 강요했다. 오 대 오로 정직하게 나눠주던 정산은 차가 밀려 늦은 지각비, 파파라치가 아무렇게나 찍은 나의 잠옷 차림이 공개되자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막대한 금액을 청구하거나 받을 돈을 주지 않았다.
다행히도 계약기간은 오 개월 남짓이 남아있었다. 오 개월만 버티면 된다. 톱스타가 된 나를 원하는 회사는 많았고, 나의 몸값은 열 배 이상이 뛰어있었다. 오 개월 치의 위약금을 내줄 테니 지금 당장 와달라는 회사들이 줄을 섰다. 그래도 나는 계약기간은 예의라며 오 개월만 기다려달라고 사정했다. 재계약을 하지 않을 걸 알았는지 회사는 남은 시간 동안 내 피를 말렸다. 하루에 세 시간이면 많이 자는 거였다.
무리한 스케줄 요구는 당연했고, 법에 저촉되지 않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시키려 했다. 나를 배우로 키운 건 자신이라며, 재계약을 하지 않는 건 네가 싸가지가 없는 거라며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폭언을 퍼부었고 말도 안 되는 금액의 위약금을 내게 하려고 혈안이었다.
한 달 남짓이 남은 지금 이 시점, 김정철 사장은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수고했다며, 마지막 인사라도 하자며 나를 술집으로 불러냈다. 여자 로봇 직원들을 양팔에 낀 채 나를 맞이했고 난 최대한 떨어져 앉았다. 김정철은 내가 불편해 보였는지 모두 내보낸 후 나에게 술을 따라줬다. 군말 없이 마시고 마셨다. 그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며 예상치 못한 말들을 쏟아냈다.
두 시간쯤 대화를 하다 난 지금 화장실에 왔다. 김정철의 큰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당장 잡아 와, 싹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버려,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린다. 새벽 한 시 삼십사 분, 화장실 맨 끝 칸에 숨어있다. 여기로 올 것 같다. 이 쪽지는 내 주머니에 넣어둘....
“반장님, 한강영 주머니에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야 저 새끼 묶어놔! 아휴 미친 새끼도 아니고 이게 다 뭐야! 야 거기 밟지 마! 뭔데 봐봐”
‘배우 한강영 코어메모리 강제 삭제된 것으로 추정, 용의자 한강영 소속사 대표 김정철 구속’